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기대어서 간다. 안 될 일도 다 잘될 판이다.
너를 사랑하며, 그리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야, 무엇에 그리 골똘하니
함께 펼쳐본 그림책에서 대답이 들렸다
“아빠는 딸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도서 제목인 ‘그림책 생활’의 시작이 되는 질문이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한 고민일 수 있겠으나, 아빠가 아니어도 어른인 이상 응당 누구나 생각해봐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 있다. “어른은 아이와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와 단 5분이라도 함께 대화를 해보았다면 다들 경험했을 당황스러움이 있다. 분명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의 말 또는 나의 말이 서로에게 제대로 가 닿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 아이 특유의 엉뚱한 표현과 창의적인 사용 방식들 때문이다. 분명 모든 어른은 아이 시절을 지나왔을 터인데,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보자니 너무도 요원한 기억이다.
다만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이기에 어른이 아이와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제법 큰 문제다. 이해하지 못하면 아껴주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알 수 없다. 요즘 들어 더 자주 들려오는 어린이와 관련된 사건 사고 뉴스들, ‘어린 이’를 낮잡아 부르는 폭력적인 언어들, 더 나아가 ‘노키즈존’처럼 그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공간들은 모두 어른인 우리가 공감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음에서 말미암는다.
이럴 때『그림책 생활』저자 서효인 시인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그림책을 읽으면 된다”며 우리 모두에게 그림책을 좀더 적극적으로 찾아 읽는 ‘그림책 생활’을 제안한다. 어른은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그림책 안에 있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그림책을 넘기다보면
손가락 끝에서 심장까지 전달되는 고요한 다정함
일반도서와 달리 그림책은 기호와 문자를 우선으로 삼지 않는다. 글을 읽지 못할 연령대를 대상으로 삼기에 책은 때로 ‘말’ 없이도 전개된다. 아마도 우리가 난생처음 스스로 집어들고 읽을 책일 그림책은 이토록 고요하다.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고요할 것. 말과 글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할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적게나마 소란함과 성급합을 품고 있다. 다만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사랑하려 할 때 조급함은 독이 된다. 반면 그림은 보는 사람이 다가와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 먼저 나서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읽고자 하는 이가 오면 그제야 그의 눈동자에 가득 담기며 조곤조곤 속살거릴 뿐이다.
그 침묵하는 다정함을 배워야 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가 아닌 어른일지도 모른다. 『그림책 생활』속 저자는 “긴 시간 문자를 다루는 일을 해왔는데, 시를 쓰고 글을 편집했는데, 아이의 언어 앞에서 무너지기 일쑤”라고 고백한다. “계속 듣고 싶어했”으며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넘겨본 그림책은 ‘아이는 강물처럼 말한다’는 사실과 ‘모두가 실수로부터 시작한다’는 격려, ‘상상하며 유추해봐도 좋다’는 조언을 언제나처럼 조용히 가르쳐준다.
그런데 이 다정함은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봐야만 느낄 수 있다. 그림책의 내용을 전해 듣는다고, 소개문을 읽는다고 알 수 없다. 그림과 주제, 대상에 맞춰 세심하게 골라진 종이의 사각거림을 직접 손끝으로 만져보아야 책의 다정함이 심장까지 전달되며, 그 책을 읽기 전과 후의 우리가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순간에 일어나는 평범한 기적
그런 평범한 시간들이 끝나지 않기를
『그림책 생활』은 1부 ‘너를 사랑하다’, 2부 ‘사랑을 배우다’로 나뉘어 있다. ‘너’가 저자의 두 아이를 가리키듯, 1부에서는 가족과 저자의 애틋한 그림책 생활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그들 마음에 더 잘 가닿기 위한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다. 그 안에 담긴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은 덤이다. 2부 ‘사랑을 배우다’에서는 저자의 아이들보다 더 확장된 이야기로, 아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기 위한 그림책 이야기가 담겨 있다.
뛰어난 예술이 현실을 재현하며 삶을 일으키듯 그림책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어른이 되게 하는 데 그림책은 ‘책’으로서의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윤가은 영화감독의 추천사처럼 “‘그림책 생활’은 이렇듯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쑥쑥 자라나게 만든다.”
누군가의 마음이 자라는 그 “평범한 기적”은 그림책을 넘기는 그 “평범한 순간”에 일어난다. 저자의 말처럼 모두에게 “그런 평범한 시간들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