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영문학과 20세기 페미니즘 이론을 꿰뚫는 비평서
엘리자베스 D. 하비는 이 책에서 근대 초기의 영문학 작품을 역사적, 이론적으로 연구하여 여성에 의해 씌어진 듯하지만 사실은 남성에 의해 씌어진 작품에 나타나는 ‘복장도착’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복화술화된 이런 작품들이 고의적으로 젠더를 바꿈으로써 르네상스 시대 영국 사회의 예술가에 대한 후원, 의학, 광기 그리고 에로티시즘 등에 관한 담론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다시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정체성, 권력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남성, 여성, 그리고 언어의 관계뿐만 아니라 본질주의와 여성의 목소리 같은 20세기 페미니즘의 중요한 논쟁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독창적이면서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를 공부하는 학자와 학생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흥미로울 것이다.
누가 말하고 있는가가 무슨 문제인가?!
제1장에서는 목소리와 크로스드레싱의 관계를 논한 일련의 저술들을 모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는 목소리와 여성중심비평, 복장도착 그리고 젠더에 관한 일레인 쇼월터의 이론적 연구를 분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성성과 히스테리에 관한 프로이트 이론에 복화술을 적용시킨 사라 코프망의 논지를 설명한다. 제2장에서는 과거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졌던 에라스무스의 『폴리 예찬』을 통해 히스테리와 목소리의 관계가 이야기된다. 저자는 『폴리 예찬』에서 에라스무스가 폴리를 웃음과 여성, 섹슈얼리티 그리고 광기와 연관지어 형상화시킴으로써 폴리의 말을 주변적인 담화로 만들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클레망과 식수의 『라 죈 네』에 실려 있는 히스테리에 대한 ‘수사 어구’가 언급된다. 저자는 식수가 뤼스 이리가레나 코프망처럼 복화술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남성 중심 문화의 어휘를 이른바 문화적 적절성의 질서를 뒤흔들 양성적 언어의 초석으로 삼아 여성을 매도하던 문화적 담론을 파괴해버렸다고 주장한다. 제3장에서는 히스테리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육체와 목소리에 대한 논의가 가장 명시적이면서도 복잡하게 통합되고 있다. 저자는 남성 시인들이 그들의 시적 목소리를 여성의 출산과 밀접히 관련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을 조산술에 대한 그동안의 역사적 논쟁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여성의 목소리와 언어는 출산과 비슷한 과정으로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 전통에서 보면 마리아가 예언의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여성은 목소리를 잉태하거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여성은 복부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낸다. 이제 나는 복화술과 시적 영감 그리고 목소리의 근원에서 임신과 출산을 연관시킨 일련의 시와 산문으로 이야기를 돌리려 한다”고 설명하며 “말을 여성의 성적 특성인 출산에 비유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일종의 절정의 순간에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저작권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질문은 사포를 둘러싼 것들로, 저자는 사포의 저술과 동성애에 행해진 당시의 검열로 인해 그리고 이러한 억압이 낳은 복화술로 인해 사포의 역사가 단편적으로 전해지거나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포의 목소리로 말하는 남성 시인이 그녀의 시적 명성이 갖는 힘을 전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음증이라는 틀 안에서 사포가 남성의 경멸을 받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 책 전반을 통해 저자는 여성적 목소리에 대한 근대 초기의 복화술과 20세기 페미니스트의 목소리에 대한 이론화를 병치하고 있다. 또한 여성적 발화에 대한 역사적인 도용과 재현의 계속성을 보여주는 한편 최근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부여한 특징까지 두루 살피며 철학적 . 신화적 . 시적 분야의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한 이론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할 때에도 많은 예문과 적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득력 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문학의 정수는 물론이고, 그 밖의 다른 분야까지도 폭넓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치밀한 조사와 혁신적인 내용 그리고 재미까지 두루 갖춘 작품. 페미니즘 비평가들 못지않게 전통적인 학자들과 르네상스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저작. - 마거릿 W. 퍼거슨, 콜로라도 대학교
이 책은 대담하고 야심찬 기획이다. 하비의 저술은 시종일관 명료하고 세련된 구성을 보여주며 또한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 메리 니퀴스트, 토론토 대학교
엘리자베스 D. 하비 Elizabeth D. Harvey
토론토 대학에서 영문학과 부교수 겸 대학원장을 맡고 있으며, 학제 간의 협동과정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동시에 인문학과 보건학을 접목시킨 연구를 지도하고 있다. 『복화술의 목소리―페미니즘 이론과 영국 르네상스 시대 작품』(1992)을 저술했고, 『여성과 이성』(1992), 『해석에의 유혹―문학 이론과 17세기 영시』(1990), 『뤼스 이리가레와 전근대 문화―역사의 문턱』(2004) 등을 공동 편집했으며, 『감각할 수 있는 몸―근대 초의 문화 속에서 접촉의 문제』(2003)를 편집했다. 현재 근대 초의 문학과 기억력, 상상력, 열정 그리고 의학을 다룬 『불가해한 기관―성, 의학 그리고 근대 초의 영문학Inscrutable Organs』을 완성중이며, 몸의 접촉에 관한 역사와 이론을 다룬 『선정적인 대상들―근대 초 영국에서의 몸의 접촉에 관한 수사학Sensational Subjects』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옮긴이 정인숙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공저로 『조선후기의 시가와 여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가사(歌辭)에 나타난 시적 화자의 목소리 연구」와 「남성작 여성화자 시가에 나타난 목소리의 의미―‘복화술의 목소리’ 이론에 의한 비교검토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옮긴이 고현숙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미국 하와이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은/는 …이/가’구문을 통해 본 한국인」과 「한국어의 주제와 주어, 담화와 인지」 등이 있다.
옮긴이 박연성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공저로 『W. H. 오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부동의 사랑』이 있다.
* 2006년 8월 30일 발행
* ISBN 89-546-0208-8 03800
* 신국판 양장 | 312쪽 | 18,000원
* 담당편집 : 이효숙, 김경미(031-955-8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