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름만으로 나를 표현할 수는 없다! 한 작가가 평생 동안 한 번만 수상할 수 있는 문학상, 공쿠르 상. 그러나 자신이 창조한 분신의 이름으로 한 번 더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가 있다. 로맹 가리. 그의 내부에는 로맹 가리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재능과 열정이 응집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노쇠”했다며 수군거리는 프랑스 문단의 온갖 비평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에밀 아자르’가 되어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내용과 문체의 “참신함”으로 평론가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켜, 로맹 가리에게 프랑스 문학사상 전무후무하게도 두 번의 공쿠르 상을 안겨준다. 이 책은 자유와 욕망을 좇아 자신의 그림자 뒤에 숨어버린 대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준다. 자신의 첫 전기 작품인 이 책 『로맹 가리』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전기 부문 대상을 거머쥔 도미니크 보나는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공쿠르 상 수상작 『하늘의 뿌리』를 읽고 로맹 가리에게 단번에 빠져들었고, 면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그때까지 수수께끼와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프랑스 최고의 전기작가인 도미니크 보나의 손끝에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한 가난한 소년의 열망이, 화려한 언변과 세련된 외모로 세계 외교 무대를 사로잡은 한 외교관의 카리스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프랑스인이 되고 싶었던 이방인 1914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전쟁의 포화를 피해 열세 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에 정착한 로맹 가리.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은 이때부터 프랑스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 야망과 꿈을 키워나간다. 파리 법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파리 지역의 유력한 정치, 문학 주간지 『그랭구아르』에 「소나기」가 게재되면서 드디어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으로 참전한 로맹 가리는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기를 누구보다도 열망하지만, 항상 전쟁은 끊임없이 달아나며 로맹 가리를 기다리게 한다. 고대하던 전투는커녕 어이없는 세 차례의 사고를 겪고 좌절하던 그는 1943년 10월부터 1944년 4월까지 60여 차례의 전투 비행을 실시하게 되고, 마침내 전공을 인정받아 자신의 영웅 샤를 드골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떠나자! 떠나자! 숨쉴 곳을 찾아서!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31세 되던 해에 비평가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는 이제 프랑스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켜야 할 규칙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넘쳐나는 외무부에서 행복을 찾기에는 너무나 열정적이고 개인적이고 독립적이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로맹 가리는 영화배우 같은 외모와 뛰어난 화술을 바탕으로 외교관으로서, 소설가로서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뉴욕을 떠나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주재하던 시기에 로맹 가리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외국 작가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잘 모르는 러시아인 이민자로 여겨질까 두려움에 떨던 그는 이제 프랑스인 어머니에 조지프 콘래드 같은 위대한 망명 문학가들과의 인연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러시아인 아버지를 둔 중견작가로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고, 프랑스 문단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다. 진 시버그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이별 라파스를 떠나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부임해온 로맹 가리는 자신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린 ‘팜 파탈’ 진 시버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랑에 빠져버린다. 둘은 첫 만남이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밀회를 갖기 시작하고, 로맹 가리는 자신이 거둔 성공과 새로 찾아온 사랑을 만끽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성공, 부, 명예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진 시버그와의 이혼, 이혼 즈음에 겪은 갓난 딸의 죽음,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기자들의 식어버린 관심 등으로 그는 점점 지쳐간다. 창조적 에너지가 이제 다 바닥났다고, 더 이상 로맹 가리에게서는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고 떠들어대는 비평가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마침내 자신의 펜에 가면을 씌워 장난을 칠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에밀 아자르는 탄생하고, 로맹 가리는 자신의 그림자 뒤로 숨어버린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를 창조했고,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삶을 이끌었다! 이미 포스코 시니발디(『비둘기를 안은 남자』), 샤탄 보가트(『스테파니의 얼굴들』)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던 로맹 가리는 단 하나의 피부, 단 하나의 삶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첫 소설 『유럽의 교육』(1945)으로 비평가 상을, 『하늘의 뿌리』(1956)로 공쿠르 상을 거머쥔 문학의 대가였지만 그는 늘 자신을 넘어서기를, 새로워지기를 갈망했다. 삶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고, 구태의연한 문단 권력과 작품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비평을 쓰는 평론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펼친 ‘아자르의 코미디’. 『그로 칼랭』에 이어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두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또다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는 연극을 계속하고, 베일에 가려진 저자의 정체를 밝히려는 아우성으로 프랑스 문학계는 발칵 뒤집힌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카 폴 파블로비치에게 아자르 역을 맡기고,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번갈아가며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매너리즘에 빠진 거장’과 ‘자유로운 영혼의 신인’이라는 두 페르소나를 완벽히 연기해낸다. 그러나 1980년 12월, 하루가 다르게 자신을 조여오는 노쇠, 자신이 깊이 사랑하던 여인의 죽음, 독립할 나이가 된 아들의 성장, 서른 편의 소설을 앞에 두고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는 선언을 뒤로한 채,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면서. 꿈꾸는 현실주의자, 열정과 야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몽상가,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유럽의 교육』 등의 보석 같은 작품들로 우리나라에서도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로맹 가리는 1980년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기까지 서른여섯 편의 작품을 남겼다. 매 작품마다 문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로맹 가리』에는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들어놓았던 ‘아자르 사건’을 포함한 파란만장한 삶의 일화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과 창작의 배경, 그리고 내면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줄 그의 전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꽃같이 살다 삶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한 “영원한 자유인”이 있다. 지은이 도미니크 보나 전기 작가, 소설가, 문학비평 기자. 1953년 프랑스 페르피냥 출생.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현대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 ‘프랑스 퀼튀르’과 ‘프랑스 앵테르’에서 일했고, 『르 코티디앵 드 파리』 『르 피가로』 등의 일간지에서 문학 담당 기자로 일했다. 1981년 소설 『도둑맞은 시간』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소설 『말리카』로 1992년 앵테랄리에 상을, 『에벤 항의 필사본』으로 1998년 르노도 상을 수상하며 훌륭한 문학비평 기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소설가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보나가 특히 두각을 나타낸 것은 저널리스트의 치밀함과 소설가의 감수성이 결합된 전기 부문이다. 그녀는 첫 전기인 『로맹 가리』로 198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전기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살바도르 달리와 폴 엘뤼아르와 막스 에른스트의 뮤즈였던 갈라의 삶을 그린 『세 예술가의 연인』으로 메디테라네 상을, 뛰어난 인상파 화가였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베르트 모리조의 생을 다룬 『베르트 모리조, 상복을 입은 여인』으로 공쿠르 창작 기금과 보자르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베르니에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이상해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대학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측천무후』로 제2회 한국출판문화대상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낭만적 영혼과 꿈』『이슬람의 현자 나스레딘』『바둑 두는 여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영혼의 산』 『악마와 미스 프랭』 『11분』 『돌의 집회』『머큐리』『측천무후』『프랑스 조곡』『아담, 바이러스의 자서전』『음모자들』『셜록 홈즈의 유언장』 등이 있다.
* 2006년 9월 28일 발행
* ISBN 89-546-0217-7 03860
* 153*224 | 444쪽 | 18,000원
* 담당편집 : 오영나(031-955-8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