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80미터짜리 보물찾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 레드우드다. 100미터에 육박하는 레드우드 아래에 선 사람은 관목 아래에 선 개미만 해진다. 하지만 타이완 삼림에서 자라는 침엽수도 연령, 수형, 생태에 있어 그에 못지않다. 타이완의 나무는 태풍과 지진이 빈번한 환경에서도 70미터 이상씩 자라난다. 책에 소개되는 거목의 종류만 타이완삼나무, 대만가문비나무, 대만넓은잎삼나무 등으로 다양하다.
그들은 희귀한 만큼 만나기도 쉽지 않다. 험준한 산속의 거목을 섭렵하고 다니는 저자도 매번 애를 먹을 정도다. 거목 대부분이 수원이 충분하며 바람을 피하기에도 유리한 골짜기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책의 주연급 거목이라 할 수 있는 ‘타이완삼나무 세 자매’가 있는 타이완의 치란 지역은 안개 낀 날이 연평균 300일을 넘는 다습한 숲으로, 비교적 건조한 여름에도 태풍의 습격을 받을 위험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거목을 찾자고 깊숙한 산중에 무턱대고 진입할 수도 없다. 라이다lidar 기술을 이용해 산에서 거목이 있을 만한 위치를 가늠해야 하며, 그 역시 정확한 데이터가 아님을 상기한 채로 산행에 나서야 한다. 산에 들어가서도 무거운 등짐, 경사도가 40도를 넘어서는 험난한 지형과 싸워야 하며, 로프 길이라도 잘못 어림해 챙긴 날에는 다음 산행을 기약해야 한다.
저자는 이 모든 역경을 헤치며 굳이 거목을 찾는다. 지난한 과정 끝에 만나는 높다란 몸체가 마주한 자로 하여금 큰 감격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2020년, 타이완의 타오산에 있는 거목을 찾으러 산에 오른 저자와 동료들은 4차 탐사 끝에야 겨우 목표물을 만날 수 있었다. 저자가 해당 나무의 60미터 지점까지 올랐고, 또 다른 동료가 그 뒤를 이어 나무의 꼭대기인 우듬지에 도달한 끝에 얻어낸 숫자는 79미터였다. 무려 80미터에 가까운 나무를 찾아, 그에 올라, 그의 정확한 키를 밝혀내는 것, 그것이 이들이 목숨 걸고 하는 보물찾기의 실체다.
이 위험천만한 행위를 지속하는 이유를 저자는 간단히 설명한다. “거목을 찾는 여정이란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과 영혼은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천혜의 포르모자 환경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배낭을 짊어지고 용감하게 미지를 찾아 숲으로 갈 것이다. 다시, 또다시.”
나무 위의 또 다른 생태계, 수관층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평소 우리가 들여다보려고 해도 몰라서, 또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장소’를 소개한다는 데 있다. 그 장소는 다름 아닌 높은 나무의 수관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처럼, 나무는 홀로 생장하는 동시에 제 몸에 또 다른 생명을 틔우기도 한다. 특히 크고 오래된 거목일수록 생태계는 복잡해진다. 몇백 살 이상의 거목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착생식물도 있다. 저자가 꼭 거목에 올라 착생식물을 조사하는 이유다.
식물 연구를 갓 시작한 시기, 14미터짜리 나무의 수관층에 오른 저자는 그곳에서 특이한 식물을 발견한다. 나뭇가지 위 부식층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 더미의 식물기관이었다. 그는 이후에야 그것이 나무가 양분 흡수력을 키우기 위해 공중으로 뻗어낸 뿌리인 캐노피 루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관다발식물은 물론 진균류, 조류, 지의류, 선태류 등 다양한 식물이 나무 위에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 같은 장면은 저자를 착생식물의 세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타이완의 아열대우림은 풍부한 생물량으로 그 관심에 화답한다. 저자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타이완에는 관다발 착생식물만 약 350종이 있다. 복씨석송, 요엽월귤, 넉줄고사리, 애강고사리, 유엽등, 수융란 등 이름만으로 그 외형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착생식물이 지금 이 시간에도 땅 한번 밟지 않은 채로 몸집을 키워내고 있다.
저자는 언뜻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을 위한 변호에도 적극적이다. 기생식물과 달리 착생식물은 생존에 필요한 양분을 숙주식물에게서 빼앗지 않고 자체 광합성을 통해 얻는다며, 그들을 ‘커다란 나무라는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면서 스스로 밥벌이 하는 세입자’에 비유한다. 수관층의 식물과 잎이 다량의 물안개를 가둠으로써 삼림 수자원 보존에 기여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작성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매번 로프를 단단히 죄는 저자는 말한다. “수관층이 확대되고 토양층이 누적됨에 따라 산림 지표면에는 식물과 소교목이 잇달아 출현하게 된다. 그 뒤를 무척추동물, 곤충, 양서류가 따라오고, 마지막으로는 포유류, 조류 등 대형 동물이 등장한다. (…)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40미터 상공의 수관에서 매트 한 장 깔고 자는 그의 대담함은 학자의 열의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보단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순수한 애정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겐 낯선 대상인 거목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기에 이 책은 더없이 친절하다. 저자가 직접 보고 그린 사진과 그림도 넉넉해 애써 상상하지 않고도 그 모습을 세세히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은행나무, 소나무, 떡갈나무와 다른 형태로 자라나는 식생을 보는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은 애당초 나무에 오르는 개인의 일화를 적은 일기로 쓰였으나,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이국을 탐방하는 여행기로도 기능할 것이다. 이러한 유동성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