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상, 안데르센상,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수상 그림책
스웨덴의 사랑받는 작가 엠마 아드보게의 대표작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모두가 그저 ‘구덩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학교 체육관 뒤편의 움푹 파인 장소이다. 구덩이 안에는 잡초와 그루터기들, 뿌리, 바위, 자갈 등 온갖 것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언젠가 골재를 채취한 뒤 깔끔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치했을 이 공간은,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놀이터가 된다. 오두막도 되고 가게도 되는 커다란 그루터기, 하도 붙잡고 올라가서 문손잡이처럼 반들반들하게 닳아 버린 나무뿌리, 노란색 진흙이 파도 파도 끝도 없이 나오는 구멍, 매력적인 비탈까지.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뛰고 구르고 점프하고 날아다닐 수밖에 없는, 그 구덩이 얘기가 시작된다.
“우린 그냥 구덩이만 있으면 되는데요!”
어른들은 험난한 지형지물에 쓰레기들로 가득 찬 구덩이에서 볼이 빨개지도록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이 많다. 누가 되었든 언제가 되었든, 한 번은 된통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위험하다며 타일러 봐도, 그네 타기나 축구를 대신 권해 봐도, 다칠 수 있다고 겁을 줘 봐도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오늘치의 놀이를 즐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흥이 많은 아이 비베케가 계단에서 넘어지며 코를 깨고 만다. 구덩이에서 놀다 그런 게 아니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나오다 자기 신발 끈에 걸렸을 뿐인데, 선생님들은 들입다 구덩이 출입 금지를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정했으니까”라는, 옹색한 설명과 함께.
구덩이가 안 된다면 구덩이 둘레에서
구덩이에서 노는 것을 금지당한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구덩이 둘레에 앉아 다리만 대롱거리다가, 구덩이 둘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구조대 놀이, 모닥불 놀이, 줄넘기 줄 던지기 놀이 등을 개발해 낸 아이들 덕분에 풀이 무성하던 구덩이 둘레의 두둑은 금세 단단하게 다져진다. 구덩이 둘레도 금지라는 조항을 미처 달지 못한 선생님들은 뾰족한 수 없이 또다시 팔짱을 끼고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복사해서 붙인 듯 난감한 표정은 만면에 기쁨을 머금은 아이들 저마다의 몸짓과 대비되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 대결의 마지막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놀이를 향한 본능의 위대함,
“저는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구덩이였으면 좋겠어요.” ― 엠마 아드보게
지난봄에 출간된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내 딱지 얘기를 하자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희의 감각을 듬뿍 담은 자유로운 드로잉과 특유의 매트한 색채 팔레트는 아이들의 세계, 아이들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최적의 방식으로서 이야기에 기여한다. 늘 엠마 아드보게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유머러스한 코드 덕분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갈등은 단순한 대립이 아닌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느껴진다.
스웨덴 최고의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 선정위원회는 『그 구덩이 이야기를 하자면』에 대해 “자유로운 삶과 놀이를 긍정하는, 축제와도 같은 그림책이다. 치명적인 유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면 구성을 통해 독자에게 황야에서 자라나는 상상의 생명력을 보여 준다. 회색빛 학교 생활을 이토록 다채로운 희열로 채운 책은 지금껏 없었다.”라고 평했다. 『그 구덩이 이야기를 하자면』은 이어 이탈리아의 어린이청소년문학상인 안데르센상,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더 많은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