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시의적절, 그 열번째 이야기!
시인 임유영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10월의, 10월에 의한, 10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첫 시집 『오믈렛』(문학동네, 2023)을 통해 “감각적인 예지력”(김행숙)으로 빚은 “고유한 음악”(박연준)을 선보이며 한국시의 새 이름으로 떠오른 임유영 시인이 ‘시의적절’ 그 열번째 주자로 등판했다. 책을 펼치자니 10월을 닮은 냄새, 그러니까 10월을 맞은 우리 마음에서 불어오는 냄새를 언뜻 느낀 듯도 하다. 시의 안팎을 두루 거니는 ‘시의적절’의 일편답게 시와 에세이는 물론 관람 후기와 메모 등을 경유하며 사진, 회화, 음악, 영화까지 예술 전반을 ‘유영’하는 이야기라 일러볼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론, 삶에 예술을 푹 담글 때 비로소 무르익는 것이 ‘시’임을, 그리하여 삶이 곧 어떤 취기임을 알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다음 시집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 안 보이면서도 확실히 거기에 있는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싶다. 냄새, 기운, 공기, 느낌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 만약 이 책에서 술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에서 나는 냄새다. 10월의 냄새다.
─본문 중에서
시와 시 아닌 것 사이에 깨어야 할 벽도 차려야 할 법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그이니, ‘시의적절’의 취지에 애초 맞춤할 수밖에 없는 시인일 것이다. 산문인가 하고 읽다보면 이것이 시이고, 시로구나 끄덕이다보면 그것이 에세이가 되는 분방함이 있다. 하긴 ‘술을 숨긴 적’은 있어도 그 숨김을 고백하는 단에서야 이미 더없이 솔직한 쓰기다. 10월 추수 지나 남은 곡식은 술을 담그는 데 쓴다 하니, 시인의 신명이 그리고 결행이 어디서 오는지 짐작하기에도 적절한 달 10월이었을 테다.
시와 글과 거기에 머리 맞댄 예술들, 시인의 넓고도 유연한 애정이 어디서 왔을까, 그 일상과 단상들 통해 엿보게도 된다. 특히나 시인의 삶 또한 결국 사람의 속이고 사람의 사이구나 한다. 책 속에서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일상을 매김할 때, 그것이 꼭 달력 속 날짜 하루하루 꼽는 일 같다. 그것이 임유영이 말하는 매일의 사랑이고 매일의 쓰기일 것이다. 어김없이 취하고, 숨김없이 쓰고, 남김없이 나누는 사랑이 여기 있다. 얼큰하고도 덜큰한 10월의 냄새가 있다.
내 마당이 보이는 책상에 앉아서 쓰겠지. 그땐 정말 앞이 깜깜했고, 참 힘들게 살았었다고, 젊은 나를 가엾게 여기고. 잔인한 운명과 고난을 증언하고. 하지만 빈 주머니에 주먹만 두 개 넣고 다니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고.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노라고. 나이가 들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고 겸손을 담아 진심으로 쓰겠지. 가벼운 수치심 같은 건 잘 이겨내겠지. 아름다운 마당에 속수무책으로 자라는 식물의 색과 모양이 계절마다 바뀌는 걸 관찰하면서, 잡은 벌레를 놓아주겠지. 그리고 말할 거야. 내가 예전부터 이런 걸 참 좋아했다고.
─본문 중에서
◎ ‘시의적절’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시詩의 적절함으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제철 음식 대신 제철 책 한 권
난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이름하여 ‘시의적절’입니다. 시인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요.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봅니다.
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습니다. (달력이 그러해서, 딱 한 달 스물아홉 편의 글 있기는 합니다.) 무엇보다 물론,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습니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습니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거지요.
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합니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습니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습니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四季)가 되어 있을 테지요.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
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입니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時)와 시(詩)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라 믿습니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입니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합니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테지요.
[ 2024 시의적절 라인업 ]
1월 김민정 / 2월 전욱진 / 3월 신이인 / 4월 양안다 / 5월 오은 / 6월 서효인
7월 황인찬 / 8월 한정원 / 9월 유희경 / 10월 임유영 / 11월 이원 / 12월 김복희
* 2024년 시의적절은 사진작가 김수강과 함께합니다. 여전히 아날로그, 그중에서도 19세기 인화 기법 ‘검 프린트’를 이용해 사진을 그려내는 그의 작업은 여러 차례, 오래도록, 몸으로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시간으로 그리는 사진과 시간으로 쓴 시의 적절한 만남은 2024년 열두 달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