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발견,
이토록 예쁜 그림이라니!
동양화라 부르는 옛 그림과 현재 우리 사이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현대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먹으로만 그려 색채도 없고, 다 비슷비슷해 보여 구분도 잘 안 가는데 한자도 많으니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거리감은 한국화의 여러 얼굴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작품 제작 연대나 화가의 이름을 보기 전이었다면 영락없는 현대 그림처럼 느껴지는 그림들도 제법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일러스트』는 시대와 무관하게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한국화를 오감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감상하고자 쓰인 책이다. 우리의 오감, 보고 듣고 만지고 향과 맛을 느끼는 감각들을 모두 열어두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나의 마음, 화가의 마음을 상상하며 감상하면 좋을 그림을 두루 펼쳐 보인다. ‘한국의 일러스트’라는 제목을 붙인 데에는 예쁘고 선명한 이미지로 널리 사랑받는 일러스트 못지않게 산뜻하고 현대적인 미감이 살아 있는 한국화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의외의 발견은 언제나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 『한국의 일러스트』에서 새삼 마음 설레는 그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오감으로 감상하는
한 점의 일러스트 같은 우리 그림
『한국의 일러스트』는 현대에 그려진 그림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책에 실린 작품은 모두 우리 옛 그림이다. ‘일러스트’라고 하면 삽화나 도안 등을 뜻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의 일러스트라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최근에 ‘일러스트’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예쁘고 선명한 이미지를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 달리해보면 어떨까. 오늘날의 우리 눈에도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는 한 점의 일러스트 같은 한국화를 골라 소개하면 우리 옛 그림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곁으로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책에 ‘한국의 일러스트’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말은 생각의 전환을 도모하니, 한국화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책은 총 다섯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으로 보고 맛과 향기를 상상하고, 촉각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감상하자는 취지에서 그에 걸맞은 키워드를 품은 그림들을 선별했다. 또한 ‘즐거운 그림 감상, 너무 무겁게 시작하지 말자’는 저자의 의도대로 그림 하나에 짧은 감상 하나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림도 글도 어느 것 하나 어렵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잠시 곁에 앉아 쉬었다 가기를 권하며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니, 무심코 마음 가는 페이지를 펼쳐 그림 한 번, 글 한 번, 눈으로 보고 느끼면 되는 고운 책이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가볍게 시작하는 거다.
그림을 보는 데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할까? 어려운 배경이며 상징까지 줄줄이 읊어야 할까? 물론 알고 보면 좋은 그림도 있지만, 그림 감상이라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설명이 더해지지 않아서 감상할 수 없는 그림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림의 책임이다._5쪽
책에 실린 73점의 그림 중에는 우리 눈에 익은 것들도 있겠지만 처음 보는 그림, 혹은 의외의 아름다움에 놀랄 만한 작품도 적지 않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나 화가의 이름을 보지 않는다면 ‘요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그림들도 제법 있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감각이 무조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틀 자체에 얽매일 것 없이, 시대와 무관하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옛 그림도 많다는 얘기다. 저자는 마음을 열고 보면 새로운 한국화를 감상할 수 있음을 은근하게 강조한다. “쉽게 읽히길 기대하며 그림에 담긴 내 사랑을 풀어넣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책에는 우리 그림을 향한 뭉근한 사랑이 소담스레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이론보다 감상에 목적을 두고 한국화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그렇다고 그림 정보와 내용에 소홀하지 않는다. 70여 점의 작품 아래에는 작가, 제목, 제작 연도 등 기본 정보가 충실히 정리되어 있고, 그림을 그린 작가가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감상을 마친 뒤 작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정리해넣었다. 쉽지만 알차게 꾸린 양서로 손색이 없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시각’을 전제로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재미없다. 우리 몸은 여러 감각이 저마다 따로 놀지 않는다. 오감을 모두 열어두고 그림을 감상하되, 심상(心想)과 연결하여 그림을 바라보면 어느새 감미로운 새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달콤한 꽃향기가 퍼지기도 한다.
때로는 자극을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감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도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그림을 더 재미있게 만나보라는 저자의 제안, 비단 우리 그림에만 해당하는 감상법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감각으로 감상하는 법을 터득했다면 더욱 드넓은 예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림은 그림이다. 뜻도 좋고 배경도 좋고 다 좋은데, 그림은 그림으로만 마주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어느 그림에서 시작해도 좋다. 내 눈에 드는 그림, 그곳에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_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