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의 책소개
엄마, 하고 부를 때
입안에 고이는 시금한 느낌의
시와 산문 모음
나이 사십에 울다 잠들어도
쉬이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아는 마음
더러는 꿈결에 잠깐 마주친 엄마의 얼굴을 이삼 일
기억하는 마음
_임경섭, 「우는 마음」 부분
좋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는 나를
아이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_조혜은, 「개도(開度)─굳은살 엄마」 부분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순한 모국어
마흔 명의 시인이 부르는 우리들의 ‘엄마’
난다에서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라는 ‘엄마’에 관한 특별한 시집 한 권을 펴냅니다. 22년 10월 7~8일 열리는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의 일환으로 펴내는 이 시집은 축제 예술감독을 맡은 시인 오은이 기획하여 엮고 경기도에 사는 마흔 명의 시인에게 저마다의 ‘엄마’를 부르는 신작시 1편과 산문 1편씩을 청탁해 실었습니다. 1979년 조선일보로 등단한 장석주 시인부터 2018년 한국일보로 등단한 이원하 시인까지 세대와 성별을 폭넓게 아우르며 섭외한 마흔 명의 시인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엄마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내려갑니다. 이 시집에 실릴 시를 쓰는 과정은 시인들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엄마’라는 말 앞에서 멈칫해야 하는 골똘한 사정이 저마다에게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게 삶에서 마주하는 ‘엄마’라는 빛은 마흔 개의 시편 속에서 굴절되어 반짝입니다.
엄마는 내게 엄청난 두께의 텍스트이다. 무엇을 메모하고 받아써야 할 것이며, 무엇을 검은 빗금으로 지워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는 문제집 같다. 엄마― 부르면, 떠오르는 몇 개의 풍경이 있다. 그 풍경에 나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이로 짙게 음각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미 아득히 오래전에 넘겨진 페이지에 불과하다.
_김경인 산문, 「엄마, 나의 마트료시카」 부분
“하나의 세계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밑천”(송기영), 그렇게 우리의 시작에 있었던 엄마, 너무도 당연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무명씨 같았던 엄마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사연을 톺아보는 이 시편들은 넓고도 깊은, 높고도 짙은 엄마의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그렇게 엄마의 삶을 그려보고 엄마와의 관계를 곱씹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입을 갖게 됩니다. 시와 함께 덧붙인 엄마에 관한 짧은 산문에선 “서로가 오롯이 남인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권민경)이라는 깨달음을 앞에 두고 때론 탄식을, 안도의 웃음을 짓게도 되지요. “항아리 속에 봄의 생기도 있었고, 푸르게 반짝이던 여름의 감나무 잎도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깊게 비어 있어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까마득하기만 하다”(최갑수)고 쓸쓸히 울리는 글을 읽다보면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나는 어긋지게 살았다”(이향지)는 회한이 읽는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그러면 문득 닿을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오늘의 기분은 어때?”(김승일)
“엄마를 통해 세상에 툭 떨어진”(이현호) 이 시집에 함께한 마흔 명의 시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민경, 김경인, 김경후, 김기형, 김명리, 김상혁, 김승일, 김연아, 문보영, 문성해, 서효인, 성동혁, 손택수, 송기영, 안정옥, 유계영, 유병록, 유형진, 윤석정, 이문재, 이원하, 이재훈, 이향지, 이현호, 이혜미, 임경섭, 임승유, 임지은, 임현정, 장석남, 장석주, 정한아, 조혜은, 채길우, 채호기, 최갑수, 최문자, 최지인, 함성호, 황유원.
제1회 경기 시 축제가 열리는 경기 상상캠퍼스(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에는 시인들의 시를 활용하여 ‘엄마에게 가는 길’이라는 산책로를 조성한다고 합니다. 이 푸른 가을, 시집 한 권 들고 천천히 걸으며 엄마에게 떠나보심이 어떠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