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단독성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우리 시대 작가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의 비평
1부 ‘논리와 윤리’에서는 최근 한국소설에서 발견되는 소통의 가능성과 ‘문학은 죽었다’는 종언의 선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 종언의 시대를 견뎌내는 새로운 경향의 소설들을 주제론으로 묶어 평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라는 역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주인공이 공동체를 이탈해 근대적 개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삶의 여로를 ‘국경’과 ‘민족’의 담론에서 풀어간 김영하의 『검은 꽃』과 황석영의 『심청』론, 그리고 편혜영, 천운영, 윤이형 등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우리 소설계의 비인간적 동물들을 분석한 「인간을 향해 혹은 인간을 넘어」론 등을 비롯해 ‘새파랗게 날이 선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과 양상을 치밀하게 분석한 평문들이 실려 있다. 이경재의 눈에 든 작품과 작가 들의 면면을 따라가다보면 “문학의 죽음을 선언하는 최종 판정의 지분은, 작품의 질과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과 자존을 걸고 있는 치열한 예술혼들에게도 얼마간 돌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확신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부 ‘역사소설의 신생’에서는 이전 시기와 구별되는 2000년대 역사소설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역사소설은 결코 주변장르에 머물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매 시기 소설의 새로운 문법과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하나의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고 단언한다. 홍석중의 『황진이』, 신경숙의 『리진』 등 평단과 대중 양측의 호응을 얻은 주목할 만한 역사소설들과 함께, 2000년대 역사소설이 넘어선 지점과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짚어본다.
3부 ‘진실의 사제들’에서는 김소진, 박완서, 전상국 등 중견작가들의 노련한 이야기 세계를 살피면서 우리 소설이 진실을 좇는 방식을 탐구한다. 또한 책의 표제가 된「단독성의 박물관」에서 저자는 ‘인간의 단독성은 대체될 수 없다는 세계관’ 위에 굳건하게 서 있는 김중혁의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논하며, 그 어떤 ‘동일성’으로도 귀속되지 않으며, ‘일반성의 회로’와 ‘상상계의 틀’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 ‘진정한 단독자’로서의 ‘나’를 건설하는 진일보한 소설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풀어낸다. 더불어 4부 ‘감동의 근거’에서는 김훈의 『개』,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구경미의 『미안해, 벤자민』,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한차현의 『여관』, 권기태의 『파라다이스 가든』을 분석하면서 현대의 문학독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원하고 어떤 지점에 공감하는가에 대한 지도를 그려나간다.
마지막 5부 ‘징후와 맥락’에는 ‘SF적 상상력’ ‘낯설게하기’ ‘구술성의 복원’ 등 2000년대 우리 문학의 뜨거운 테마들을 분석한 평론들이 실려 있다. 요즈음 젊은 작가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상력과 사유를 맥락화하여 한국문학의 배경과 비전을 가늠케 했다.
저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비평이란 주장하고 ‘말하는 비평’이 아니라 ‘듣는 비평’이다. ‘오랜 고투 끝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는 수많은 작가들을 향해 저자는 이 평론집의 필자는 자신이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동시대의 작가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고백한다. ‘한 줄도 안 되는 명제나 도그마를 바탕으로 작가를, 나아가 세상을 윽박지르며 젠체하는’ 평론이 아닌, ‘시간의 파괴력’을 견뎌내며 지금 여기의 문학 현장들을 깊은 눈으로 응시하고 전망하는 평론을 꿈꾸는 문학평론가 이경재. 이 책은 그가 등단 이후 끊임없이 발굴하고 수집한 2000년대 우리 문학의 ‘진경’만을 모은 통찰의 박물관이다.
추천의 말
이경재 평론집 『단독성의 박물관』은 김훈에서 김중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어떤 작가들이 탐독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론과 용어 들이 오늘의 한국소설의 비의를 풀어내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알게 해준다. 수삼 년 동안에 신진비평가가 이만큼 많은 소설을 읽어내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고 이만큼 작품들을 정치하게 파고들어갔다는 것도 감탄할 만한 일이다.
이경재 평론집 『단독성의 박물관』에서는 자기과시의 제스처, 인상비평이나 수사적 비평에의 쏠림,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 등과 같은 일부 젊은 비평가들의 문제점은 찾기 어렵다. 이번 평론집처럼 끈질긴 정독과 날카로운 해석을 통해 평론가로서의 내공을 계속 쌓는 한, 이경재는 틀림없이 울림이 큰 평론가가 될 것이다.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튼실하게 봉사하고 있으며 자신에게는 계속 자강불식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이경재는 미래의 한국문학평론을 이끌어갈 아방가르드의 일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평론집 『단독성의 박물관』이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_조남현(서울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