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 루키페르가 쓰러졌다
흑룡 루키페르가 쓰러졌다. 절대 죽지 않도록 설정된 캐릭터, 온라인게임 사상 최강의 무적 캐릭터가 하룻밤 사이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온라인게임 회사는 발칵 뒤집히고, 포털 사이트에선 놀라운 천재 게이머의 등장에 대한 온갖 루머가 연일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악의적인 해커의 소행이라면 범인을 잡아야 하고, 게임의 치명적 오류라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또 용이 죽을 때 나온 희귀 아이템들이 ‘아이템 현금 거래 사이트’에 풀리는 순간 엄청난 가격 인플레가 발생할 테고, 이 때문에 한중일의 오백만 게이머가 즐기는 베스트셀러 게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대체 누구의 짓인가?
하지만 용을 죽인 것은 고수 게이머도 해킹 전문가도 아닌 찌질한 고등학생 셋이다. 멀쩡한 이름 대신 폭풍설사로 불리며 가끔 일진들 빵셔틀이나 하고 다니는 존재감 없는 태식. 그리고 중학교 때 태식과 찐따 인생을 함께한 동철과 정희. 이 어리바리한 소년들이 용을 죽이게 된 내막은 무엇일까.
찌질이 인생을 뒤집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태식은 아이돌 걸그룹의 멤버이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지은을 짝사랑한다. 그리고 그녀와 친해질 계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다가 지은이 홍보모델로 활동중인 온라인게임 ‘판타지온라인’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몇 달간 밤을 새워가며 게임에 몰두한 끝에 태식은 쩌렙에서 벗어나 멋진 온라인 속 전사 ‘차도남’으로 거듭난다. 그렇지만 지은은 전속 계약 조항 때문에 인터뷰에서 게임을 언급했을 뿐, 실제로는 게임을 하지 않으며 게임을 빌미로 접근하는 애들에게 짜증만 날 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식은 절망해서 게임 계정을 삭제하려 한다.
그런데 죽으려고 작정하고 지옥의 수문장인 루키페르에게 찾아가 시비를 걸던 차도남은 흑룡의 불을 맞고도 죽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게임 속에서의 능력이고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인정해주지 않겠지만, 항상 주눅 들어 지내던 태식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능력이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이번에야말로 뭔가 보여줄 때라고. 흑룡 루키페르를 처단해 오백만 게이머 중 넘버원이 되겠다고.
태식은 친구인 동철(게임 아이디: 연쇄삽입범)과 정희(게임 아이디: 성기사이즈짱)를 꼬드겨 함께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사냥에 필요한 각종 아이템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PC방 알바까지 한다. 드디어 디데이! 시험기간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그들은 루키페르 잡기에 성공하는데, 그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평생 존재감 없이 살 것 같던 그들이 포털 검색어 순위 2위에 오를 줄이야.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어른들의 타깃이 된 소년들
온라인게임 회사 대표 최중경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신작 게임 개발을 위해 투자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등학생 셋이 난데없이 용을 잡았다고 서버가 발칵 뒤집혔다. 투자자들의 신망을 잃을까 두려운 최중경은 루키페르를 잡은 소년들을 흥행몰이에 이용하려고 접근한다. 한편 판타지온라인에서 최고수로 이름을 날리는 양아치 조정준(게임 아이디: 인투더레인)은 소년들이 얻은 게임 아이템을 노린다. 최중경은 태식을 영웅으로 만들어주고 그를 괴롭히는 성민도 처리해주겠다며 달콤한 제안을 하고, 인투더레인은 협박과 회유를 섞어가며 레어템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폭력을 휘두르고 동료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열일곱 살 소년들은 한입거리도 안 되는 애송이들이다. 진짜 무서운 어른들에게 잘못 걸려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한 태식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소년이 인간다운 어른이 되는 과정
우리 사회는 학교 폭력이나 청소년 폭력의 주범으로 ‘게임’을 지목한다. 지난해 11월,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에 대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인터넷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강제 셧다운 제도가 시작됐고 주요 언론에서는 연일 1면에 ‘게임, 또다른 마약’이니 ‘요람부터 게임 중독’이니 하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인터넷 게임이 학원 폭력의 원인이 되었다는 기사를 쓰고 있다.
이러한 어른들의 우려와 조치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만일 이런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면 현실성이 없다고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현실이 소설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게임 자체가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주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은 틀림없다. 원인, 과정, 심지어 시범 케이스로 한둘을 ‘조지는’ 해결 방법까지도 모두 그렇다.”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게임’ 자체나 ‘폭력’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한편에서는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장려하고 다른 한편으론 도덕의 이름으로 처단하려는 어른들의 이중적 잣대다. 태식은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가장 순정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려 애쓴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아직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싶은 소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왕』은 소년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평범한 소년들이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인간다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훈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그는 판타지온라인의 최강자, 무적의 흑룡 루키페르를 잡을 생각이었다. 부모님도 성민도 지은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판타지온라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태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알아줄 것이다. 판타지온라인이 서비스를 계속하는 한, 그는 전설로 남게 될 것이다. (「태식이 용을 잡기로 결심한 이유」 101쪽)
게임은 컴퓨터 속에만 있지 않다. 산다는 것 자체가 타인과의 게임이다. 판타지온라인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게임. 어떤 게임이든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게 낫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 187쪽)
용을 잡을 때만 해도 뭐든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시험은 망쳤고 일진에게 찍혔으며 인생은 위기에 빠졌다. 그가 얻은 건 용을 잡았다는 성취감밖에 없었다. 차도남이 사라지면 그 기억조차 사라지는 셈이다. 제발 이것만은, 하느님, 이것까지 빼앗아가면 너무하잖아요. (「몰락의 전조」 201쪽)
∵ 타짜 이야기꾼 한상운의 4부작 연작소설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미스터리 소년추격전>은 학교 폭력, 온라인게임, 섹스, 주식, 도박 등등 매일같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슈들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인 갱스터액션소설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슈들이 단지 뉴스나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런 소재와 인물들은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이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해 글을 쓸수록 점점 더 소설처럼 보인다.” 그리고 장르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온 이야기꾼 한상운은 ‘진짜 있을 법한 인물’의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장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는 드문 작가 중 하나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인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완성되는 연작소설이다. 『게임의 왕』이 일진 성민에게 맞고 다니는 찌질한 태식의 눈으로 바라본 폭력의 세계라면 『소년들의 밤』에선 폭력이 일상인 세계에 속한 성민의 속사정이 그려진다. 두 작품은 각각 독립된 서사를 갖고 있지만, 두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누구에게나 이해받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3권 『주식동아리』는 1, 2권의 조연 캐릭터였던 동철이 주연이 되고, 번외편인 4권 『인플루엔자』에서는 전작의 인물들이 모두 카메오로 등장할 예정이다. <미스터리 소년추격전>은 자본과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비정한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는 십대 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주인공들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 물론 그들은 ‘영웅’이 아니며 여전히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싸우며 성장해나가는 희망의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