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교보문고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내게 무해한 사람』 특별 한정 에디션
미숙했던 지난날의 작은 모서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
이야기가 가진 본연의 힘과 사람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며 한국문학의 서정성과 서사성을 새롭게 발굴해낸 소설가 최은영의 세 작품 『쇼코의 미소』(2016), 『내게 무해한 사람』(2018), 『밝은 밤』(2021)을 특별 한정 에디션으로 선보인다. 이번 에디션은 기존보다 작아진 판형에 은은한 색감과 부드러운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박선엽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쇼코의 미소』로 커다란 주목을 받은 최은영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으로 사랑에 빠진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 여름」, 이십대의 한 시절을 공유한 세 인물의 우정과 사랑을 긴 호흡으로 담아낸 「모래로 지은 집」 등 관계가 시작될 때의 설렘과 긴장부터 그것이 어긋나고 스러질 때의 무력과 냉담까지 우리가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투명하게 묘사한 7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젊은 여성들의 삶에 드리운 섬세한 촉수, 살금살금 나아가다 더듬더듬 돌아오고 다시 나아가도 돌아오는 독특한 진행과 회귀의 서사다. 최면에 빠뜨리듯 우리를 휘감는 부드러운 감정과 위로들, 작품의 시야 속에 들어온 모든 인물들에게 골고루 빛과 온기를 전달해온 최은영 작가에게 이제는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줄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그 앞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줄 때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최은영 작가를 수상자로 결정했다”(소설가 권여선)는 호평과 함께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또 한번 선정되며 최은영 작가를 향한 평단과 독자의 신뢰를 확인시켜준 작품이자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진 최은영 작가의 소설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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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게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내 곁에 함께 누워주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왔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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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러는 동안 마음을 채우고 흘러가는 감정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들렌을 입에 무는 순간에 어린 시절이 끝없이 흘러나오듯, 최은영의 소설에서 누군가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 세계는 온통 뒤흔들리며 멈춰 선다. (…)
단시간에 빠르게 솟구쳐 상대에게 범람하고 금세 소진되는 열정과 달리, 상대를 손쉽게 이해해버리지 않으려는 배려가 스며 있는 거리감은 가늘게 반짝이는 빛처럼 오래 유지된다. 이 빛나는 실선(silver lining) 앞에 어두운 구름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채로. 누군가가 전하는 작은 온기 뒤에 자리한 단단한 슬픔을 읽어내고, 관계의 어떤 미세한 균열도 사소하게 바라보지 않는 작가의 힘은 이 세계를 쓸쓸하지만 투명하게 빛나는 곳으로 비춰낸다. 도처에서 쉽게 말해지는 희망과 구원에 냉소적으로 변했던 마음도 이 신실한 선함 앞에서는 다시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며 단정해지는 것이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 책 속에서
그들은 오래도록 키스했다. 혀와 입술의 맛, 가끔씩 부딪치는 치아의 느낌, 작은 코에서 나오는 달콤한 숨결에 빠져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그럴 때 서로의 몸은 차라리 꽃잎과 물결에 가까웠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일 뿐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한없이 상승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이라고. _「그 여름」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_「그 여름」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_「지나가는 밤」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_「모래로 지은 집」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_「모래로 지은 집」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_「모래로 지은 집」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해준다는 사람들의 말은 많은 경우 옳았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상을 알아갈수록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_「고백」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_「고백」
한심하게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라도 살기까지 얼마나 힘을 내야 했는지, 마침내 배가 고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밖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_「아치디에서」
그 말이 기억날 때면 엉망이 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이 사람한테는 이런 말투로 말하고, 저 사람한테는 저런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 하나가. 한없이 상냥하다가 누군가에게는 비정할 정도로 무심하고, 진심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말하고 웃다가도 돌아서면 웃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그렇게 하루를 살고 보면 자신의 진짜 말투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게 된 사람이. 길거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보고 웃는 것만 같았다. 자주 추웠다. _「아치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