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단에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평론가 홍용희의 세번째 평론집. 삼 년 만에 펴내는 이번 평론집에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인들의 시세계를 통해 당대의 시적 가능성과 미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원초적인 자연의 시간을 찾아서
이번 평론집의 제목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기계문명 속에서 시적 상상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고(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라고 했듯이, 가장 이상적인 삶은 자연의 운행원리에 맞추어 사는 삶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도의 정보사회 속에서 원초적인 자연의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그 계기를 ‘시적 상상력’에서 찾고 있다. 옥타비오 파스가 “시의 시간은 시간 이전의 시간, 어린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날짜 없는 원형적 시간”이라고 했듯이 시의 시간이야말로 자연의 운행원리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적 상상력의 미로를 통해 자연과 대화할 수 있고 충일한 본래의 자아로 회귀할 수 있다.
제1부는 당대적이고 세대론적인 층위에서의 사회, 문화적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시적 가능성과 미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특히 2006년 애지문학상 수상작인 「내국망명자와 생활세계적 가능성의 지형」에서는 ‘새로움’과 ‘오래된 새로움’의 관점에서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특징적인 현황과 미래를 분석, 조망하고 있다. 근래 비평의 논점은 주로 불연속적이고 이색적인 ‘새로움’에 모아지고 있으나, 저자는 구체적인 생활세계의 삶을 통해 시대사적 진정성과 미래적 가능성을 담고 있는 ‘오래된 새로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인들의 시세계를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제2부는 비교적 근자에 발간된 시집들의 다채로운 미적 양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감지되는 ‘발견과 예언’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는데, 시단을 주도하고 있는 시인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저자의 부단한 탐색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글의 말미에 덧붙이는 쓴 소리는 시적 상상력이 나아갈 길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과 무한한 애정을 확인시켜준다. 제3부는 주로 시인론과 현대시조에 대한 논의를 통해 시의 미적 형식과 내용가치의 의미를 탐사하고 있다. 특히, 민병도와 홍성란의 시조세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미의식이 만나는 법고창신의 미적 균형감각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도 정보사회의 운용원리가 인류의 삶과 영혼을 압도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시적 상상을 통해 원초적인 자연의 운행원리를 표상하는 ‘대지의 문법’을 노래하고 이를 생활 속에 내면화하는 것은 생명가치의 구현을 위한 신생의 출구 찾기와 직접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대지의 문법’을 추구하는 시적 상상력은 그 자체로 반생명적인 문명질서를 초극하는 21세기형 문화혁명의 원형(architype)으로서의 미적 가능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소외, 단절, 해체, 갈등의 병리적 현상 속에서 이를 넘어서는 ‘창조적 보편성’의 시대정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삶의 존재의 원형에 대한 인식은 ‘오래된 미래’의 예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_‘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