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속에 남은 불씨들을 지펴,
혹은 서늘한 얼음덩이를 녹여 문자로 복원하며
나는 다시 시인이 되었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투명함에 대한 나의 열정을 확인하며.
애매모호한 정확함, 그게 詩이며 문학이 아니던가.
정확한 문장이 아름답다고, 옳은 문장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나는 아직도 믿는다.
_‘시인의 말’ 중에서
“그녀의 스타일은 바로 그녀의 독립성이다. 그녀의 시는 삶으로 쓴 시들이다”
오랜 시간, 최영미는 ‘투사’였다. 함부로 입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투사였고, 지나간 혁명의 투사였으며, 치열한 일상의 투사였다. 그러나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그는 투사이기 전에 언제나, ‘시인’이었다. 이곳에는 없는 혁명과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가진 예민한 촉수로 인해 언제나 ‘현재’를, 오늘 이 사회의 작은 구석구석을, 더없이 아프게 앓아내는 ‘시인’이었다. 그가 온몸으로 부딪쳐서 겪어낸 사랑과 혁명은 시인의 일상의 일부였다. 그의 삶의 한가운데에 지나간 혁명의 상처가, 쓰디쓴 사랑의 흔적이 강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관습과 예의를 따지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스런 모험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스타일은 바로 그녀의 독립성이다. 그녀의 시는 삶으로 쓴 시들이다.
_제임스 킴브렐(시인)
자칫 그의 시가 위험해 보이는 것은 오히려, 너무 솔직하고, 건강한 만큼 무모하고, 직설적이어서이다. 그에게 사랑과 혁명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듯, 그의 시 역시 먼 곳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일상의 빛나는 순간순간에서 솟구쳐나온다.
강철처럼 단련된 시들에서 사랑과 정치에 대한 정열적인 탐색, 놀랍게도 신선한 무모함이 페이지마다 터져나온다. _체이스 트위첼(시인·평론가)
해서 그의 시는, 시인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답인 동시에, 또한 2009년 오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사랑과 운명, 그리고 그 근원에 대한 질문이다.
‘도착하지 않은 삶’을 구하는 시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현대의 ‘도착하지 않은 사랑’ ‘도착하지 않은 시’를 의미한다.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 현대적인 창조의 샘물이 솟아난다. 옛날의 로맨티시즘은 좌절할 운명을 이한 것이다. 도착하지 않은 삶을 구하는 것이 시이다.
_사가와 아키(시인, ‘해설’에서)
일기를 쓰듯, 정작 시인은 담담하게 써내려감에도, 그 단정한 시구들을 절규와 외침으로, 농담을 풍자와 일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시인의 것이 아니라, 곧 ‘나’의 것으로 들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살비듬을, 팔꿈치 발뒤꿈치의 굳은살을, 시인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간의 힘으로 아물 만큼 아물어 이제는 원래의 살처럼 되어버린 흉터들을, 시인은 다시금 바라본다. 과거로 소급해 그날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더께가 더해져 새로운 무늬를 만들고 있는 바로 지금의 흉터를, 지금 오늘의 눈으로 관찰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읽으며,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제대로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 ‘수저를 들어야 얼마나 배고팠는지를 알게 되고, 누워 쓰러져서야 얼마나 피곤했는지 깨닫듯’(「일상의 법칙」) 태생적으로 예민한 시인의 눈을 가진 그에게 조금 먼저 도착한, 우리 삶의 한순간을 조금 먼저 앓아준 것이므로.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렵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퓨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_「나는 시를 쓴다」 전문
* 초판 발행 2009년 3월 25일
* 121*186 양장 | 128쪽 | 7,500원
* ISBN 978-89-546-0785-8 03810
* 책임편집| 조연주, 이경록(031-955-8865, 3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