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사소한 것들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버무려낼 줄 아는 시인 윤제림의 다섯번째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가 출간되었다. 『사랑을 놓치다』(문학동네, 2001) 이후 칠 년 만에 내놓는 이 시집은 한층 더 원숙한 시선과 치밀하고 정제된 구성을 통해 시인 특유의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시편들을 맛깔나게 담아내고 있다.
세간(世間)에서 출발하는 시
‘세간’은 살림살이에 쓰이는 온갖 물건에서부터 세상 일반, 불교용어로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모여 있는 공간을 일컫는 말이다. 형이상학 혹은 출세간(出世間)을 지향하는 시라 할지라도 시인이 살고 있는 세계는 ‘세간’ 안일 수밖에 없고 이것을 인식하고 출발하는 시는 명징하다. 윤제림의 시는 이 ‘세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에서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출세간/형이상학을 ‘세간’ 안으로 품어내고 있다.
청소당번이 도망갔다.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 했다.
―「걸레스님」 전문
이 시는 걸레스님으로 잘 알려진 중광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괜히 왔다 간다”라는 선적인 임종게를 남긴 중광스님을 ‘불량학생’의 이미지로 희화함으로써, 시인은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상황극’ 형식을 빌림으로써 시인의 목소리는 일체의 해석이나 판단을 배제한 채 슬쩍 시 뒤로 숨어버린다.
독자의 자율적인 참여와 해석의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시인 특유의 여백은 한층 더 세련되어진 것이다.
먼 데서 온 사람들에게
낡고 지친 고깃배가 도망을 치면 얼마를 가랴. 해경 순찰함에 끌려 배 들어온다. 목포항구 중국 배 하나 들어온다. 이 배엔 누가 탔나. 연변서 온 이가 박가, 길림 사는 최서방, 흑룡강서 나온 장소저…… 갑판 밑에서 탄식하며 기어나오는데. 천리 뱃길 허사로세, 용궁 꿈도 헛꿈이로세. 어이 돌아가리. (……) 이런 속에, 어린 처녀 하나 유독 슬피 우는데, 아이고 아버지 불쌍한 우리 아버지, 이렇게 소리 높여 제 애비만 찾으며 울더라.
―「심청가」 중에서
어여뻐라. 한양성 가는 방자처럼 걸어서 날 찾아오는 사람. 아니면 어이 가리너. 혼자서 어이 가리너,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칠흑의 어둠 속에서 열나흘은 흐느끼겠지. 어이 가리너, 이정표도 없는 길을. 울부짖으며 맨발로 내닫겠지. 생각느니, 안개 속 구만리 벼랑길로 나를 데리러 오는 그이는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 그 먼 길을 오토바이도 없이 걸어서 오는 사람.
―「그는 걸어서 온다」 중에서
「심청가」는 배를 타고 밀입국하다 적발된 중국 동포들의 애환을 그려낸 시이다. 이 시집에서는 이와 같이 해외 동포나 외국인들의 모습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아침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 “낯 검은 사내들”(「가정식 백반」)이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로 집을 나온 베트남 여인(「안남댁」), 손목이 잘린 스리랑카 소년(「손목」) 등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망자를 데리러 오는 저승사자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그는 걸어서 온다」는 「저승사자는 아는 사람이다」 「친구 하나를 버린다」 「입국과 출국」 등과 더불어 죽음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온 시이다. 이같은 성향은 ‘세간주의’라 일컬을 수 있는 것으로, 시인의 시세계에서 가장 큰 특징을 이루고 있다.
위의 두 시를 비롯한 시편들에서 시인은 ‘멀리서 온 이’들을 주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인은 사람들이 보통 가장 멀고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통념과 다른 위치에 놓음으로써 읽는 이를 ‘낯설게’ 하고 거기서 ‘읽는 재미’를 창출해낸다. 이와 같은 방법이 시 속에서 구현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시인의 내공이 이를 탄탄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요, 한층 더 깊게 들여다보면 시인의 세계관 때문이다.
화엄(華嚴)의 세계
낡거나 모자란 것들 쪽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건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노인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어린아이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까닭을 생각한다.
―「시인의 말」 중에서
“낡거나 모자란 것”에 시인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홍섭은 시인의 세계관을 “화엄적 세계관”이라고 정의하고, 이 세계는 “이것이 저것에게 저것이 이것에게 생명을 주는 세계이고, 이 세계는 이러한 생명의, 연기의 그물망이 한없이 펼쳐진 곳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다른 것을 있게 하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때문에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세계 속에서는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중요한 것도 덜 중요한 것도 없다. 이로 인해 시인의 시에서는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유연함에서 비롯되는 개성적 사유와 구성의 치밀함이 시를 살아 숨쉬게 한다. 일찍이 신경림 시인이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고 평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점을 두고 나온 말일 것이다.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싱겁게 얘기한다. 시치미를 뚝 떼고 무거운 세계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시치미떼기는 사물, 사태와 거리를 두고 시적 긴장을 유지한 채 에둘러 말하는 방식이다. 심각한 얘기를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도 일종의 ‘낯설게 하기’이다. 도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하나 하는 의문이 긴장과 집중을 불러오고, 희화화된 이야기를 통해 걸러나오는 슬픔이 삶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에의 고양을 가져오는 것이다.
_이홍섭(시인, 문학평론가)
* 초판발행 | 2008년 4월 21일
* 121*186 양장 | 128쪽 | 7,500원
* ISBN|978-89-546-0561-8 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