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와인 병 속에 담긴 한여름의 찬란한 기억!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과거의 시간을 와인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과연 그 안에는 어떤 기억이 담길 수 있을까? 어느 해가 될 것이며, 그 와인의 맛은 어떠할까? 조안 해리스의 ‘음식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인 『블랙베리 와인』은 이처럼 ‘와인 병 속에 담긴 과거의 시간’이라는, 마법 같은 설정에서 풀어나간 향기로운 소설로, 사라진 옛 친구가 남긴 오래된 와인들을 열쇠 삼아 잃어버린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래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은이 때로는 신비한 화학작용 같고 때로는 마법 같은 사랑의 힘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조안 해리스의 매혹적인 문체로 펼쳐진다. 몇 년 전 국내에 개봉되어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초콜릿>(쥘리에트 비노슈, 조니 뎁 주연)의 원작 『초콜릿』(1999)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한 조안 해리스는 이후 『블랙베리 와인』(2000) 『오렌지 다섯 조각』(2001)을 차례로 펴내 ‘요리 3부작(Food Trilogy)’을 탄생시켰다. 매년 거의 한 편씩 장편을 꼬박꼬박 발표해올 정도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펼치는 해리스는 『초콜릿』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블랙베리 와인』을 완성했다고 한다. 만약 『초콜릿』으로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면 작가로서 경력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따라서 단 한 편의 성공작으로 몇 년을 버텨온 작가인 주인공 제이 매킨토시의 모습에는 작가로서의 조안 해리스의 자의식과 경험이 유머러스하게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소설 한 권으로 몇 년을 우려먹고 사는 거야?
평생 데뷔작으로만 기억되는 불운한 작가들이 있다. 주인공인 제이 매킨토시 역시 바로 그런 케이스.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와중에 가명으로 몇 권의 펄프픽션을 쓰기도 하지만 결과는 시원찮다. 그런 그와 동거하고 있는 케리는 그저 그의 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려는 생각뿐인 이기적인 여자. 곧 그럴듯한 신작을 써내지 못하게 되면 그에게는 오직 두 가지 선택만 남는다. 케리가 권하는 대로 속물적인 인생을 살 것이냐, 아니면 평생 싸구려 와인이나 마시는 정직한 내리막 인생을 살 것이냐. 그러던 어느 날, 축복처럼, 기적처럼 하나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랑스 남부지방에 내놓은 포도농장 부동산 광고가 눈에 띈 것이다. 제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농장을 사들인다. 자, 과연 제이를 부추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옛 친구 잭애플 조 콕스가 남긴 유일한 선물인 블랙베리 와인 여섯 병이다. 이들은 무미한 일상을 살아가던 제이를 부추기고 선동하고, 마법에 홀린 듯 제이는 프랑스 촌구석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곳에 가면 잊혀진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듯한 느낌에 제이는 와인 병과 타자기만 달랑 들고 무작정 그곳을 찾아간다. 한편 제이의 농장 근처에는 말 못하는 딸을 데리고 사는 젊은 여인 마리즈가 있다. 새로 이사온 이웃을 기피하는 냉담한 여인의 반응은 못내 미심쩍고, 그녀를 둘러싼 동네의 여론도 차갑다. 그녀의 남편이 몇 년 전에 사고로 사망했는데, 바로 그녀가 남편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제이는 그녀의 딸을 통해 그녀와 서서히 마음의 교류를 시작한다. 와인이 불러온 마법은 그뿐이 아니다. 사춘기 시절 할아버지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다 만난 광부 출신 괴짜 노인 조가 유령처럼 그의 앞에 출몰하면서부터 작가로서 그의 영감도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 광부이자 여행자이며, 마법사이자 위대한 정원사였던 조. 제이의 처녀작이자 유일한 성공작 역시 사실은 그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 여름 이후, 갑자기 사라져버린 조 때문에 제이는 마음 깊이 상처를 입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피해왔다. 한편 사라진 제이가 프랑스에서 신작 집필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들은 케리가 건수를 노리고는 한 떼의 방송국 촬영 팀을 이끌고 제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과연 제이는 마음의 평화와 그에 대한 마리즈의 신뢰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제이의 눈앞에 나타난 조는 그의 환상이 만들어낸 환각일까,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육체일까?
가족과 사랑, 노스탤지어와 마법의 훈훈한 세계
조안 해리스의 ‘음식 3부작’은 그녀의 타고난 미각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사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외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을 소재로 하여 씌어진 『오렌지 다섯 조각』, 마법과 같은 음식 솜씨를 지녔던 외증조할머니가 영감의 주인공이었던 『초콜릿』에 이어 『블랙베리 와인』의 숨은 주인공은 영국인인 친할아버지였다. 요크셔 사나이이자 광부이고 정원사인 조 콕스는 그를 모델로 하여 창조된 인물이다. 그는 탄광에서 입은 부상으로 참전하지 못해 평생을 원치 않는 광부 일을 하며 살았고, 훗날 은퇴하여 작은 텃밭을 가꾸며 말년을 보냈는데, 조안 해리스로 하여금 허브와 원예의 세계에 눈뜨게 한 이가 바로 그 친할아버지였던 것. 『오렌지 다섯 조각』과 『초콜릿』에 고집스럽고 강인한 프랑스 여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면, 『블랙베리 와인』의 또다른 주인공인 조의 모습에는 자연과 마법적 치유의 힘을 믿었던 영국 시골사람들의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모습이 행간마다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할아버지가 담근 와인의 맛은 어땠을까? 조안 해리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할아버지가 와인을 담그는 방식은 대개 매우 실험적이었고, 따라서 그 결과물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것일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드물게도 정말 훌륭한 것들도 있었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분이 담근 와인들을 아직도 저장고에 보관하고 있답니다. 제이는 그 점에서 저보다 용감하죠. 저는 아직도 그걸 마셔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거든요.” 잘 익은 와인 같은 기품과 지혜가 담긴 조안 해리스의 대표작 『블랙베리 와인』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들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을 지닌, 한 잔의 빈티지 와인 같은 소설. _데일리 메일 활기 넘치고 독특한 재능으로 가득한 작품! _선데이 타임스
해리스는 향취와 풍미를 묘사하는 데 최고의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블랙베리 와인』을 펼쳐들기 전,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한두 병을 옆에 준비해두어야 할 것이다. _가디언
지은이 조안 해리스Joanne Harris
영화 <초콜릿>의 원작자로 유명한 조안 해리스는 1964년 영국 요크셔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방학마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휴가를 보낸 덕에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게 되었으며, 브르타뉴 지방의 토속 요리, 원예, 민담을 두루 익혔다. 케임브리지 세인트 캐서린 칼리지에서 현대와 중세 언어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록가수, 허브 재배가, 회계원 등의 직업을 거치면서,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렬한’ 실패를 맛보았다. 리즈에서 12년간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가르치다가 ‘내가 이것도 하는데 다른 것이라고 못하랴’라는 깨달음을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89년에 각각 고딕소설 『악의 씨』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가 작가 자신의 삶과 가까운 방향으로 스타일을 전환하여 1999년 출간한 『초콜릿』을 발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블랙베리 와인』(2000), 『오렌지 다섯 조각』(2001), 『프랑스풍 주방』(2003), 『성스러운 광대』(2004), 『지그와 릴』(2004)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2006년 발표한 신작 『젠틀맨 앤 플레이어』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작가적 역량을 과시했다. 작가에 대해 흔히들 상상하는 것과 달리 조용한 환경에서는 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여행길에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음에 둘러싸인 채 노트북으로 이야기를 줄줄 써내려가는 특이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 현재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남편과 딸 그리고 2001마리의 보이지 않는 토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옮긴이 송은경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오렌지 다섯 조각』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 『언제나 프로방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러셀 자서전』 『리어 왕과 도덕경의 행복한 만남』 『우리 시대의 유랑자』 외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06년 7월 25일 발행 * ISBN 89-8281-802-2 03840 * 145*210 | 464쪽 | 11,000원 * 담당편집 : 김지연(031-955-8860, livre@mun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