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아나키스트, 중심의 문학을 향해 거침없는 말의 창날을 내리꽂다
2007년 한국어판이 출간된 바 있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다시 찾는다.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인 살바도르 플라센시아Salvador Plascencia는 스물아홉 살에 펴낸 첫 장편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로 단숨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이탈로 칼비노, 오르한 파묵, 오에 겐자부로 등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이 소속된 와일리 에이전시 작가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1996년 국립문화재단으로부터 소설창작지원기금을, 2000년 피터 나고에 소설상을 받았으며, 2001년에는 폴 앤드 데이지 소로스 장학재단이 주는 장학금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는 최초 수상자가 되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난 저자는 가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기에 어린 시절 토루투가La Tortuga의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자랐는데, 이때의 기억이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구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주인공 페데리코 데 라페와 그의 딸 꼬마 메르세드가 새롭게 정착하는 곳이자 소설에서 주요 배경이 되는 엘몬테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인접한 실존 지역으로 이주민들이 계속해서 유입되면서 인구의 70% 이상이 라틴계인 곳이다.
플라센시아는 엘몬테를 주무대로 한 소설을 통해 자신이 항상 품고 있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려 했다. 엘몬테에서 EMF(엘몬테 플로레스)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민자들이나 멕시코 출신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여배우 마르가리타(리타 헤이워스)와 쇠락하는 마을 ‘엘데라마데로’로부터 떠나온 줄리에타 등 외부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다양한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이 소설 곳곳에 그려진다. 무엇보다 소설가의 애인 리즈는 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에서 한낱 20달러에 자신의 이야기를 팔아먹는 플라센시아를 비판하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날카로운 말들은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자아비판이자,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떠나온 조국을 향한 애틋한 마음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남의 언어인 ‘영어’를 가지고 ‘조국’의 이야기를 팔아 돈을 버는 치카노문학이 겪을 수밖에 없는 모순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작가의 자아비판은 토성의 시선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키는 페데리코와 EMF 단원들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처음에는 납 껍질을 통해 스스로를 토성의 시선으로부터 ‘방어’하다가, 나중에는 반대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면서 넘쳐흐름으로써 무의미해지는 전략을 택한다. 이 모든 노력이 결국 상업주의에 기대 이야기를 팔아먹는 토성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플라센시아는 한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설을 풀어가고 싶다며, 글 안에 수많은 입구와 출구를 장치해 둠으로써 연대기상의 일련의 일들이 뒤섞이면 이를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아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실험적 형식? 필연적 선택!
장마다 바뀌는 다단 구성과 제목 밑에 나열된 알 수 없는 기호들, 책에 구멍이 뚫려 있는가 하면 이진법 기호들로만 가득한 기계 거북의 대사와 검은색의 직사각형으로 뒤덮인 아기 노스트라다무스의 침묵의 언어까지,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처음 접한 독자들이라면 책의 형식에 사뭇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이러한 ‘시각적 글쓰기’가 플라센시아만의 유별난 실험적 시도는 아니다. 시와 단편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각기 다른 시점으로 내용을 전개한 셰인 존스Shane Jones의 경우나, 문장에서 단어들을 잘라내어 해독하듯 읽게 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 그리고 책을 제본하지 않은 채 낱장으로 읽게 만든 마크 샤포테Marc Saporta처럼, 요즘 세대의 작가들은 이미지라는 비주얼적인 요소와 텍스트를 결합시킨 형식으로 작품활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플라센시아 또한 ‘텍스트’라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이미지화된 장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더 효과적으로 담아내려 했다. 액자소설 형태인 『종이로 만든 사람들』 속에는 세 층위의 세계가 존재한다. 소설 속 소설의 세계인 엘몬테와 이를 서술하는 작가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의 세계, 그리고 여기에 이 모두를 조망하는 독자들의 세계가 합쳐진다. 이때 저자는 형식적 구분을 통해 각각의 세계를 그려내 보이는데, 우선 소설 속 소설의 세계에 등장하는 엘몬테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세로로 펼쳐진 다단 형식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플라센시아는 그 소설 속에서 ‘토성’의 시선으로 그들을 관찰한다.
가로 형식으로 전개되는 나머지 부분은 소설 밖의 저자의 서사에 해당한다. 그곳엔 그를 떠나간 옛 애인 리즈와 새로운 연인 카메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작가가 어떠한 연유에서 소설 속의 소설인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쓰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이 여느 액자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액자 속 세계와 밖의 세계가 어느 시점부터 뒤섞인다는 데 있다. 엘몬테 주민 중 한 명인 스마일리는 자기가 속한 세계의 천장을 뜯어버리고 플라센시아의 세계에 침입한다. 이로 인해 3부부터는 엘몬테와 플라센시아의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가 뒤섞여버린 채 내용이 전개되면서 또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전쟁
『종이로 만든 사람들』 속의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실연의 상처를 갖고 있다. 소설가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는 소설에 골몰하다가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그런 그를 사랑한 카메룬은 옛 애인을 잊지 못하는 살바도르에게 상처를 입는다. 소설 속의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인 페데리코 데 라 페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자신을 떠난 아내 메르세드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 위해 날마다 몸을 불로 지진다. EMF 단원인 프로기는 실수로 애인 샌드라의 아버지를 죽이는 바람에 샌드라와 헤어지게 되지만 그녀가 남긴 목의 문신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엘몬테를 지켜보고 있던 토성의 시선을 페데리코가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로 그가 토성과 같은 실연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토성과 엘몬테의 EMF 단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결국은 사랑과 실연으로 점철된 결투이다. 늘 자신을 지켜보는 토성 때문에 아내가 떠났다고 믿는 페데리코는 프로기를 필두로 EMF를 부추겨 토성에 맞서 전쟁을 일으킨다. 토성에 맞서는 전쟁을 결의한 페데리코에게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프로기 또한 실연의 아픔을 갖고 있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결국 같은 실연의 상처를 지닌 세 남자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페데리코가 아내 메르세드가 돌아올 길을 가꾸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데 반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낸 토성은 그녀를 모욕하기 위해 소설 속에서 그녀의 배반을 폭로하고 모든 배신자들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리며, 심지어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분풀이한다. 결국에는 과거 애인의 요구에 못 이겨 그녀의 이름을 빼고 소설을 다시 시작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허구를 통해 허구를 위로하는 러브스토리. 이것이 이 기묘한 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요약하는 또다른 방식이다.
“이 슬픔에는 어떤 속편도 없을 것이다”라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마지막 문장은 플라센시아가 소설 속 인물들을 향해 고백하는 속죄의 전언이다. 실연의 아픔 때문에 등장인물들을 멋대로 괴롭힌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의도된 전개 방식에서 벗어나 그들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물론 그 약속의 대상엔 사랑하는 옛 연인 리즈도 포함된다. 동시에 이 문장은 치카노문학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가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마치 더 이상은 이러한 민족성을 소재로 한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듯, 플라센시아는 마지막 장에 커다란 점을 찍으며 소설을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