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중심에서 호황을 외치다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던 1929년의 대공황 이래 유례없는 불황이라던 세계 경제가 1년 만에 다시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꺾일 줄을 모르고, 최근에는 미국 다우지수도 경제 위기 이전 수준인 1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세계 경제는 이제 완전히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것일까?
이번 불황은 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과 그 붕괴,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다 다시 부푼 부동산 버블과 그 붕괴의 필연적 결과였다. 큰 혼란을 가져왔던 서브프라임 사태 역시 그로 인한 것이었다. 몇 년 전 주식과 부동산 광풍이 비정상적으로 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위험을 경고했으나 지나친 기우로 치부되어 무시를 당했다. 금융 위기가 터지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째서 아무도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몰랐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른 것이 아니라 경고를 들을 귀가 없었던 것뿐이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숙적 카르타고를 물리친 후 그 폐허 위에서 “언젠가는 로마도 이렇게 되겠지”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모든 호황은 이처럼 위태롭다.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는 불황은 없다. 사상 최악의 불황이던 대공황도 결국은 끝났고 인류는 그후 수십 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번 불황과 뒤이은 회복의 기미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잘나갈 때 조심하고 안 풀릴 때 버티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사는 큰 지혜다.
『모래 속의 타조』는 호황의 중심에서 불황을 경고하고 불황의 한복판에서 호황을 외치는 책이다. 어떤 불황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호황도 마찬가지이다. 미주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저자에게 호황과 불황의 되풀이는 풍년과 흉년의 반복처럼 변하지 않는 세상 이치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가 마냥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고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처럼 변화의 바람을 감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버블,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모래 속의 타조』는 지난 10년간 미주 한국일보에 실린 저자의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버블의 양상, 미국 경제의 현주소와 한인 사회의 단면들 그리고 밖에서 본 한국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회현상을 진단한다. 객관적이고도 날카로운 지적, 때로는 준엄한 경고까지 지금 시점에서도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한국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경계인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기자로 25년이 넘는 기간을 보냈다. 두 나라의 밝음과 어둠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 대해 날카로운 촉수를 들이댄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부풀어오를 대로 올랐을 때 그는 세계 경제의 위태로움을 경고했다. 몇년 후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유례없는 불황으로 신음하는 한국에 끝나지 않는 불황은 없다고 조용히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호황이 가져오는 헤픔 속에 불황의 씨앗이 있고, 불황 속 허리띠 졸라매기가 호황의 발판이 된다.”
세계 경제가 금세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불황의 그늘에 신음하고 있다. 오래 축적된 불황의 원인들이 아직도 곳곳에서 우리 경제를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침 한 번에 감기몸살을 앓는 것이 우리나라라고 했다.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오래 전부터 미국과 한국은 떼려 해도 뗄 수 없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자명하다. 미국과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불황 극복과 위기 대비의 첫걸음이다. 미국과 세계의 경제 흐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자세를 강조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이 어두운 과거를 털고 새출발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미국의 흑인 노예사는 역사를 움직이는 것, 사회를 바꾸는 것은 결국 비전을 가진 지도자의 집념과 국민의 결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래 전 노예제 폐지를 외쳤던 이들을 당시 사람들 대다수가 비웃었다. 그러나 지금 역사의 조롱을 받는 것은 그들을 비웃던 자들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왜곡된 시각이 훗날 어떤 어리석음으로 평가받을지 모를 일이다.
버블과 인간, 그리고 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조망하는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을 따라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