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들”,
그것을 탄생시킨 탐험기
『자연을 찾아서』는 서구세계가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을 열광적으로 채집하고 기록하면서 자연사라는 과학 분야에 그 어느 때보다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었던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년이란 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칼 폰 린네가 이명법을 창시하고,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과 진화론을 주창한 바로 그 시기다. 사진술이나 영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기록할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학과 예술이 공생했던 시기에, 동식물과 그 생태를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독특한 예술 장르인 자연사 미술이 꽃을 피우게 된다. “이 기간을 통과하며 호기심은 과학이 됐고, 진기한 것들은 표본이 되었다. 그렇게 얻은 과학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과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고, 미래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11)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은 바로 그 의미와 질문의 시각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한스 슬론의 자메이카 여행을 시작으로, 이 책은 각기 다른 시기 여러 지역에서 이뤄진 열 번의 탐험을 균형 있고도 일목요연한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준다. 그중에는 찰스 다윈이나 제임스 쿡처럼 잘 알려진 과학자·탐험가의 비교적 덜 알려진 일화도 있지만, 그 발견의 여정에 동참했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분투기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끝나는 바로 그 페이지에서부터 『자연을 찾아서』의 진짜 묘미가 펼쳐진다. 역사에 남은 극적인 탐험에서 탄생한 화려하고 장엄한 예술작품들, 그리고 오늘날까지 생물학과 분류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기준표본 등 놀라운 볼거리들이 그것이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내 8000만 점의 소장품, 50만 점의 미술품, 100만 권의 장서에서 엄선해 실은 이 책의 도판 중에는 기존에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잘 정리된 탐사기, 눈을 뗄 수 없는 시각 자료, 거기 딸린 상세한 설명을 살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열한 번째 탐험―이 책과 함께 자연사박물관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기록의 진화
―자연을 자연답게
17세기 후반,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합리적이고 ‘치우침 없는’ 조사를 하려는 움직임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책에 소개된 탐험들도 그 무렵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처음 만나는 자연을 찾아나선 박물학자들이 “유능하고 꼼꼼한 예술가가 되어 동식물의 구조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기록해주기를 바라고 또 기대했다”(17). 세계 각지를 떠돌며 연구를 해나가던 학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색도 변하고 말라서 쪼글쪼글해지기 마련인 동식물 표본을 대신해, 수많은 신종 생물의 생생한 모습을 세밀하게 기록해줄 기술자를 필요로 했다. 그들이 바로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자연사 화가들이다. “초기 자연사 화가들은 기본 소양을 갖춘 아마추어들이었다가 점차 동식물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갖춘 숙련된 전문가가 되어간다.”(15) 화가들 중에는 자비를 들여 독자적으로 관찰과 기록을 계속한 이들도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고용돼 탐험대와 동행한 전문 화가들도 있었다. 자연사 미술계에서 지금까지도 독보적인 작가들로 꼽히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시드니 파킨슨, 페르디난트 바우어 등도 그렇게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자연사 화가들은 자연을 단지 아름답게 그려내기만 한 이들이 아니라, 자연과학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일련의 발견들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기여한 사람들이다. “곤충이 흙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알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입증된 후 불과 몇십 년 뒤인 1699년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수리남을 찾아 나비의 변태 과정과 유충 및 성충의 먹이 식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이 너무도 훌륭했던 까닭에 린네는 그때까지 과학계에 알려진 모든 동물을 동정하는 책을 쓰면서 메리안이 기록한 종들도 포함시켰다. 네덜란드 화가 파울 헤르만과 피터르 드 베베러도 같은 영광을 누렸다. 두 화가의 예술적 식견을 바탕으로 린네가 오늘날 스리랑카라고 불리는 곳의 식물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윌리엄 바트럼의 예술적 재능 덕분에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진귀한 동식물에 대한 그림과 문서가 남게 되었으며, 태평양에서도 수많은 화가가 중요한 항해가 있을 때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임스 쿡이 조지프 뱅크스, 그리고 뱅크스의 박물학자 다니엘 솔란데르와 함께했던 인데버호 항해에는 시드니 파킨슨이 있었고, 쿡의 레절루션호 항해에는 게오르크 포르스터가 있었다. 또, 매슈 플린더스가 지휘한 인베스티게이터호 항해에는 최고의 자연사 화가라고 평가받는 페르디난트 바우어가 있었다. 여러 항해 중 가장 유명한 비글호 항해의 찰스 다윈도, 그리고 그와 동시대인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와 헨리 월터 베이츠 등도 이전 항해에서 남긴 그림과 기록들이 없었더라면 새로이 발견된 정보와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연결 짓지 못했을지 모른다.”(11~12)
과학의 발전과 함께 기록 방식도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전자현미경으로 수천수만 배 확대해 나비 날개의 인분을 촬영하고, 초당 10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를 초고속 정지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기록의 핵심은 대상을 얼마나 자연답게, 자연 상태를 대표할 수 있게 구현하는가에 있다는 원칙. 그래서 사진과 영상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도 그림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표본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그대로 찍을 수밖에 없는 사진가와 달리, 화가는 그런 상황에도 종이 위에서 조각조각을 결합해 완벽한 표본을 창조해낼 수 있다.”(383) 아이러니하게도 이 창조성이야말로 자연사 미술이 과학계에서 수백 년간 제 몫을 해올 수 있었던 비결임을,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탁월하게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