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휘청거리다 악에 기대다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
히치콕의 〈현기증〉과 대프니 듀 모리에의 공포소설 『레베카』를 연상시키는 표제작 「이블 아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텔리 남자의 네번째 아내가 된 이십대 마리아나의 불투명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예고하는 수작이다. 마리아나는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고지대에 자리한 쇼케이스처럼 근사한 집에 손님처럼 얹혀산다. 부모를 잃고 상심한 마리아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준 남자는 결혼 후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 혹은 하등한 존재처럼 대한다. 그러던 중 남자의 전부인이 방문하고, 한쪽 눈이 없는 광적인 전부인에게 충격적인 과거의 사건에 대해 들은 마리아나는 불온한 미래를 예감한다.
「아주 가까이 아무때나 언제나」는 순진한 열여섯 살 소녀 리즈베스의 위험한 첫사랑을 그린다. 또래에 비해 앳되고 예쁘지도 않은 리즈베스는 잘생기고 훤칠하고 영리한 청년이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자 아찔하고 우쭐한 행복에 젖는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드러날수록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 이 사랑은 떨칠 수 없는 악령처럼 리즈베스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잡는다.
「처단」은 정신적인 균형감이 없는 남자 대학생 바트 핸슨의 불안한 영혼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약에 취한 바트는 부모가 클럽 회비를 대주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자, 새로운 게임을 ‘클리어’하듯 말끔한 방법으로 그들을 처단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늦은 밤 부모의 침실에서 도끼를 휘둘렀던 바트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어머니의 진술로 인해 존속살해죄로 법정에 서지만, 이후 어머니의 증언 번복으로 두 사람의 삶은 역겨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기반으로 완전히 역전된다. 1996년 작 『좀비』처럼 철저한 악인의 일기와도 같은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묘사와 초조한 리듬의 전개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압도적이다.
「플랫베드」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스물아홉 살의 세실리아가 가진 성적 트라우마와 폭력의 순환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 성추행의 기억 때문에 성 공포증을 갖게 된 세실리아는 남자친구 N의 끈질긴 추궁에 결국 비밀을 털어놓는다. N은 과거의 죄인을 찾아가 처참하게 응징하지만, 젊고 강한 N의 폭력적 복수가 세실리아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정당한 방법이었을까 하는 비릿한 의문을 남긴다.
네 편의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강한 남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자기확신이 없고 부모의 죽음 때문에 감정적으로 휘청대는 마리아나는 지배적인 남편에 대해 무기력하다. 리즈베스는 어리기 때문에 당연히 경험도 확신도 없다. 바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정의보다 아들을 편들고, 세실리아의 삶은 또다른 지배자의 등장에 과거를 반복하게 될 위험에 처한다.
오츠의 예리한 문장은 어둡고 불편하고 우회적인 그들의 삶을 뭉크의 그림처럼 음울하게 그리면서 불완전한 생각과 돌연한 사고의 흐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처단」에서 약에 취한 바트가 부모를 죽이기 위해 집으로 가면서 올려다본 “사용한 휴지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하늘 아래로.
그러나 이들의 균열은 경종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 후에도 다시 지속된다는 점에서, 혹은 지속될 거라고 예측된다는 점에서 한층 무섭다. 군림하는 연상 남편의 어리고 순종적인 아내가 갑자기 남편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 혹은 신뢰를 갖게 될 리 없고, 열여섯 살 소녀에게 느닷없이 평화와 성숙이 찾아올 리 없고, 인종차별주의자인 대학생은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존재인지 계속 알지 못할 것이며,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의 주체가 되는 것만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그렇게 무기력하고 사악하게 계속된다.
악으로 악을 물리치는 ‘이블 아이’ 같은 존재를 향한 집착
“날 사랑해줄 수 없나요? 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블 아이」에서 마리아나는 유능하고 부유한 남편이 자신을 거둬준 것을 고마워한다. 그녀는 단순한 소유물로 전락한 자신을 깨닫고 억압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에게 붙어 있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더없는 혐오감을 드러내”며 “살기등등한” 눈빛을 빛내는 남편이 제공하는 안락에 발목이 잡힌 마리아나의 삶은 눈 하나를 잃은 그의 전부인처럼 이미 균형을 잃고 추락중이다.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 또한 자신과 남자의 관계가 병적임을 알아차린다. 「아주 가까이 아무때나 언제나」의 리즈베스는 ‘아무때나’ 나타나 ‘아주 가까이에서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는 남자친구에 대해 그가 “강박적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나를 지켜보지 않을 때도 그렇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를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모든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리즈베스는 문득문득 그의 환영을 보고, 손을 들며 다가서려 한다. 「플랫베드」의 세실리아 역시 그녀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라고 몰아세우는 N을 보며 그의 공격적인 소유욕에 안절부절못하지만 그의 악마적인 힘에 기운을 낸다.
「처단」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관계를 장악하는 남자(아들)의 입장에서 쓰였지만, 이제 유일한 피붙이가 된 바트에게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증언을 번복한 것에서 어머니가 어떤 위기를 감지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다른 작품들이 남자의 힘 혹은 자기도 모르게 관계에 예속되는 여자들을 그렸다면, 「처단」의 어머니는 안전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왜곡된 관계 속에 예속했다고 볼 수 있다.
어디서 살고, 누구와 있고, 버려지지 않고 외롭지 않다는 것
“이 사람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난 존재하지 않아.”
폭력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의 양상은 이제 너무도 확연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관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설득하고 속이면서까지 그 관계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들의 이러한 수동적인 면모는 폭력적인 그들의 행위에 힘과 당위를 실어주며 현재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어디서 살고, 누구와 있고, 버려지지 않고 외롭지 않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은 고독한 세상에 혼자 남겨지느니 희생자라도 되는 쪽을 스스로 선택했다.
사랑이 왜 왜곡되는가라는 질문이 존재한다면, 오츠의 답은 ‘약한 자아관념’이다. 그들은 안정적인 정체성 부족, 사랑이 없으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믿음 때문에 상대에게 조종당한다. 마리아나처럼 ‘이 사람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거나, 리즈베스처럼 가해자가 ‘나를 선택한’ 것이 자랑스러운 나머지 남자친구의 악의에 직면해서도 ‘그는 나를 사랑해. 그는 나를 해치지 않을 거야’라고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좀비』부터 『악몽』까지 신랄하게 인간을 파헤치며 능숙한 솜씨로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악마성을 포착했던 오츠는 『이블 아이』에서 인간의 악마성과 나약함을 그렸다. 내게 의지하고 매달리는 사람에게 더 악랄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시험하고 조롱하고 싶은 악마성. 누구라도 그냥 믿고 따르며 그대로 끌려가고 싶은 나약함. 인간에 내재하는 두 본성은 서로 오묘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작용하며 깊은 낭떠러지로 인간을 밀어댄다.
☆ 추천사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이해하는 데 있어 오츠는 도스토옙스키의 라이벌이다._헌팅턴 뉴스
오츠의 최고작. 여유 있고, 기민하고, 잘 관찰되고, 소리 없이 치명적이다._타임스
오츠에게 진짜 공포는 매력이라는 주술에 걸린 남녀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_워싱턴 포스트
뒤틀린 삶에 대한 기이하게 생생한 묘사. 처음부터 끝까지 오싹하고 섬뜩한 전율. 대단한 작품._인디펜던트
오츠가 그린 사랑은 단순히 엇나가는 게 아니라 폭발하고 독을 옮기고 고문하고 죽인다._미니애폴리스 스타
매력적이고 충격적이다. 사로잡힌 우리는 여기서 떠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소름끼치게 변해가는 순간에도._버슬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