“천년소나무님. 어둠왕을 물리칠 화살을 내주십시오.”
“산어머니를 쏜 자에게 가지를 내줄 수 없도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눈을 달라. 그러면 가지를 내주리라.”
“예? 눈이라고요? 제 눈을 말입니까?”
『흰산 도로랑』은 주인공 도로랑의 아버지, 백 포수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백 포수는 탐욕에 눈이 멀어 흰산에 사는 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총 쏘아 죽이는 사냥꾼이었다. 어느 날 백호 새끼를 잡겠다며 호기롭게 길을 나선 뒤, 백 포수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도로랑은 백발백중의 활 솜씨를 단련하여 흰산으로 향한다. 아버지를 잡아먹었다는 원수, 백호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도로랑이 백호를 향해 화살을 쏘는 순간, 때아닌 눈보라가 몰아치며 끝나지 않는 밤이 찾아온다. 도로랑이 어둠왕을 깨워 흰산의 수많은 생명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벼르던 복수를 완결했음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도로랑. 흰산 생명들을 애써 외면하고 흰산을 떠나려 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도로랑은 어린 산신 호령아, 흰머리 노인과 함께 얼어붙은 세상을 구하러 나선다. 그러나 어둠왕을 물리치려면 어둠에 물든 도로랑의 두 눈과 심장을 내놓아야만 한다…….
인간은 다른 생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임정자 작가의 오랜 질문이 백두산 설화에 녹아들어 탄생한 대서사시 『흰산 도로랑』이 2019년에 맞춤한 새 옷을 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