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의 삶으로 최윤을 읽는다.
최윤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의 첫 산문집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최윤의 첫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문학동네 刊)이 출간되었다.
「회색 눈사람」 「하나코는 없다」 등의 작품으로 채 1세기도 안 된 우리 소설사에 관념적 글쓰기라는 독특한 글쓰기로 한 장관을 보여온 최윤이 자신의 삶과 문학세계를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갈무리한 이 산문집은 생활인으로서의 최윤과 소설가 불문학자로서의 최윤의 모습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이를테면 최윤의 전신상이 반영된 성능 좋은 거울이다. 독자들을 이 거울을 통해 최윤을, 최윤의 문학을, 세상을 읽은 수 있다.
순정만화가의 꿈과 소설가의 길!
아주 어렸을 적에 순정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최윤은 나름대로 수많은 주인공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만화에 빠져든다. 그러나 저자은 그림과 이야기가 결합된 만화에서 그림을 버리고 이야기를 취한다. 만화에서 저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재미를 주었던 것은 이야기 쪽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어린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받았고, 서서히 미래의 소설가로 기틀을 다져온 셈이다.
이처럼, 이 산문집은 순정만화가를 꿈꾸며 만화책 속을 주유하던 저자가 어린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자신이 발표했던 작품에 대한 비밀, 그리고 저자가 읽은 책과 세상 이야기들을 답사하며 툼?한 언어의 거푸집을 만든다.
저자는, 가꿈 따스한 가을빛에 고추를 말리듯 습기에 부푼 오래된 책들을 내어다 말리거나 삶이 힘들고 용기가 필요할 때, 몰래 꺼내보는 어머니 사진 같은 고향을 회상하며 잘못된 언어습관을 바로잡아준 어머니의 매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학창시절 꿈을 미술과 문학 쪽으로 바꿔놓은 도서관의 청소시간과 최윤식의 서울 활용법도 흥미롭지만, 보석감정 세공사 발명가 도서관 희귀자료실 사서 우주선 디자이너 등 그가 꿈꾸었던 직업을 추억하는 장면은 그의 최근작 단편 「집 방 문 벽 들 장 몸 길 물」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최윤이 읽은 최윤의 작품들!
그러나 이 산문집의 빛은 아무래도 소설가로서, 불문학자로서 저자의 모습이 도드라질 때 발휘된다. 작가 최윤의 최윤다움도 그의 성장과정을 챙겨갈 때보다도 자기 작품의 뒷얘기와 저자가 읽은 몇몇 책들을 고백하고 소개할 때이다.
먼저, 동인문학상 수상작은 「회색 눈사람」에서 저자는 "모든 경험은 작품의 형상화가 요구하는 법칙에 복종해 각색, 변형되기 때문에, 진짜 경험의 분명한 흔적은 무한히 흐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어디까지를 우리는 자전적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자전의 경계」)라고 자전(自傳)의 경계에 의문을 던진다. 주인공 강하원의 경우, 4 19에 죽은 한 친구를 토대로 조형한 인물이지만 그것은 또한 "기억 속에서 혼합된 무수한 얼굴들"이 뒤섞이면서 탄생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체험의 일부이지만 이미 창작의 용광로에서 화학적 변화를 거친 언어적 현실로서의 자전인 셈이다. 이른바 자전이 작품의 모태였지만 작품은 자전을 넘어서는 곳에서 자전(自傳)한다.
이렇게 자전하는 작품들은, 거창한 역사와 이념에 가려진 개인의 사소한 진실찾기 천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연약한 영혼이 당한 상처를 통해 80년 광주항쟁을 고발한 등단작 「저기 소리없이 한 접 꽃잎이 지고」의 경우, 이 작품은 자신이 겪지 못한 "광주항쟁에 바치는 내 나름의 헌사"라며 광주항쟁 당시 프랑스 유학생으로서 고국의 보도기사를 쌓아놓고 망연자실했던 처지를 담담하게 회상한다. 그러면서 "말로 되어질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한 이 작품을 통해 소설의 정체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다. 그것은 "늘 말로 되어질 수 없는 삶의 국면에 소설의 언어는 도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동반한 채, 소설은 "말이 지워지는 극한 지대 어딘가에 위치"(「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윤 소설관의 한 단면의 현상에 다름 아니다.
그 외에도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 몸의 종기처럼 자리잡은 왜곡된 관핸을 한 번 되짚어본"작품인 「하나코는 없다」, 53개의 단장들로 이뤄진 "짧은 연애소설"인 「숲에서 숲으로」와 "우리의 전래문장이 가지는 힘과 박력을 반어적으로 소설쓰기에 적용해보는 과정"에서 태어난 「푸른 기차」의 훗일담을 통해 세상사에 짓눌린 개인적 진실을 어떻게 작품화하고 있는가를 들려준다. 전자의 경우 저자에게 "관계란, 미로만큼이나 조심스럽게 탐사해야 출구가 찾아지는 것"이라며, 저자는 "한번쯤 하나코적인 세계관, 하나코가 대변하는 여성성의 세계관이 꼭 한 번쯤 대안을고 등장해야 할 단계"(「인간 관계의 출구」)에 다라달 있지 않은가, 하는 작품의 화두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그런가 하면 후자의 경우는 말의 재미라는 "우리말에 대한 조금은 장난기어린 관찰을 작품의 동력으로 사용"(「말의 재미」)한 작품임을 토로한다.
이렇듯 작품에 대한 뒷얘기는 저자의 남다른 관찰력과 치열한 사색, 그리고 삶의 미세한 것들에 혼을 불어 넣는 작가적 역량과 언어에 대한 결벽증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흥미를 자극한다.
불문학자 최윤, 최윤이라는 텍스트!
그리고 불문학자로서의 저자는, 단편적으로 소개한 독서 품목 ?석구석에 흩어져 있다. 조르주 뻬렉의 「사물들」, 르네 빅토르 필의 「저쭈자」, 시몬느 베이유의 「뿌리내리기」, 다니엘 뻬낙의 「소설처럼」, 마르그리트 뒬스의 「연인」,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등 저자의 영혼을 흥분시키고 정신을 격앙시켰던 책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우리는 그 자신이 곧 다름아닌 한권의 아름다운 텍스트임을, 휘황한 눈길로 확인하게 된다. 책의 우주 속에서 서권기(書卷氣)로 숨쉬며, 책처럼 살악는 저자의 정신은, 때로 책과 문학을 벗어나 인접 분야로 나아가낟. 그러나 그것 역시 작가라는 소실점을 향해 집적되는 최윤 문학의 또다른 얼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흑백으로 그려진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왜 흑백으로 그려졌을까라고 그림의 흑벡이라는 무채색을 문제삼을 때, 그리하여 "스페인의 어두운 현실과 과거의 신화를 병치시킨 거대한 서사시"를 읽어 낼 때, "가장 단순화된 것으로 가장 서술적인 것을 말하는 힘이 ?록 설득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왜 흑백으로 그려졌을까」)라며 탄성을 낳을 때,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것 속에서 미세한 삶의 진실을 읽어내는 작가의 모습을 속절없이 드러낸다.
수줍은 아웃사이더에서 인사이더, 그리고 영원한 아웃사이더!
성장기, 꿈, 책, 세상 등 그의 소설 일부를 발췌하여 놓은 것 같은, 견고한 사유와 정갈한 언어의 향연은 읽는이에게 시종일관 따뜻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것은 수줍은 고백으로 엮은 한 소설가의 아름다운 초상이다.
한때는 수줍은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젠 분명 인사이더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는, 창작에서만큼은 영원한 아웃사이더이다. 특히 고전적인 소설 문법의 파괴와 부단한 형식실험을 통해 우리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어온 저자의 행각은 분명 영원히 아웃사이더로 남고자 하는, 이 시대의 독특한 개성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준다.
이제 우리는 이 산문집을 얻음으로써 최윤 문학의 낙원을 향한 행복한 비밀통로 하나를 갖게 되었다.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은 최윤이 안내하는 최윤의 문학의 눈좋은 길잡이이다. 최윤의 삶으로 최윤과 세상을 읽게 많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