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렁거려 종일 앉아 있던 바다,
아련하게 멜로디와 겹쳐져 노랫말이 된 그때의 사람들”
빛바랜 감정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그 시절의 우리에게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는 포크듀오 ‘재주소년’ 박경환의 첫 산문집 『소년, 잘 지내』는 <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눈 오던 날> 등 따듯한 감성을 노래하는 그가 “노래의 씨앗”이 된 오래된 기억들을 담백하게 풀어내 완성한 책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시작된 제주도에서의 홀로서기, 눈으로 좇던 ‘그 애’와 그 옆의 다른 사람,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곡에만 몰두했던 시절 등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짧게는 몇 년 전, 길게는 거의 20년이 다 된 기억인데도 마치 엊그제 일처럼 무척이나 생생하게 쓰였다. 그때의 감정을 이토록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이 오롯이 한 곡의 노랫말로 남아준 덕분이다. 그것의 순기능은 언제든 그 감정을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이고, 역기능은 언제든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직도 떠올리면 심장 언저리가 뜨끈해진다는 저자의 옛 기억은 어쩌면 너무도 개인적인 감정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으로부터 움튼 저자의 노래가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까닭은, 모두가 마음 한구석으로 자신만의 소년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자를 읽으면 멜로디가 들리는 듯한 도서 『소년, 잘 지내』는 그렇게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어릴 적의 자신, 소년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들이 우리 안에 남긴 무늬를 지닌 채
젊음 너머로 걸어가자
“젊음은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젊음일까?”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사에서 처음 던지는 질문이다. 『소년, 잘 지내』에서 말하는 ‘소년’은 초등학생의 소년일 때도 있고, 대학교를 다니는 성인일 때도 있다. 이 넓은 범주의 시절을 소년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어떤 선택이든 크게 주저하지 않던 때”라고 말한다. 훌쩍 여행 떠나는 것, 낯선 섬마을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 노래에 흠뻑 젖는 것을 기꺼이 해낼 수 있는 시절 동안 우리는 모두 ‘소년’이었다.
『소년, 잘 지내』는 ‘잘 지내?’가 아닌 ‘잘 지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노래가 되어주었던 그 소년을 널리 보내주는 책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기억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한편, “그때 그 시선으로 세상을 담는 순수한 작업이 두 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나서야 세상으로 보낸다”고 말하며 지나간 유년의 안녕을 빌며 인사를 남긴다. “헤어지고 멀어진 사람들이 우리 안에 남긴 무늬를 그대로 지닌 채” 지극히 평범하고 초라한 순간의 기록이 남긴 노래들을 흥얼거리면서.
2000년대의 향수가 진하게 남아 있는
‘재주소년’의 20년을 그린 음악극
다양한 장르가 다채롭게 연주되고 인디밴드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2000년대 초,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홍대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로도 불리던 저자는 어느새 20년차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그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계속 이어진 가사 작업 덕분에 저자의 기억과 감정은 노래와 긴밀히 연결되어왔다. 그 결과 『소년, 잘 지내』의 곳곳에는 재주소년의 노랫말이 가득 담겨 있다. 재주소년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독자라면 매 페이지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릴 것이다.
『소년, 잘 지내』의 후반부에는 책 제목과 유사한 제목의 부록「소년, 잘 지내?」를 만날 수 있다. 원래 이 책의 핵심이었다는 부록은 희곡 형식으로, 실제 재주소년이 2010년과 2014년에 선보였던 공연의 대본을 보완한 것이다. 라이브와 연극이 한데 모여 있는 ‘음악극’은 그 당시 신선한 반응을 이끌었고, 극 내용 역시 『소년, 잘 지내』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재주소년의 ‘음악놀이’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재주소년이 걸어온 시절과 2000년대의 향수가 가득 담긴 챕터를 읽다보면, 극본 속 라이브 셋업대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