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크기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생생한 악몽처럼 충격적인 성장 서사
임솔아 첫 장편소설 개정판 출간!
시와 소설 양방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경계 없이 넓은 문학적 토양을 일궈온 작가 임솔아의 소설 데뷔작 『최선의 삶』이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다섯번째 권으로 재출간되었다. 작가의 대학 재학 시절에 집필된 이 작품은 문학평론가 신형철로부터 “‘체급’ 자체가 다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했다. 임솔아는 이 첫 장편을 통해 절제되어 더욱 인상적인 문장과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좋은 소설”(소설가 박성원)의 요건들로 무장한 자신의 소설세계를 독자 앞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작가는 그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등을 출간하며 평단과 독자로부터 활발히 호명되어왔으며,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거머쥐며 임솔아 소설이 지닌 독자적인 가치와 매력이 착실히 무르익었음을 증명해냈다.
『최선의 삶』은 신인이던 임솔아가 기술보다는 본능에 의해 써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장 날카롭고 솔직한 임솔아 소설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라면 (…) 다르게 썼을 것”이지만 “수정하지 않는 걸 선택”(임솔아, ‘개정판 작가의 말’)할 만큼, 그대로 고이 보존하고 싶은 젊은 작가의 한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이번 개정판에는 임솔아의 미수록 시편이 한정 사은품으로 제공된다. 『최선의 삶』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 시편들은 소설의 감동을 다른 장르 안에서 보다 새롭고 깊이 있게 되새기게 함으로써 ‘임솔아 월드’의 드넓은 지평을 감각하게 해줄 것이다.
상처, 배신,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뒤흔들리는 일상을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형용사나 부사 없이 묵묵히 움직이는 성장 서사
『최선의 삶』은 여성 청소년들이 우정을 나누는 방식은 물론 그들의 가출, 폭력, 복수의 서사를 마치 날것처럼 그려 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주인공 ‘강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스노볼’ 같다고 느끼는 중학생이다. 절실하지도 유효하지도 않지만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는 부모님, 같은 학교 친구들에 비하면 변변찮지만 보호소 역할을 해주는 집, 믿고 따를 만한 선생은 없지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학교. 강이는 인위적으로 꾸며진 듯한 그 좁은 세상 밖으로 가능한 한 멀리 나가보고 싶어한다.
때마침 친구 ‘소영’이 함께 가출할 친구를 모은다. 바둑을 두듯 계산된 행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른들에게서 쟁취해내는 소영은 강이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소영에게 이끌린 강이와, 폭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보듬는 데에서 보람을 찾는 ‘아람’까지, 세 아이가 뭉쳐 대전에서 서울로 가출을 감행한다. 바깥세상은 여성 청소년에게 전혀 안전하지 않다. 어른들의 적개심어린 태도에 반발하고 호의 속에 숨겨진 욕망을 배우며, 세 아이는 서로를 의지하는 만큼 서로에게 지쳐간다. 때로 소영은 강이와 아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이들은 소영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가출 생활 역시 소영의 독단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집으로 돌아온 강이와 아람은 소영에게 가출의 목적이 따로 있었으며 소영의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들 역시 소영의 욕망에 휘둘렸음을 알게 된다. 그후 소영과 멀어진 강이는 모종의 사건들을 겪으며 학교에서 고립되기에 이른다. 바로 며칠 전까지 친근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외면받으며, 언제 공격을 당하더라도 방어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공격적인 자세로 교실에 앉아 있는 강이. 오로지 그날 하루를 무탈히 보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강이의 움직임은 수식어를 배제한 채 동사로만 이어지는 문장들처럼 무감하고 섬뜩해서 더욱 처절하다. 그런 강이에게 어느 날 아람이 불쑥 손을 내밀고, 두 아이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데……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했던 시절
악몽 같은 우정을 쌓고 부수며
우리는 더는 소녀가 아니게 되었지
『최선의 삶』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만연히 서술하는 대신 인상적인 장면을 제시하여 그 안에 함축된 의미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소설의 특징은 단행본 출간 후 2년 만에 영화화가 추진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여자아이들의 일상에 자리한 잔인한 일면을 포착해온 이우정 감독의 연출로 탄생한 영화 <최선의 삶>은 “십대 시절의 정의되지 않는 그 예민함과 극렬함을 섬세하게 포착”(영화평론가 정한석)했고 “자기가 겪은 이야기처럼 쓴 임솔아의 소설을 자기가 본 이야기처럼” 찍어 “설명하기 힘든 생생함”(영화평론가 정성일)을 발생시킨다는 찬사와 함께 각종 수상 이력을 기록했으며, 베를린 한국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 십대 아이들이 서로에게,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입히는 상처에는 유별난 데가 있다. 타인의 눈에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생채기로 보일지라도, 당사자의 스노볼 같은 세계 안에서는 한 사람 몫의 세계를 파괴할 만한 위력을 지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선의 삶』은 상처의 크기란 나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정적인 시기에만 겪을 수 있는 거대한 폭력과 아픔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청소년기 특유의 시간이 단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로 탄생했다. 상처 입은 존재가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맹렬히 움직인 끝에 생생한 악몽 같은 결말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이 모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문학평론가 신형철)는 논평을 자연스레 따라 믿게 된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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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하게 만든 이야기다.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보통 심사평을 쓰면서 수상작의 줄거리나 작품 소개를 곁들였지만 이번엔 생략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을 아무런 정보 없이 꼭 한 번씩 읽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_박성원(소설가)
『최선의 삶』은 ‘체급’ 자체가 다른 소설이었다. 이것이 소설에 할 만한 칭찬으로 적당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서술하고 있는 이 모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작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작가는 소녀들의 세계에 드리워진 잔혹한 폭력을 보여준다. 알몸으로 하나되어 낄낄대던 아이들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하고, 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은 마침내 세계의 본모습을 보고 몸을 가린 태초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경험하는 잔인한 성장의 일면이다. _정한아(소설가)
■본문 중에서
먹어보지 않은 크래커를 먹게 되는 것. 소주를 마시고 혀의 마비를 느껴보는 것. 네온사인이 색을 바꾸는 패턴을 이해하는 것. 네온사인이 꺼진 뒤 도로에 차오르는 새벽 물안개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이 세상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하찮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꾸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35쪽)
같은 샴푸로 머리를 감고 같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거울 앞에 놓인 스킨과 로션을 같이 발랐다. 아무나 쓸 수 있는 샴푸 냄새와 로션 냄새를 똑같이 풍기며 같은 냄새가 되었다. 나는 친구들이었다. 전날에 묵었던 손님이었다. 옆방, 윗방, 아랫방 손님이었다. 내일 묵을 손님이었다. 아무나였다. 그날은 세상 누구나의 생일이었다.(39쪽)
길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들은 원래 다 아픈 거라고 아람은 변명했다. 멀쩡해 보이는 고양이도 자세히 보면 아픈 곳이 꼭 있다는 거였다. 등이 곪았거나, 털 속에 살을 파고드는 목걸이를 찼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미를 잃었거나.(73~74쪽)
엄마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대부분 유치했고, 지혜로운 대답은 대부분 비겁했다.(106쪽)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보호는 치열한 공격이 될 때가 많았다. 치열한 보호가 비열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112쪽)
무릎은 꿇지 말았어야 했다.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무차별하게 흙을 긁어쥐던 순간처럼, 아무 곳에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순간에야만 그러잡을 것이 생기리라는 희망이었다.(151쪽)
요긴한 적이 없었던 가족의 사랑도 사라졌다. 학교도 사라졌다. 끔찍함이 사라졌다. 한 세계를 빠져나온 기분이었다.(169쪽)
잊지 말아야만 한다. 너는 싸워야 산다는 걸.(184쪽)
왜 나는 같은 악몽을 꿀까를 궁금해하다가 왜 나는 이 악몽을 쓰려고 할까를 궁금해했다. 이 악몽 속에 평생 갇혀 살까봐 무서웠다. 소설을 완성하고 한 가지를 알게 됐다. 그토록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던 악몽은 ‘왜’냐고 묻길 바라지 않았다는 사실. 내가 악몽에 시달려온 것이 아니라 악몽이 나의 질문에 시달려왔다는 사실. _‘수상 소감’ 중에서
나는 악몽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했다. 악몽은 꿈을 꾸는 동안이 아니라 깨어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꿈을 꾸든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깨어날지를 궁리한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나를 조금은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아침의 나를.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소중하다.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차례
최선의 삶 _009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 소감·심사평·수상작가 인터뷰 _213
개정판 작가의 말 _240
■임솔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중편소설 『짐승처럼』,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