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얼굴로 악마의 글을 쓰는 작가 클레르 카스티용
출간 즉시 5만부 이상이 팔리며 문단에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괴물 클레르 카스티용이 드디어 한국에 소개된다. 흉악함, 잔인함, 절망을 전면으로 내세워 독이 가득한 매력을 뿜어내는『로즈 베이비(2006)』는 12개국의 언어로 소개된 클레르 카스티용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첫 소설집이다. 스물다섯에 데뷔작『다락방(2000)』으로 주목받은 이래 매해 한 편씩 새로운 소설을 발표한 클레르 카스티용은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전방위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프랑스의 ‘트렌드 세터’다. ‘플라워 바이 겐조(Genzo)’ 향수의 리미티드 에디션 홍보 문구를 쓰기도 하고, <자정을 기다리며>라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한때 8시뉴스 앵커와의 스캔들 때문에 자신에 대한 기사가 문학면보다는 가십란에 집중되자 아예 소설을 판매중지시켜버리기도 한 당돌한 ‘이슈메이커’다. 그럼에도 그녀는 직구를 던지는 듯한 대담하고 정직한 문학성덕분에 스치듯 유행하는 젊은 작가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2004년에는『그녀에 대해 말하다』로 티드 모니에 대상을 수상했고, 주요 언론들은 그녀의 소설에 주목하며 긴 인터뷰 스케줄을 참아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처녀작 『다락방』에서부터『사랑을 막을 수 없다(2007)』까지 클레르 카스티용의 관심은 ‘사랑’이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권태, 광기 그리고 불안이 주관심사다. 『로즈 베이비』에서 우리는 여자와 여자,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권태, 광기, 불안과 마주친다. 카스티용은 고혹적인 외모만큼이나 온화한 톤으로 열아홉 편의 잔혹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머니와 딸을 화자로 내세운 열아홉 편의 단편은 아주 고약한 심보로 독자들의 기분을 휘젓고 망쳐놓는다. 그리고 ‘절망’하게 만든다.
과연 어디까지 가나 봅시다!
‘해외토픽란’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이 벌이는 인생 ‘막장’ 게임
단편 <로즈 베이비>에서 주인공이 임신해 있는 동안 친구는 궁금해한다. 아기가 장미처럼 발그레할까 아니면 달처럼 파르스름할까 하고. 친구야 그러든 말든 ‘나’는 오직 남편 생각뿐이다. 결국 ‘나’는 “안녕 내 아가” 하고 아기에게 작별을 선언하며 남편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축 늘어진 배를 지방흡입으로 수술하여 당겨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모성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엄마는 그녀뿐만이 아니다. <‘하나만’이라고 했잖아요>의 나 역시 남편과 단 둘의 결혼 생활을 꿈꿨다. 그런데 맙소사! 쌍둥이라니. 나는 결국 하나를 외곽순환도로 한복판에 내던지고 만다. 물론 약간의 후회도 있다. 그중 ‘말 잘 듣는 녀석’을 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당연한 관계를 부정하는 딸도 있다. <난 엄마가 창피해>의 나는 너무나 철없이 나대는 엄마가 창피하기만 하다. 나를 세 살 배기 꼬마 취급을 하는 것도 모자라 수학여행까지 따라나서는 엄마의 꼴이라니. 친구들이 우리집에 오지 않으니, 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전복적 관계도 있다. <아빠는 나쁜 사람 아냐, 엄마>의 나는 아빠의 바람으로 엄마가 상처 입을까 그 증거를 지운다. 아빠가 여자한테 ‘한번 만나지?’ 라고 전화를 할 때면 오디오 볼륨을 높인다. 아빠가 저기 멀리서 복도 청소하는 아줌마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을 먼저 봤을 땐 얼른 엄마 곁으로 가 엄마의 발걸음을 돌린다. <단짝친구>의 ‘나’는 그야말로 딸의 ‘베프’이다. 옷이며 말투며 딸아이를 따라하는 내게 남편은 번번이 면박을 주지만, 나는 내가 ‘새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급기야 딸과 남자친구의 베드씬을 몰래 촬영하고야 만다.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샴페인을 마셨다>의 나는 엄마에게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남편의 회사를 찾은 어느 날 나는, 엄마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남편을 목격한다.
이제 모녀 간의 사랑 이면에 숨겨진 모든 복잡하고 상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터부를 벗고 주저 없이 드러난다. 독자는 ‘추함’에 직면하여 괴로워하고, 그 비틀린 모습을 감당키 어려워 비명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젊은 소설가 클레르 카스티용은 그렇게 클리셰와는 멀고먼, 마치 칼날처럼 예리하기 그지없는 필체로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카스티용이 들려주는 부조리 가득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무례하고, 잔혹하고, 불공정하고, 악하지만, 딱 그만큼 정직하고 사랑스럽다!
『로즈 베이비』의 원제 ‘곤충(Insecte)’은 알파벳 조합을 바꾸었을 때 ‘근친상간’을 의미하는 ‘inceste’라는 아나그램이 된다. 그리고 이런 언어유희는 그녀의 차기작인 『비열(Infect)』로 이어진다. 『사랑을 막을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곧 출간될 예정인 이 작품을 두고 그녀는 ‘사랑을 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비열해지는 법이죠’ 라고 귀띔한다. 우아하고 날렵한 찌르기를 구사하는 검사 같은 작가 클레르 카스티용의 거침없는 행로, 그 짜릿하고 섬뜩한 독서 체험이 기다려지는 바이다.
주요 단편 소개
‣ ‘하나만’이라고 했잖아요
나는 단지 남편과 나만의 장밋빛 결혼 생활을 꿈꿨으나 그는 아이를 원했다.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남편이 어디서 아이를 만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딱 하나만 갖기로 했다. 그런데 맙소사! 딸 둘이라니! 울고불고 떼쓰고. 결국 사람 좋은 남편도 쌍둥이 녀석들을 오줌싸개라고 부르게 된다. 어느 날 나는 자동차에 녀석들을 싣고 가다가 조수석 문을 열고 악을 써대던 두 놈 중 한 놈을 외곽도로에 버린다. 별로 잘한 짓이 아니지 싶다. 둘 중 말 잘 듣는 놈을 던진 것이. 그러게 내가 ‘하나만’이라고 했잖아요.
‣ 곤충
이제 막 브래지어를 하게 된 딸을 쳐다보는 남편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나. 매일 저녁, 내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딸과 남편은 차고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한다. 문 밖에서는, “자……자……자……” 라는 말을 반복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무래도 남편이 딸을 추행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생일날, 내가 예고 없이 차고 문을 열자 내 눈앞에는 두 사람이 그린 커다란 그림이 나타난다. 남편과 딸이 그 그림을 옮기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은 말하고 있다. “자……자……자……”라고.
‣ 단짝친구
나는 딸의 단짝친구다. 우리는 함께 쇼핑을 다니고, 딸의 남자친구, 옷 잘 입는 법, 남자 꼬시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집에서도 딸이 입는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는다. 그런 나를 남편은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나는 마음이 통하는 단짝친구 딸이 있기에 상관없다. 하루는 딸이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온다. 나는 딸의 방에 몰래 들어가 둘이 침대에 있는 장면을 촬영한다. 그런 내게 딸은 미쳤냐며 소리 지른다. 평소와 다른 딸의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괜찮다. 친구들끼리는 다투기도 하는 법이니까.
‣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샴페인을 마셨다
툭하면 겁에 질려서 심장이 두근대는 나. 특히 남편이 ‘사실은 말이야’ 하고 말 할 때마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남편의 변명을 듣기도 싫고, 진실을 듣는 것은 더더욱 두렵다. 나는 심장이 이상해질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는 그 사람 좀 가만 내버려두라고 충고한다. 어느 날 나는 남편의 사무실을 찾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엄마다. 그것도 남편의 책상위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심장이 이제 고동치지 않는다. 아예 멈춰버린 모양이다.
‣ 여자가 되어라, 내 딸아
이제 딸은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먹으며 노는 대신 본격적으로 파티를 즐길 나이가 되었다. 나는 딸에게 파티용 립스틱을 권하지만 딸아이는 ‘츄리닝’을 입고 나선다. 나는 아이가 머리칼을 짧게 자르는 것도, 가슴이 너무 작은 것도 다 맘에 들지 않는다. 나는 딸아이의 성적이 너무 좋은 데도 한숨이 나온다. 그러던 어느 날, 열일곱 생일에 유방확대수술을 해달라는 딸의 말에 나는 너무나 기쁘다. 그리고 곧 딸은 균형을 위해 엉덩이 수술도 감행한다. 딸의 치마가 짧아질수록 나는 기쁘기만 하다. 대학에 떨어진 딸에게도 여자는 모름지기 남자를 잘 만나면 된다고 격려한다.
‣ 거짓말쟁이
왜 엄마는 금발이고 난 갈색머리일까? 나는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제 잘 견뎌낼 자신이 있는데 왜 엄마는 내가 입양되었다고 아직 털어놓지 않는 걸까? 접시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버릇이 어김없이 제 아빠를 닮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배에 접시를 엎어버리고 싶다. 따지고 보면 가족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짜증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미용실에 같이 가자고 한다. 염색한 금발머리가 또 너무 많이 자라 갈색머리 뿌리가 너무 많이 올라왔다고.
‣ 로즈 베이비
나는 출산 후 축 늘어진 배를 본다. 사진사도 오늘 태어난 아기 중에 제일 예쁜 아기라는 둥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내 머릿속에 온통 남편 쥘에 대한 생각뿐이다. 아이를 싫어하는 쥘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떻게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나는 쥘을 위해 청소도 해야 하고, 지방흡입수술도 받아야겠다. 쥘이 꿰맨 자국을 보고 놀라면 넘어져서 다쳤다고 해야지. 당신 없는 나날이 너무 힘겨웠다고도 해야지. 그럼 아이, 아이는? 병원 측에서 어딘가로 보내주겠지. 안녕 내 아가.
‣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나는 벌써 일 년째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덕분에 엄마는 의사선생님도 놀라는 해박한 의학지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귀동냥으로 배운 걸 멋대로 써먹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엄마는 쉰일곱개의 좌약을 한꺼번에 항문에 쑤셔넣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내가 병원가기를 반항하면 내 심장이 빵 터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협박도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그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엄마는 내가 병원에 있을 때가 가장 사랑스러운가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일련의 신랄한 이야기 가운데 언급되는 ‘그녀들의 관계’. 레스 카스티용은 이 독이 든 선물로 그 핵심을 관통한다. 렉스 프레스
누군가에게 내 소설은 ‘털을 한 방향으로 쓰다듬으며 달래주다가 다시 거꾸로 쓰다듬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난 이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클레르 카스티용 _ VSD와의 2006년 3월 인터뷰 중에서
금속도 부식시킬 만큼의 산도 높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공포에 치를 떨어야 했다.
다 읽고서는 완전히 진이 빠졌다.
하지만 가장 비뚤어지고 가혹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간에도, 이 책 안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신랄하고도 놀라운 결말이 참신함을 부여해주는 작품이다. 프랑스 아마존 독자
클레르 카스티용 Claire Castillon
1975년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의 장례식 후, 갑자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열여덟 살 때 광장공포증에 걸려 길고 지난한 정신과치료를 받는 중 스물다섯 살에 첫 소설 『다락방』을 발표해 비평계와 독자들의 주목을 공히 받았다. 그후 거의 매해 한 편씩 작품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독특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아름답고 고혹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가치 전복적이며 도발적인 작품 성향 때문에 ‘천사의 얼굴로 악마의 글을 쓰는 작가’로 불리기도 하며, 일거수일투족이 가십란에 오르내리며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트렌드세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쓰기 외에도 희곡『기침하는 인형』을 발표해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텔레비전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는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다. 『다락방』(2000), 『나는 뿌리를 내린다』(2001), 『렌 클로드』(2002), 『왜 날 사랑하지 않아?』(2003), 『그녀에 대해 말하다』(2004, 티드 모니에 대상 수상작),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2007) 등의 작품이 있다.
‣ http://www.clairecastillon.com
옮긴이 김민정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수학중 도불, 파리 제4대학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옮긴 책으로 『송고르 왕의 죽음』『오스카와 장미할머니』『살인자의 건강법』『공격』『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스코르타의 태양』『내일은 키프키프』『제비 일기』『살았더라면』등이 있다.
* 2007년 10월 31일 발행
* ISBN 978-89-546-0401-7 03860
* 128 × 188(양장) | 200쪽 | 9,000원
* 담당편집_해외문학 3팀 장선정(031·955·2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