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신화는 계속된다
2023년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출판된 지 101년째가 되는 해다. 총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작품은 언어, 문학, 역사,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전제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성과 시대를 앞서간 언어 실험으로 인해 출간 당시 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에서는 외설 이슈에 휘말려 십여 년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리시스』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문학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등 여러 철학적 패러다임 또한 유연하게 수용하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작중 배경인 6월 16일 더블린에서는 매년 주인공 블룸의 행적을 따라가보는 ‘블룸의 날’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작품의 인기가 현재진형형임을 입증한다.
더블린에서 펼쳐지는 소시민의 오디세이아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대문호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구성적 틀로 삼고 있으며, 제목 ‘율리시스’ 역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조이스는 한 편지에서 『율리시스』 구상의 의도가 “신화를 우리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디세이아』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십여 년에 걸친 대모험을 그리는 데 반해,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블룸의 날’) 하루 동안 소외당하는 헝가리계 유대인 리어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겪는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사를 다룬다. 이와 같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기본적인 구조적 유사성이 있으나, 영웅과 소시민, 10년과 하루 등 디테일에서 두드러지게 대조적인 양상 또한 존재한다. 조이스는 『오디세이아』 서사시를 구조적 토대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새로운 현대의 신화 『율리시스』를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의 사유 과정을 이토록 낱낱이 밝혀낸 작가는 조이스 이전엔 없었다.”
『오디세이아』를 다시 쓰면서 조이스가 택한 전략 중 가장 특출한 기법은 바로 ‘의식의 흐름’이다. 서술자의 전지적 관점으로 흘러가는 서사 사이사이에 인물들의 의식이 내면독백 형식으로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줄거리 속 특정 내용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연상된 온갖 사항들, 예를 들어 그 인물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 노랫말, 책의 한 구절 따위가 별다른 설명 없이 나타나 끼어든다. 블룸의 아내인 몰리의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로만 구성된 마지막 18장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위대한 결과물이다. 이렇게까지 내면독백을 직접적으로 철저히 텍스트로 옮기려는 시도는 세계문학사상 최초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이 『율리시스』가 어렵다는 평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나, 인간의 내면세계가 외부의 현실 못지않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문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조이스의 빛나는 업적이기도 하다.
가장 실험적인 문학,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꾀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뿐만 아니라 조이스는 언어, 문체, 서술 형태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인물의 지적 수준이나 성격에 맞는 언어 표현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각 장의 주요 모티프에 걸맞은 문체와 서술 형태를 고안해냈다. 신문사가 배경인 7장에는 신문기사처럼 조각 글들이 짜깁기되어 있고, 10장 「떠도는 바위들」에서는 더블린 곳곳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잘게 나뉘어 제목 그대로 ‘떠도는 바위들’처럼 산재되어 있다. 14장에서는 삼십여 문단이 영국문학사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문필가들의 문체 모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희곡 형식을 취한 300페이지에 달하는 15장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쉴새없이 교차한다. 이러한 실험들이 각 장의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은 경탄을 자아낸다. 당대 모더니즘의 구호 ‘새롭게 만들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조이스의 실험이 그 시대의 유행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 문학인들에게 엄청난 창조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예술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추천사
『율리시스』는 매우 훌륭한 예술작품이자 20세기 산문문학의 정수다. 놀라운 독창성, 사고와 스타일의 독특함과 명료함은 조이스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율리시스』는 기억해야 할 대재앙이자, 대담함이 넘쳐나는 멋들어진 난리법석이다. _버지니아 울프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표출이다. 우리 모두 빚을 지고 있으며,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작품이다. _T. S. 엘리엇
『율리시스』에 나타나는 유희, 장난스러움, 호기로움, 일상의 위대함과 위대한 일상성에 열광했다. _앨리 스미스
『율리시스』의 인물들은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이 캐릭터들을 통해 조이스는 일관되고 완전한 삶의 해석을 선보인다. _에드먼드 윌슨(문학평론가)
인간의 사유 과정을 이토록 낱낱이 밝혀낸 작가는 조이스 이전엔 없었다. _데클런 카이버드(아일랜드 작가, 영문학자)
본문에서
어머니의 흐려진 눈이, 죽음 밖을 내다보며, 내 영혼을 흔들고 굴복시켜. 오직 내게만 쏠려. 악귀를 쫓기 위해 시신 주변에 켜둔, 어머니의 고뇌를 밝히기 위한 유령퇴치 촛불. 고통어린 얼굴에 비친 유령 같은 불빛. 모두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안, 공포심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그렁거리던 어머니의 목쉰 숨결. 나를 쓰러뜨리려고 내게 쏠린 어머니의 눈길. _23쪽
나도 저 아이 같았지, 이 굽은 어깨에 이 천박함이라니. 내 어린 시절이 옆에서 몸을 구부린다. 한 번만이라도, 살짝이라도, 내가 붙잡기엔 너무 멀다. 내 비밀은 멀고 아이의 비밀은 우리 눈과 같다. 비밀이 우리 둘 다의 가슴이라는 어두운 궁궐 안에 조용히,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자신의 독재에 싫증난 비밀들: 권좌를 벗어나고픈 독재자들. _54쪽
—그냥 한마디만 하려고, 그가 말했다. 흔히들 아일랜드가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는 영예를 안고 있다고 하지. 자네 그거 아나? 아닐세. 그런데 왠지 아나?
그는 환한 대기에 여지없이 눈을 찌푸렸다.
—왜인데요? 스티븐이 웃음기를 띠기 시작하며 물었다.
—아일랜드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이야, 디지 교장이 엄숙하게 말했다. _67~68쪽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이 말이야말로 사람의 심금을 가장 깊이 울린다니까.
—맞아, 블룸 씨가 말했다.
자네의 심금이야 울릴지 모르지만, 명줄이 끊어져 세로 여섯 자 가로 두 자의 관에 누운 친구는 어떤가? 그 심장은 울릴 수 없지. 감정의 자리라는 둥, 상처받은 심장이라는 둥 떠들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매일 수천 갤런의 피를 뿜어내는 펌프일 뿐이다. 아무 일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혈관이 막히면 그것으로 그만이야. 이 근방에 누워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허파며 심장이며 간도 그래. 낡고 녹슨 펌프에 불과할 뿐, 개뿔 달리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일단 죽으면 죽은 거야. _190~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