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등단한 이래 『봉헌문자』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활발한 시작활동을 해온 신달자 시인. 그는 1990년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를 발표해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기도 했고,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등 다수의 산문집을 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죽음을 넘나드는 순수한 사랑, 가족에 대한 헌신과 여자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삶, 가장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인생의 아이러니 등 인간이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을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진솔하게 엮어낸 그의 에세이들은 발표할 때마다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신달자 시인의 신작 산문집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에는 어린 시절에는 꿈으로, 성인이 된 후에는 힘이 되어 평생을 함께한 문학과 어머니의 기대와 사랑,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 등 한 시인의 오십여 년에 걸친 문학적 여정과 그 원형이 곡진히 담겨 있다.
문학이라는 바다
나는 너의 바다에 자라는 심해어
더 넓은 들판을 지나 숲을 건너
크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 오늘 너의 바다에 이르렀네
이 시 한 편으로 도회지에 온 지 일 년도 안 된 시골 소녀는 “너는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강권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산에서 부산으로 홀로 유학을 간 신달자 시인은 경남 백일장에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시제는 ‘길’이었다. 그것은 넓고 넓은 문학이라는 바다로 이르는 길이 되었다. 이후 숙명여대 국문과에 진학해 김남조, 박목월, 서정주 등의 시인과 인연을 맺으며 ‘오직 시만 생각하고 시만 쓰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고독과 방황, 고통과 죽음이란 말을 가까이하며 젊음을 ‘앓던’ 시기였다.
그리고 진짜 고통이 찾아왔다. 가족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쳤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던 끝에 진짜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했을 때도 결국 힘이 되었던 것은 시였다. 누추한 삶을 너른 품으로 감싸주었던 문학이라는 바다였다.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달자 보아라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라
돈도 벌어라
행복한 여자가 되거라
―니 에미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에는 어머니가 시인에게 되뇌었던 세 가지 당부가 실려 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돈도 벌고, 행복한 여자가 되는 것. 그것은 시인의 어머니가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교육을 받아본 적 없어 이름 석자 쓸 줄 몰랐고, 일생 밖으로만 떠돌던 남편 탓에 따뜻한 부부의 정 한번 누리지 못했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어버렸던 어머니……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던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은 어머니가 평생 몸으로 겪은 지식이며 철학이었던 것이다. 오직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만을 바랐던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은 막상 시인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축복받지 못한 결혼과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허우적대는 시인에게 불쑥 “니, 그 세 가지 잊지 않았제.” “달짜는 할 수 있을 낀데” 하는 어머니의 집념에 가까운 기대는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을 극복하고 문학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무거운 짐이었던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이었다. 마흔 넘어 다시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어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게 되고, 글을 써서 책을 내 돈도 벌게 한 힘은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던 어머니는 가시고, 그 자신 어머니가 된 시인은 이제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평생 공부하고, 돈도 벌고,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되기 위해 애썼던 곡절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이 담긴 문학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시인의 목소리가 어머니처럼 정답게 느껴진다.
* 초판발행 | 2006년 9월 28일
* ISBN 89-546-0211-8 03810
* 153*210 | 264쪽 | 9,000원
* 담당편집 | 김송은(031-95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