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가지고 놀다 — 경쾌하고 외설스러운 팩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다 허구의 옷을 입힌,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팩션’이다. 하지만 추리나 미스터리 팩션이 아니라, ‘역사를 가지고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 유쾌한 팩션’이다. 그 막나가는 유쾌함 속에도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을 능가하는 비밀스런 음모와 예측 불허의 반전이 숨겨져 있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의 커다란 매력이다.
일본 정사(正史)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들이 실은 어처구니없는 바보였으며 일본사의 한 획을 그은 업적이나 사건이 실은 어처구니없는 동기(투정, 심심풀이 장난, 욕정 등)로 어쩌다가 탄생한 한판 해프닝이었다는 식으로, 장중한 일본 고대사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인물들과 앞가림만 겨우 하는 인물들의 좌충우돌, 피 터지는 이야기로 격하시킨 이 블랙코미디는 작가의 능숙한 조롱과 야유와 풍자의 필력에 힘입어 쉴새없이 독자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단지 이런 역사 패러디의 풍자와 조롱에서 연유한 웃음뿐이라면 수많은 책들이 이미 우리에게 그런 재미를 제공해왔으므로 특별하달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재미가 각별한 것은,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이야기가 위의 코미디와 연결되는 방식이 기묘하고 놀랍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이야기란, 위의 좌충우돌 고대 황실에서 1,200여 년을 훌쩍 뛰어넘은 20세기 전반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19세기 말에 태어난 한 아이가 제국주의라는 일본의 어두운 현대사를 고스란히 체현하는 ‘괴물’로 성장했다가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몰락하기까지의 일생을 독특하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일본 고대와 현대, 이 두 파트의 이야기는 번갈아가며 등장하면서 독자에게 과거(고대)와 현재(현대) 사이의 유사성 혹은 인과관계에 주목하도록 한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은 소멸돼도 결국 업장(業障)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다분히 불교적 세계관? 혹은 소설 속 (돌팔이) 중들의 대화처럼, ‘과거는 미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역사관을 피력하는 희극? 아니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참사인 히로시마 핵 참사를 초래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
이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작가는 그런 결정적인 한 가지 해답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작가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서 독자를 웃기거나 등을 오싹하게 하는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놓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데올로기, 도덕, 심리, 메시지, 이 모든 것은 다 부차적인 것이죠. 나는 나 자신을 옛날의 이야기꾼 같은 부류로 생각합니다.”-「포트 아 포트」와의 인터뷰, 2005년 2월)
따라서 우리가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가 공들여 구성한 소설적 장치들이 주는 쾌감이다. 소설이 명하는 대로 쾌감에 푹 젖어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다 보면 이 소설이 구성하는 거대한 ‘코스모스’는 모든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취향대로 골라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외국 잡지 리뷰
“이 대하드라마는 스릴 넘치고 섹시하다. 이 서사는 단숨에 삼켜져 당신의 입 안에 달콤쌉싸름한 맛을 남길 것이다.” - 20ans
“다른 어떤 소설과도 닮지 않았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아멜리 노통브와 몬티 파이튼의 작중인물을 교배시켜놓은 것이랄까.” - 엘르
“(『네코토피아』와 『미크로코스모스』) 이 두 권의 책으로 아스카 후지모리는 역사와 픽션, 유머와 잔인함을 뒤섞어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소설적 세계를 이루었다.” - 리브르 에브도
“전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이 소설에서 작가는 능숙한 솜씨로 소설과 역사의 가벼운 결합을 보여준다. …… 작가가 짜놓은 그물에 걸려, 독자는 놀라운 반전에 이르게 된다.” - 라 마르세예즈
지은이_ 아스카 후지모리
전작 『네코토피아』로 한국에 많은 팬을 가진 작가. 전작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인형 같은 사진과 함께 자신을 20대 일본 여성으로 밝혔으나, 그후에 자신은 30대 프랑스 남성이며 현재 도쿄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역시 필명인 ‘토마 타데우스’라는 이름으로 『La Corde aux Jours Impairs』『La Bosse du Diamant』 두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조차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작가이다.
옮긴이_ 홍은주
이화여자대학교 불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했다. 『녹턴』『태양의 여왕』『현자 프타호텝의 교훈』『디오게네스의 햇빛』『자신있게 살아라』『비밀』『쇼비타』『코르토 말테제』(전5권)『지구를 걷는 아이』『사랑의 목소리』『80일간의 세계일주』『헤드헌터』『장 지오노, 나의 아빠』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7년 9월 10일 발행
* ISBN 978-89-546-0370-6 03860
* 128*188 | 456쪽 | 9,800원
* 담당편집 : 조현나 부장(031-955-8875, jelesais@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