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의 신작 산문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각종 먹을거리 이야기를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낸 『소풍』, 세상만사 진기한 잡학을 집대성한『유쾌한 발견』을 잇는, 이번 산문집의 테마는 ‘농담’이다.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우리 문단에 새로운 해학과 풍자의 자리를 구축한 성석제. 그가 이 산문집에서 지금껏 소설에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했던 ‘생짜’ 농담을 작정하고 풀어냈다.
그의 플래시가 발광發光하면
포복절도할 농담이 쏟아진다!
성석제만의 남다른 취향과 몰두, 아릿하고 유쾌한 기억들이 한데 얽혀 있는 이 산문집에는, 오랫동안 그의 메모리카드에 저장돼 있던 스냅사진들이 함께 실려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사진보다는 그 사진이 쏟아내는 갖가지 사연들이 더 흥미진진하고, 평범한 장면에 그가 시치미 뚝 떼고 달아둔 엉뚱하고 기발한 캡션들이 더 큰 웃음을 자아낸다. 어딘가 수줍은 듯 아쉬운 듯 셔터를 누른 그의 흔적들마다, 한 컷의 사진으로는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었던 결정적이고 극적인 순간들이 한바탕 푸진 농담과 함께 따라붙는다.
먼저 1부 ‘나는 카메라다’에서는 오랜 세월 이어져온 그의 ‘탐닉’의 연대기가 펼쳐진다. 손목시계, 지리산, 책, 생맥주, 파이(π)에 이르기까지 그가 집요하게 쫓아다닌 볼거리, 먹을거리, 놀 거리 이야기에 더해, 공인되지 않은 바둑의 기술―TV동반기, 와기(臥棋), 족기(足棋) 등을 진지하게 해설하는 기상천외한 성석제표 바둑 관전기, 아무리 ‘막’ 자가 붙었을지언정 개성이 없으면 안 먹는다는 그의 별난 막국수 철학도 엿볼 수 있다.
2부 ‘길 위의 문장’에서는 여행자 성석제가 길 위에서 보고 겪은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중계된다.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제주도, 아바이 마을, 북한, 중국의 사오싱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단연 폭소가 터지는 대목은 길 위에 설 때마다 도지는 그의 지독한 ‘활자중독증’이다. 성석제는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간판, 표지판, 안내문 앞에 멈춰 서서 골똘히 그 ‘길 위의 문장’들을 탐구하고 그 문장의 작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성정과 활동반경을 추리해낸다. 비문, 오문으로 그득한 표지판들이 차고 넘치는 ‘문자의 왕국’ 대한민국에서 불치의 활자중독증을 앓고 있는 소설가가 겪는 역경과 고난은,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웃음포인트다.
3부 ‘마음의 비경’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출몰하는 우리 주변의 고집불통, 엉뚱한 이웃들의 생활백서다. 야산과 약수터에서 가쁜 숨을 훅훅 내뱉으며 연약한 나무에 배치기 운동을 하고, 라디오를 어깨에 짊어진 채 ‘뽕짝’을 울리며 늠름하게 산행하는 사나이, 전철에서 휴대전화로 ‘오와아핫핫’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서로의 현 위치와 상태를 상세히 보고하는 우렁찬 목청의 소유자 등, 우리네 이웃들의 역동적인(?) 일상생활이 성석제의 포커스에 들어와 웃지 못할 비경(秘境)으로 클로즈업된다.
왁자지껄 쑤군쑤군 끼룩끼룩
뭔가 수상한 그들의 성깔과 개성을 찍어낸다!
왁자한 웃음과 기발한 몽상이 꿈틀거리는“농담 카메라”
이 산문집에는 그가 탐닉하는 막국수처럼 쫄깃하고, 바둑의 수처럼 오묘한 일상의 풍경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성석제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장에 그 풍경들을 면면히 녹여내어 우리 이웃들의 삶과 개성을 치밀하게 접사해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돌연 입에 침이 고이고 생맥주 한 잔에 메뚜기볶음 안주를 먹고 싶어진다면, 또 등 뒤에서 메뚜기 날개가 돋을 것처럼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자전거를 타고 이 도시를 한없이 질주하고 싶어진다면, 이 산문집을 제대로 읽어낸 것! 그의 입담에 취해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보면, 어느새 그 포복절도할 농담의 세계에 중독돼버릴지도 모른다.
흔히 디지털카메라의 사진들은 손쉽게 저장되고 가볍게 삭제된다. 성석제의 메모리카드엔 화려하고 그럴듯한 사진들은 없지만 그 속에 담긴 웃음과 눈물은 깊이 저장되고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성석제’라는 이 별난 카메라는 멋들어진 한 컷의 감흥보다는 오래도록 지속될 웃음과 눈물을 농담처럼 툭, 찍어내 펼쳐 보인다.
쉴새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자신의 글쓰기를 두고 그는 언젠가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내가 웃는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가 자신만의 암실에서 혼자 키득거리며 한 장 한 장 남몰래 인화해두었던 일상과 추억의 조각들을, 이제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려 꺼내놓는다.
약간의 수줍음과 번뜩이는 호기심, 그리고 사람과 삶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우리 사는 세상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촬영해온 우리 시대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이 책은 그 별난 카메라가 포착해낸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화보집이다.
카메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동카메라조차 최소한 셔터를 누르는 조작은 필요하다. 또 카메라를 쥐고 있는 위치에 따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고유한 관점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러니 특별한 기술이 없다고 해도 사진은 언제나 조작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조작의 셔터는 농담이다. 아니 나라는 카메라 자체가 농담을 좋아한다. ‘농담 유전자’는 인류의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생존에 불가결한 유전자이다. 농담 유전자는 개인에게는 건강을 선물하고 공동체의 활기를 높여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원래 건강하고 수준 높은 삶을 살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농담이 활개 치는 스스로의 숲을 발견하기를, 또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보물을 찾으러 뒤란에 갈 때처럼 설렘을 가질 수 있기를.
―작가의 말에서
* 2008년 6월 7일 발행
* ISBN 978-89-5546-0584-7 03810
* 152*194 | 340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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