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유일한 단서는 나비 문신
『소년들의 밤』의 주인공 최성민은 『게임의 왕』에서 주인공 태식을 괴롭히던 학교 일진이다. 다들 겁내며 피하기만 하지 진심을 나눌 친구가 없어 외로워 보이는 성민에겐 의외의 절친들이 있다. 평생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외고 우등생 정구와 별 볼일 없이 게임만 잘하는 동철. 세 사람은 어느 날 부모님의 여행으로 집이 빈 정구네에서 밤을 새워 놀기로 한다. 그러다가 정구가 자기 생일선물로 여자랑 한번 자보게 해달라고 조른다. 하루에 자위를 최소 3번은 하며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정구의 간절한 부탁으로 그들은 길에서 주운 출장안마 전단지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런데 예쁘게 생긴 누나는 복면을 한 강도와 함께였고, 안방의 금고 속 귀금속은 물론 벽에 붙은 값비싼 그림까지 모두 떼어가지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건 그들 때문에 정구가 평생 소원 한번 풀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단 것이다. 범인들의 행방은 묘연하고 성민과 동철이 기억하는 유일한 단서는 여자의 뒷모습과 성민을 후려친 강도의 손등에 새겨져 있던 나비 문신뿐. 하지만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 깨어난 성민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강도나 외부의 출입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경찰서 심문실에서 형사가 감옥에 간 아버지를 언급하며 성민을 몰아세우는 순간, 그는 결심한다. 정구를 죽인 범인, 나비 문신을 내 손으로 잡겠다고.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화해기
잘생기고 멋있고 싸움도 잘하는 성민. 친구들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소년이지만 사실 그에겐 누구보다도 많은 상처가 있다. 사업이 망한 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는 내연녀를 살해하고 감옥에 갔으며, 엄마는 지난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가 재혼한 남자, 엄마의 남편과 어쩔 수 없이 ‘동거’ 중이다. 그가 누군가를 처음으로 때린 것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다 준 필통을 자랑하던 녀석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의 놀림이 되기 전에 먼저 친구들을 괴롭히는 쪽을 선택한 성민. 하지만 그는 안다. 이 모든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부질없는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어른들의 세계에선 폭력을 휘두르는 양아치 건달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멋진 남자라는 것을.
성민은 경찰도 헤매고 있는 미제 살인사건을 해결하겠다며 안미시술소를 찾아가 얻어맞고, 장물아비를 만나고, 전단지를 촬영한 곳으로 추정되는 러브호텔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성민이 상처 입고 피 흘리고 쓰러지는 순간마다 나타나 그를 감싸 안는 존재가 있다. 바로 그의 동거인, 소심하고 찌질하고 멋도 없고 답답한 인간, 새아빠다. 성민은 만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자신을 보살피려는 새아빠의 ‘위선’이 불편하고 짜증난다. 하지만 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 새아빠가 언제 어느 순간에나 ‘내 편’이 되어주는 모습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어느새 둘은 남자 대 남자로서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관계가 되었고, 이러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성민은 한 뼘 더 자란다.
소년들은 오늘도 달린다
『소년들의 밤』은 섹스 산업과 폭력의 이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성민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성장소설’로 완성되었다. 두 명의 아버지를 가져야만 하는 소년의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안마시술소 아가씨 안나와의 첫 사랑. 편견과 매너리즘에 빠진 경찰과 무자비한 강도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 그들에게 세상은 두렵지만 싸워볼 가치가 있고, 언젠가 당당히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할 유일한 미래다. 작가는 말한다. “니체는 말했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다만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나는 이 소년들의 분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 책 속의 문장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될 때, 뜨겁고 아프고 외로울 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할 때, 이기고 지는 승패보다는 거기서 무얼 배웠는지가 중요할 때, 소년이 어른이 될 때, 이 소설은 바로 그때를 그린 성장기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가치가 있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다만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自序」)
한번 문제아로 소문이 나면 그 낙인이 계속 따라다닌다. 나 역시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인상을 쓰거나 주먹을 휘두르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서조차 형사에게 의심받는 건 참기 힘들었다. (「심문」63쪽)
“엄마 죽었잖아요. 이제 우리가 서로 볼일이 뭐가 있어요? 엄마한테 지킬 의리가 남았어요? 아, 씨발 그딴 거. 지금은 학교 다니고 그래야 되니까 그냥 있는데, 졸업하면 바로 나갈 거니까 아저씨도 저한테 신경 끄세요. 왜 자꾸 아버지 흉내를 내려고 그래요, 부담스럽게. 웬만하면 서로 편하게 갑시다. 눈에 안 띄도록 조심할 테니까.” (「안 죽어」196쪽)
∵ 타짜 이야기꾼 한상운의 4부작 연작소설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미스터리 소년추격전>은 학교 폭력, 온라인게임, 섹스, 주식, 도박 등등 매일같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슈들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인 갱스터액션소설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슈들이 단지 뉴스나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런 소재와 인물들은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이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해 글을 쓸수록 점점 더 소설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르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온 이야기꾼 한상운은 ‘진짜 있을 법한 인물’의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장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는 드문 작가 중 하나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인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완성되는 연작소설이다. 『게임의 왕』이 일진 성민에게 맞고 다니는 찌질한 태식의 눈으로 바라본 폭력의 세계라면 『소년들의 밤』에선 폭력이 일상인 세계에 속한 성민의 속사정이 그려진다. 두 작품은 각각 독립된 서사를 갖고 있지만, 두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누구에게나 이해받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3권 『주식동아리』는 1, 2권의 조연 캐릭터였던 동철이 주연이 되고, 번외편인 4권 『인플루엔자』에서는 전작의 인물들이 모두 카메오로 등장할 예정이다. <미스터리 소년추격전>은 자본과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는 십대 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주인공들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 물론 그들은 ‘영웅’이 아니며 여전히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싸우며 성장해나가는 희망의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