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하게 살아온 착한 엄마 이행내와
참하게 까진 화가 조장은이 함께 쓰고 그린 그림일기
1부: 내가 아이였을 때 ― 착한 딸로 자랐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6, 70년대에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아이 이행내의 성장 이야기. 시대를 앞선 사고와 남다른 교육열을 가졌던 외할머니, 세상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멋쟁이에 미인이었던 엄마, 밖에선 엄하지만 딸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셨던 젠틀맨 아버지, 위로 네 명의 오빠들 그리고 짓궂고 고집 센 여동생 동희. 화목한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추억의 페이지를 들춰보게 만든다.
젖배 곯아 큰엄마 찌찌 만지며 잠드는 게 행복이었던 아이. 재봉질로 만든 사촌언니의 꽃무늬 빤쓰가 부러워 쌍방울 팬티랑 바꿔 입고 기뻐한 일. 손재주가 좋아 뽑기 난전에서 ‘뽑기의 여왕’이 되었지만 결국 뽑기 아줌마가 집에 와 “따님 좀 못 오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뽑기 금지령을 받고 아쉬워한 기억. 넝마주이 오빠에게 받아먹던 찐빵의 맛. 엄마의 돈 심부름을 가다가 돈 뺏으려는 동네 오빠에게 손가락을 물리면서도 주먹 꽉 쥐고 돈을 놓치지 않은 독한 소녀. 동생 동희에게 만날 당하지만 밖에 나가선 세상 둘도 없는 자매애를 과시한 사연 들이 웃음과 미소를 자아내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2부: 소녀시대 ― 내 마음은 아직도 소녀시대
사춘기에 접어들어 외모에 신경 쓰고 2차 성징을 고민하던 소녀 이행내가 멋쟁이 미대생이 되어 짝사랑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지만,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엄마의 등쌀에 맞선을 보고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단정히 땋은 숱 많은 갈래머리의 한쪽 꽁지만 잘라버린 노처녀 학생주임 선생님께 항의한 여학생들 이야기. 위문편지를 너무 잘 써서 군인 아저씨가 학교로 찾아온 사연. 일곱 살 나이 많은 노총각과 선보고 망설이다가 꽃신 꿈을 꾸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일. 대학생 때 국토순례에서 만난 유네스코학생회장을 짝사랑했지만 고백 한번 못 해본 추억이나, 10·26 사태로 휴교령이 떨어지자 엄마가 청바지 숨겨놓고 외출 금지령을 내려 청치마 입고 데모에 나갔던 일, 약혼식을 하고 여행 갔다가 휴전선 근처 바닷가에서 야밤에 추격전이 벌어졌던 사연 등,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부: 내 이름은 이행내 ― 초보 엄마의 좌충우돌 주부생활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을 보내고 이화여대 미대를 다니던 세련된 멋쟁이 아가씨 이행내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아줌마’가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결혼과 동시에 해외지사로 발령받은 남편 때문에 홀시어머니 옆에서 아이 둘을 연달아 낳고 기르면서 자신의 이름을 잃고 ‘장은이 엄마’로 불리게 된 새댁은 먹고 싶은 사과 대신 오이를 사먹는다는 시어머니 말씀에 혼자 입술 삐죽거리고 친정엄마가 사준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을 장악한 시어머니를 보며 빨간색 알레르기가 생긴다.
결혼 후 첫 부부동반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데 연락도 없이 메주를 들고 들이닥쳐서 간장 된장 담그는 시범을 보이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 바람에 병수발을 들게 된 사연. 손녀딸만 셋인 집에서 또 딸을 낳은 둘째며느리에게 눈치를 주자 “그래도 나에겐 첫딸이에요”라고 편을 들어준 남편. 아이 낳고 너무 예뻐 운동화에 면티 입고 자랑스럽게 가슴에 안고 다니는데, 그 모습을 본 친구 언니가 “결혼하면 다 이렇게 되니”라고 해서 우울해진 이야기 등등, 결혼한 여자라면 백번 공감하며 동지애적 연민을 느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멀어진 꿈과 친구들, 익숙해지지 않는 집안일, 결혼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어하는 초보주부 이행내에게 어느 날 친구 어머니의 한마디는 큰 깨달음을 준다. “어떤 경우라도 네 이름 석 자는 지니고 살아라.” 그렇게 자신을 지키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의 시간을 지나고 나자, 어느 순간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의 존재의 귀함을 인정하게 되면서 “우리는 모두 여자”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4부: 후르츠마마의 육아일기 ― 엄마는 힘들어도 행복하다
기억력 좋고 영리하고 엄마의 재주를 물려받아 미술에 재능이 있는 딸, 심성이 곱고 남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착한 아들, 1남 1녀의 엄마로 살면서 느끼는 기쁨과 고달픔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툭하면 아들을 잃어버리고 울며불며 애 찾아 동네방네 헤매며 미아방송을 하고, 아직 어린애인 딸을 비서인 양 착각하고 심부름시키다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은 귀여운 초보엄마 시절의 추억담이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딸에게서 기대하며 살벌하게 미대 입시준비를 시킨 이야기는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솔직한 엄마의 고백일 것이다. 또 미래의 사윗감을 혼자 그려보며 걱정과 기대로 설레는 엄마의 ‘속셈’은 부모로서의 세속적인 욕심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 뒤에는 딸이 시집가서 잘살기를,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엄마의 ‘본심’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노력하는 엄마 이행내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외국어도 공부한다. “이름 석 자를 지니고 살고 싶어서.”
5부: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아무리 나이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탄탄대로였던 인생에 차질이 생겼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부부가 합심하여 돈가스 가게를 차려 살림을 꾸리고 가정을 지켜낸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한편, 여든일곱의 나이에도 멋과 유행을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딸에게 응석부리고 칭얼거리는 ‘엄마아가’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연인으로 만나 삼십여 년 한결같이 곁을 지켜준 남편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 목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다시 생각하고 여유롭게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삶을 꿈꾸는 모습은 인생의 가을에서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 그래서 새로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가 아니라 삼십 년 같이 산 노땅 부부에게 축가를 불러달라는 엄마의 당당한 요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책에 실린 삽화는 딸 조장은이 그렸다. 그는 <색시한 그림일기> <골 때리는 스물다섯> <센티멘탈도 하루이틀> 등 3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이십대 특유의 솔직하고 발랄하며 거침없는 감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림을 발표한 청년 화가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의 그림은 강렬하고 재미있다. 화려한 원색의 컬러도 눈에 띄지만, 화면을 가득 메운 인물의 표정이며 하는 짓도 ‘골 때리게’ 웃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이 누구나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건 제목 때문이다. 그림 속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아내는 한 문장의 페이소스가 남다르다.
『엄마라서 예쁘지』는 딸 조장은이 엄마가 평소에 쓰던 일기장을 정리하고 거기에 그림을 붙여 완성된 책이다. 귀한 딸로 태어나 한때 여자였으나 금세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로 살아야 했던 사람의 일생이 그의 딸을 통해 오롯이 복원되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엄마와 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