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진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스포츠 에세이집 『수학자 위의 축구공』을 펴냈다. 맛깔 나는 글솜씨로 수(數)의 세계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스포츠 세계를 펼쳐 보인 저작 『축구공 위의 수학자』를 펴낸 지 사 년 만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축구인’답게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스포츠에 관한 책을 내게 되었다. 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더욱 깊어져, 수학자 ‘밑에’ 있던 축구공이 이번엔 수학자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스포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스포츠의 정치적 영향력, 경제적 파급효과, 역사적 변천과정, 사회.문화적 의미 같은 것을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나는 그렇게 해야 스포츠가 주는 순수하고 뜨거운 감동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정정당당하고 치열한 승부의 아름다움과 감동 때문이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자연대 축구부의 모토도 ‘정정당당하고 아름다운 축구’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 학생들이, “우리 반칙하지 말자. 반칙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
-‘서문’ 중에서
이 책은 5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아름다운 승부사들’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고도 메이저리그로 날아가 끝까지 자신을 시험했던 이상훈, 시드니 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았던 강초현,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자신의 파울을 ‘자진 신고’한 김세진 등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진정한 승부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부 ‘축구공 위의 대한민국’에는 199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부터 월드컵 영웅 히딩크를 ‘오대영’이라는 치욕스런 별명으로 불리게 만들었던 2001년 대륙간컵대회, 2002년 월드컵의 영광, 월드컵 4강 이후의 국내 축구리그 등, 축구와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십 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3부 ‘농구 대통령 허재’의 주인공은 강석진 교수의 ‘영웅’인 허재이다. 음주운전 등 불미스런 사건으로 출장이 정지되었던 때부터 1994~1995 시즌 MVP에 오르고, 다시 원주TG로 이적 후 맹활약을 하다 은퇴하여 ‘전설’로 남게 되는 과정을, 허재라는 ‘이단 신앙’에 빠진 광팬의 입장으로 기술했다. 4부 ‘그대들에게 바란다’는 ‘정규방송 관계로’ 스포츠 중계를 중단하는 방송사, 가십과 연예뉴스로 도배하는 스포츠신문, 스포츠 정신이 무색하리만큼 말도 안 되는 스포츠 행정 등 스포츠와 관련된 각계에 대한 쓴소리와 바람을 담았다. 5부 ‘수학자 위의 축구공’은 프로 수학자인 강교수의 ‘축구인’으로서의 인생이 담겨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전임강사를 하던 시절 예일-하버드 축구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예일 대학교에 ‘특별강연’ 기회를 만들어 비행기를 타고 축구경기에 참가했던 에피소드를 읽으면 저자가 명실상부 ‘축구인’임을 수긍하게 된다.
승리는 우아하게, 패배는 당당하게... 스포츠에서 배우는 인생의 자세
월드컵을 노벨상보다 더 숭배하고, 서울대 수학과 교수직보다 자연대 축구부 지도교수직을 더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강교수는 보통의 ‘스포츠 마니아’가 아니다. 그는 ‘마니아’가 아니라 ‘축구인’이다. 『수학자 위의 축구공』에 수록된 ‘요괴 축구인간 - - 빨리 축구인이 되고 싶다’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몇 년 전, 그는 대한축구협회 소식지 『축구 가족』에서 ‘축구 마니아’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곤 ‘축구 마니아’의 정의를 물었다. 답은 ‘축구인이 아니면서 축구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대답을 듣곤 이렇게 탄식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축구인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럼 나는 ‘요괴 축구인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축구인의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 축구부원들에게 ‘지식인’이 되지 말고 ‘축구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지식인은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을 줄 알지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질 줄을 모른다. 골대 근처에서 찬스가 오면 과감하게 슛을 때릴 줄 아는 책임감과 결단력, 팀을 위하여 자신의 헛된 욕심을 잠재울 줄 아는 헌신과 희생정신, 이런 것들을 갖춘 진정한 축구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 자연대 축구부의 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꿈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다. 우리 축구부원 모두가 축구를 인생의 거울로 삼을 만큼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 이래도 내가 축구인이 아니란 말인가.
- - 본문 중에서
책임감과 결단력, 헌신과 희생정신을 갖춘 전 인격체. 그게 바로 강교수가 생각하는 축구인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곤 책임질 줄 모르는 지식인을 비판하면서 지식인 아닌 축구인으로 남겠다고 말하는 그는 스포츠에서 삶의 지혜와 자세를 배운다. 그것은 우아하게 승리하고 당당하게 패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에 겸허히 승복하는 것. 정정당당한 룰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이 세상에는 쉬운 일은 없으며, 아무리 작은 것을 이루려 해도 그에 걸맞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한 축구, 정정당당한 인생은 그만한 실력이 뒤를 받쳐줘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는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강석진, ‘프로 수학자’답게 그는 축구 경기를 보러 함께 지방에 같이 가보면 잠시의 짬이 나도 책이나 논문을 펴서 공부한다. 또한 ‘축구공 위의 수학자’답게 그는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 국제 세미나 참석을 위해 공항을 가다가도 시간이 남으면 경기 일정을 확인한 후 효창운동장에 잠시 들러 초등학교 경기나 중.고등학교 경기 등 수준에 관계없이 축구경기를 지켜보다 갈 정도다. 가히 ‘축구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사격, 핸드볼, 배드민턴부터 복싱, 농구, 축구까지 수학자이자 스포츠광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강석진 교수의 인기와 종목을 가리지 않는 스포츠 사랑을 담았다. 강초현, 김득구, 허재 그리고 박종환과 차범근...... 다양한 스포츠 세계와 아마추어 현장은 물론 해외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감동적 이야기는 스포츠만큼 흥미진진하다.
- - 이용수(KBS 월드컵 해설위원, 세종대 체육과 교수)
언젠가 만난 적 있는 강석진 교수의 눈에는 스포츠인에게서 풍기는 열정과 승부욕이 가득했다. 수많은 팬들 중 유독 강교수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그저 그가 사회의 저명인사이기 때문도, 나의 얘기를 다룬 책을 출판해서도 아니다. 그는 스포츠인인 내가 봐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강교수의 열정을 바탕으로 스포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최선을 다해 연습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정정당당한 스포츠 세계에 빠져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허재(전주 KCC 이지스 농구단 감독)
* 초판발행|2006년 6월 9일
* ISBN|89-546-0165-0 03690
* 153×210|304쪽|8,800원
* 책임편집|조연주, 김송은(031-955-8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