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불교인문주의자의 정신적 편력을 담은 불교에세이집 『월정사의 전나무숲길』이 나왔다.
저서로 『달마에서 임제까지』 『붓다, 해석, 실천』 『중관불교와 유식불교』등이 있으며, 역서로 『임제록』 『중국문학과 선』 『전심법요』등 다수가 있다.
한 불교인문주의자의 구도와 방황의 왕오천축국전
모두 4부로 나누어진 이 산문집은 세상을 불교적인 사유방법으로밖에 바라볼 줄 모르는 삼십대 불교인문 주의자가 광할한 경전(經典)의 우주를 횡단하며, 문학적인 감수성과 철학적인 사색으로 일궈낸 방황과 회귀의 기록이다.
고승 원효와 의상, 백련결사의 여산 혜원, 그리고 시인 왕유, 백거이, 귀재(鬼材) 이하의 삶과 사상, 회심곡에 깃든 체념의 미학, 문학평론가 김현의 불교이해, 알기 쉬운 육바라밀강좌에 이르기까지, 옛날과 오늘, 경전과 세상, 선과 지혜의 세계를 궁구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제1부는 비교적 사적인 관심에서 출발한 글들을 모았다. 사찰 여행이나 책읽기를 통해 고승들의 생애와 사상을 더듬거나 회심곡이나 문학 속에 스며든 불교의 얼굴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부석사와 낙산사행에서 만난 원효와 의상의 생애와 사상은 그에게 상풉주의 문명에 찌든 오늘의 불교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리고 평론집『전체에 관한 통찰』이라는 텍스트 분석을 통해 문학평론가 김현의 뛰어난 불교이해를 엿본다. 그에 따르면 김현은 치밀하게 다져진 내부와 동시에 밖으로 향해 열린 안목으로 문학작품속에 깃든 불교적 세계를 읽어내며 억압과 폭력이 없는 인간해방의 문제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와 문학이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제2부는 긴 여운이 남는 선(禪) 이야기들이다. 마음의 해탈을 염원하는 불교 정신주의의 가장 극명한 모범이라고 분류되었으나 이제는 고색창연한 유물이 되어버린 선을 위한 변호의 마당이다. 선은 본질적으로 자기탐구의 행법이며 깨달음을 철저히 추구하는 행동원리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 본래의 정신이 유실되면서 현실과 유리된 채 기나긴 은자의 삶을 이어왔다. 그는 이 선불교의 순수하고 유연한 인간통찰을 체득할 수 있다면 물질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는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제3부는 불교사상가들을 중심으로 한 불교사상 탐험을 모은 것이다. 이 산문집에 진중함을 더하는 이 장(章)은 대승불교를 중국에 이식한 불교사상가 쿠마라지바, 내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불교적 전형을 보여주는 백련결사의 여산 혜원, 선종과 합류함으로써 선의 깊고 무한한 영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시인 왕유, 백거이, 귀재 이하의 생애와 사상을 좇으며 그것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를 수행하는 지은이의 관점은 그들의 방황과 회귀의 연대기를 따라 이뤄진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의 삶도 긴 방황에서 마침내는 자기회귀라는 공안의 해체에 의해 완료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4부는 불교를 묻는 젊은이들을 위한 육바라밀 강좌를 실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 보살 수행의 여섯 가지 덕목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불교의 대중화를 실천하는 부단한 노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탄탄한 경전 이해에 힘입은 힘의 산문
이 산문집은 불교의 대중화와 대중의 불교화를 위해 노력해온 지은이의 정신적 편력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내적 긴장으로 충만된 힘의 산문을 구사한다. 그것은 강건하고 힘있는 문체, 사유의 미세한 부분들을 챙겨가는 문장의 활달함, 그리고 왕성한 학구열 등을 통해 형성된 독특한 질감을 자랑한다. 이러한 그의 문장은 분명하고 사색의 울림은 크고 넓다.
그리고 이 산문집을 여타의 불교에세이와 분명한 차별성을 갖게 하는 것은 지은이의 탄탄한 경전 이해에 있다. 경전의 망망대해를 종횡무진 항해하며 그 정제된 성과물들을 문장으로 받아낼 때 자칫 공허해질 수도 있는 주제들은 생생한 실감과 명료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요즈음 유행처럼 쏟아지는 스님들의 다분히 정신적 나르시즘이나 충족시키는 감상적인 에세이류와는 달리 『월정사의 전나무숲길』은 왕성한 경전 탐구와 사색의 치열함을, 이땅의 불교현실과 불교 지성의 만남을, 그 결실을 보여주는 한 전형으로 학구적인 불교에세이의 도도한 경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