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
삶이라는 무게가 더이상은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질 때, 그때 그 짐을 나누어 질 사람들은,
내겐 아무도 없다고, 이 세상엔 이제 나 혼자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때, 내가 돌아갈 그곳은, (오랫동안) ‘가족’이었다. 그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어줄 사람들, 나를 감싸줄 사람들, 결국에는 내가 돌아갈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타인보다 나를 더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 밖 누구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역시 때론 ‘가족’이다. 우린 때로(어쩌면 언제나) 타인에게 더 관대하다.
2009년 대한민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나를 보호해줄 따뜻한 보금자리일까, 나를 옭아매는 굴레일까. ‘나’는 과연 그 둥근 원의 안쪽에 있는가, 원의 밖에서 맴돌고만 있는가.
“도발적이고 발칙하며 감각적이고 치밀한” 작가 정이현의 눈부신 비상!
_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정이현. 2002년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데뷔, “도발적이고 발칙하며 감각적이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에 등장한 작가는, 문단과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 산뜻한 구성, 건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 곳곳에 솔직담백하게 표출된 21세기 도시 남녀의 삶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 속도감 있는 전개, 적재적소에 포진한 젊은 도시인들의 생활코드와 감성…… 정이현만의 독특한 감성과 이야기 전개는 수십만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젊은 독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 작가 정이현. 그가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줄까. 저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호흡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새 이야기, 독자들과 새롭게 소통할 이야기는 가족, 그 양가적인 감정의 둥근 동그라미이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은 ‘가족’의 문제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집은 있다. 그리고 여기, 한집에 사는 다섯 사람이 있다.
얼기설기 혈연으로 얽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각각 개별자이자 단독자로 살아가는, 조그맣게 웅크린 그림자들.
그 다섯 그림자의 그늘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2008년 2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빌라.
김상호와 진옥영 부부, 바이올린 영재인 열한 살짜리 딸 유지, 김상호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혜성이 함께 살고 있다. 혜성의 친누나 은성은 학교 앞 원룸에 기거하며 가끔 집에 들른다.
김상호는 골프장으로, 진옥영은 친정으로, 혜성은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로 저마다 집을 비운 어느 일요일 오후, 서울 하늘에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한 울타리 안,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이들은 진정 ‘타인’인 것일까.
표류 사체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시체가 발견된 것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비둘깃빛 가운을 부대자루처럼 뒤집어쓴 성가대원들이 직사광선 내리쬐는 교회 뒤뜰에 줄지어 앉아 2부 예배 때 부를 찬송을 연습하는 시간, 지난밤 처음 만난 연인들이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뜨겁고 어색한 두번째 섹스를 나누는 시간, 조기축구회 유니폼을 입은 이기적인 가장들이 넓적다리와 정강이 근육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중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시간이었다.
(……)
일요일 오전 열시. 회사원은 늦잠을 자고 교인은 기도를 하고 연인은 사랑을 속삭이며 누군가는 축구공을 찬다. 막 몽정을 시작한 사내아이들이 강가를 이유 없이 배회하는 것도, 강바닥을 흘러다니던 시체가 홀연히 떠오르는 것도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사건은 시작은, 그러니까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2002년, “나는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는다”는 야릇한 선언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삼십대 직장인 독신여성의 환상과 일상을 놀랍게도 간파해냈던 정이현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알몸의 변사체로 소설의 문을 열었다. 2008년 2월, 방배동 서래마을의 다섯 가족, 그리고 몇 달 뒤 한강에서 발견된 알몸의 표류사체. 그는 누구이며, 이 가족과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사건의 과정 혹은 숨겨진 행간들, 결국은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에 작가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은 서울이라는 도시, 그리고 5월의 한강변. 변사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정이현 역시 새롭게 비상한다.
※
2008년 8월 1일 『너는 모른다』는 인터넷교보문고에 그 첫 선을 보였다. 그로부터 꼬박 십 개월, 작가 정이현은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설 속 다섯 식구와, 그리고 독자들과 함께였다. 그러고도 다시 칠 개월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너는 모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제 그의 문장을 너머, 우리에게로 왔다. 그의 인물들이 독자들 안에서 그들의 생을 충실히 살아가길.
▶ 정이현 |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 『오늘의 거짓말』(2007),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2006)가 있다.
* 초판발행 | 2009년 12월 10일
* 145*210 무선 | 488쪽 | 값 12,000원
* ISBN 978-89-546-0964-7 03810
* 책임편집 | 조연주(031-955-8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