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되고 소외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어느새 다가와 당신 마음에 노크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머뭇거려본 사람, 혹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방 안에 웅크려 지내본 적이 있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 예컨대 그들의 마음은 대개 빈집과 같을 것이다. 비어 있는 집, 한때는 웃음과 사랑, 고통, 희열로 가득 차 부대끼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공존했던 곳.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사라져 공허한 흔적만 남아 있는 곳. 그런 빈집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패퇴된 사람들이고 세상에서 밀려나 ‘밖’으로 침잠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본디 악하지 않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선하고 착하며 타인과의 소통을 꿈꾼다. 또 그들은 세상 밖을 향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두드렸다. 자신을 봐달라고,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언제고 노크했었다.
어느 때 삶은, 쉴새없이 빠르고 날렵히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런 현실에서 숨쉬는 호흡은 짧고 더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 호흡으로 우리는 삶을 견뎌낸다. 앞만 보고 질주한 대가로 우린 많은 것들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을 놓치고, 온전한 사랑을 잃었다. 아차 싶어 돌아보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모든 게 사라진, 빈집과 같다.
여기 한 권의 소설집을 세상에 내보낸다.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더딘 걸음걸이를 재촉하는 신예 소설가 장은진의 소설집이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서로의 삶에 은근히 스며드는 그녀의 소설 속 개개 인물들이 내뱉는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 그동안 등한시했던 우리 주위의 고립되고 소외받는 보통의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지금 주변부 ‘옆’ 사람의 약하고 가냘픈 모습을 한번쯤 돌아보자. 그게 장은진이 건네는 첫인사이자 굳게 닫힌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보라는, 빈집 같은 마음을 두드리는 그녀만의 노크이다.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가 장은진의 두번째 소설집!
장은진은 2004년 「키친 실험실」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장편소설『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해 한국문단의 기대와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그녀가 사 년 동안 꾸준하고 성실하게 발표해온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묶어 두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를 펴낸다.
두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에서 그녀는, 소외되고 고립된 주인공들을 내세워 ‘사랑’과 ‘소통’에 대한 일곱 편의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장은진만의 따듯한 시선과 세밀한 관찰력으로 이 시대 ‘밖’으로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독을 기록했다. 그들의 삶의 모습들을 읽다보면 ‘어떻게 사랑받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어떻게 사랑을 줄 것인가’라는 명제에 도착하게 되고, 곧 진정한 ‘소통’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
시대 ‘밖’으로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독의 기록!
장은진은 고립되고 소외받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령, 「나는 나를 가둔다」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남자가 수면 체험실이란 곳에 흘러들어가 그곳의 특정한 63번 방에서만 잠을 잘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남자가 그 방에 중독된 이유는 독특한 냄새에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는 체험실 카운터 여자의 체취였던 것. 남자는 묘하게 끌리는 여자의 꿈을 판화로 만들기를 원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곁에 나란히 누워 숙면을 취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낯선 두 사람은 서로를 위무한다.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의 주인공 ‘나’는 레즈비언 부인과 이혼한 뒤 지붕에서만 지내는 남자이다. 아버지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 취급을 당하며 지붕에서만 지내던 ‘나’의 일상을 뒤흔드는 것은 하늘에서 매일 같은 시각에 떨어지는 티슈이다. “누군가 방법을 알려준다면”이란 문장이 적힌 티슈를 통해 주인공 ‘나’는 자신의 일그러진 삶을 용서하게 되고, 미지의 누군가가 흩뿌리는 슬픔의 흔적들을 수집하여 티슈를 뿌리는 ‘그’를 위로하고 싶어한다.
「나무인형」의 주인공 ‘p’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다가 ‘나무처럼 한곳에 붙박여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p’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누군가에게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기록을 타자인 그 ‘여자’에게 기록하는 것. 두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기억과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게 된다.
또 어떤 남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른 이의 책을 찢기도 한다.「페이지들」 의 주인공 ‘나’는 책의 중요한 페이지를 찢고 그 자리에 대신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둔다.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인 책의 페이지를 찢는 행위가 ‘나’에게는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것의 목마른 외로움과 미지의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의 표현이다. 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간절한지 깨닫게 된다.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장은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안’에서 ‘밖’을 향해 돌아 앉아 소통과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갈구하고, 또 다른 이는 사람과 관계맺기를 위해 책을 찢기도 한다. 또 지붕에 살아야만 했던 남자는 하늘에서 내리는 티슈로 인해 자신과 낯선 사람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런 고립되고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견주어 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삶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된다. 그건 바로 장은진이 독자와 공감하고자 한 소설적 방식일 텐데, 그런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소통되지 못해 헐벗은 관계에 대해 우리는 깊은 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진정한 ‘당신’을 만난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의 방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사람이므로, 그래서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알려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쉽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감싸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주는 것뿐이다.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96~97쪽 중에서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존재들, 그런 이들과의 소통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게 장은진 소설의 한쪽 모습이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사랑’을 주고받는 형식에 대한 독특한 방식을 새롭게 재발견한 인물들의 삶이 놓여 있다. 표제작「빈집을 두드리는 이유」에서의 주인공 ‘나’는 조용한 아파트단지를 향해 돌멩이를 던진다. 뚱뚱하고 덥수룩한 겨드랑이 털을 가진 여자는 아파트의 적막함이 싫어 돌멩이를 던지지만 실은 그녀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이 싫어서 그런 돌출 행위를 했던 것. 그러나 그런 일상의 무료함을 깨는 건 옆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 옆집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고장난 초인종 대신 그 집 문을 두드린다. 여자는 점점 그 부재하는 사람이 남겨놓은 흔적들을 통해 그의 정체를 추측하기 시작하고 그의 존재가 마치 자신의 공허함과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같은 동류임을 확신하게 된다.
버스에 이동식 도서관을 만들어 사방 곳곳을 떠도는「찾아가는 도서관」에서는 주인공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암묵적 필요에 의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셈인데, 시간이 흘러 그 여자가 남자의 죽은 친구의 아내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 소설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앞서 얘기한 두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해설자 정실비(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영향을 주고받고, 섣부른 합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이 말은 장은진이 생각하는 ‘사랑’의 메커니즘이라 할 만한데,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을 가로지르는 갈등이라는 요소보다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갈구’하는 특징이 소설 중심에 놓여 있다. 한 여자는 비어 있는 집의 부재하는 주인에게 손을 내밀고, 불륜을 저지르는 한 남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강아지에 온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처럼 장은진 소설에서 인물은 사랑에 대해 갈구하며, 그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대개 홀로 시작하거나 한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안에 웅크려 있지만 밖을 갈구하는 사람들, 장은진은 그런 사람들의 ‘바깥’을 향한 열망이 결코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홀로 타인을 갈구하는 시간 동안에도 사랑은, 새로운 삶을 깨우쳐주는 시간이 되어준다고 오히려 역설한다. 그러면서 장은진은 혼자이면서 사실은 혼자가 아닌 사랑이 ‘나’를 잃지 않고 진정한 ‘너’를 만날 수 있다고 차분하면서도 강한 어조로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