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선 비껴간 시선으로 다른 것을 찾듯이 다른 시선으로 사소한 것을 바라보는 일은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_「이방인_다른 시선」
작가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유럽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거치며 그가 이방인으로서 다른 시각을 지녔다는 사실이 그의 일과 삶에 톡톡 튀는 창의력과 재치를 불어넣어주었음을 고백한다. 특별한 시각이 지닌 힘은 일상에서 발휘된다. 작가는 서핑과 담배의 발명에 대한 아이의 질문을 통해, 아버지로서 아이의 궁금증에 답하는 것과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일이 결코 유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멋진 범퍼카를 고르려는 아이의 고집을 통해서는 개인의 취향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를 이룬다는 사실을 통찰하며, 육각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감는 기발함에서는 친근한 일상의 재치를 포착한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금지되었던 학창시절과 수학여행에서 필름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은 (그러나 한 장도 남기지 못한) 일을 돌아보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흰 종이에 담긴 아버지의 가르침과 여전히 건재한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아버지와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게임과 오랜 장인 정신이 깃든 장난감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또한 색의 상대성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 세상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볼트를 통해 작은 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돌아본다. 자동차의 아름다운 선을 통해 형태보다 기능에 집중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음을, 비행기를 통해 발명에 얽힌 슬픈 역사를 되새긴다. 기차에서 배운 고독을 떠올리는가 하면, 전기차와 같은 최신 기술만 좇느라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네트워크를 끊어버리고 좌표를 잃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래된 것과 단순한 것, 그리고 꾀부릴 줄 모르는 우직함을 찬미한다.
책 속으로
나도 어릴 때 아버지가 뽀빠이처럼 보였던 적이 있다. 내 아이의 팽이처럼,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작은 물건이 사라지는 일은 내 어린 시절에도 허다했다. 한번은 작은 레고 조각이 소파 밑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아버지가 기다란 나무 작대기 한쪽에 테이프 끈끈이가 노출되게 반대 면으로 감아서 소파 밑에 있던 그 작은 조각을 찾아냈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아버지의 소소한 맥가이버 정신은 ‘아빠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물건을 어린 나보다 키가 컸던 부모님이 집어주는 순간, 그럴 때 경외심과 같은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 _「브리콜뢰르_발상의 전환」
나는 결국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던 낙서를 매일,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받고 하고 있다. 내가 종이에 낙서처럼 끄적댄 조그마한 그림 한 장이 최소 3~4년 동안 2만 명가량의 엔지니어를 움직이게 한다. 공장에선 수많은 직원이 내가 그린 그림을 실체로 만들기 위해 나사와 볼트를 맞춰가며 애쓴다. 돼먹지 못한 왼손잡이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이 이내 자동차가 되어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것도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에서 말이다. 그렇게 연필은 어른들이 원했던 판검사가 되는 길 대신 다른 희망의 길을 그려내는 도구가 되었다. _「연필_쓰는 일 말고 그리는 일」
넓은 종이 위에 단 몇 개의 선만으로도 내가 그리고자 하는 바가 확연히 보여야 하고, 선 위에 색이 입혀질 때는 밝은 부분은 밝은 대로 남아 있어야 내 생각을 옳게 말하는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선은 바로 경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실제의 사물은 선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지 않다. 색으로 인해 분리되거나 원경과 근경을 통해 앞과 뒤를 구분한다. 즉 선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물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드러낸다. 특징적인 부분은 보다 짙고 굵은 선으로 강조된다. 경계를 더 명확하게 인식시키고 특징을 강조하려 선을 긋는 것인데, 주변에 잡다한 선들이 함께 존재한다면 무엇이 주제인지 식별이 불가능해진다. _「종이_태극기 펄럭이며」
인생은 선택의 자취라고 하지 않던가? 최선을 다해 선택한 사소한 순간들. 그 선택의 순간을 이으면 그게 인생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저 내 손가락이 가장 편하게 누를 수 있는 좌측 상단의 버튼을 매번 눌렀다. 당연히 매일 같은 커피가 나왔다.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자판기 앞에서 단 하나의 점밖에 찍지 못했다. 자판기에 붙은 수많은 이름 속에서 매번 다른 커피를 선택했던 친구들은 나보다 다양한 점을 찍었다. 그들의 점을 이은 선은 나의 선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졌으리라는 깨침을 얻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건조하게 지나갔다. _「커피_오늘을 살다」
규칙적 덜컹거림과 커다란 차창의 풍경은 반복되지 않는 슬라이드쇼와 같다. 낯선 풍경이라 해도 불안하지 않고, 명상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창 밖 풍경은 숲이 되기도 했다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되기도 한다. 저만치 떨어져 앉아 있는 다른 승객이 나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간이역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사라진다. 그 순간 또다른 종류의 고독이 스쳐간다. 또 가끔은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만치 을씨년스러운 동네를 지나기도 한다. 이 다양한 창밖의 그림들은 사연도 모른 채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페이지를 연거푸 넘긴다 _「기차_고독한 공간」
여전히 전기차가 진정한 답인지에 대해 말이 많다. 함부로 얘기하기엔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전기차에 쓰이는 재료가 가져올 다른 환경 문제들, 즉 수명을 다해 폐기될 거대한 차량용 배터리가 일으킬 또다른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의문을 제기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회피하고 있다. 또 차량 충전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환경에 다른 해가 될 수 있는 불가피한 솔루션이 등장할 수도 있다. 누구도 그 답을 찾아 염려하기보다는 새로운 전기차 시장을 자신들의 것으로 더 가득 채우려는 내일을 향한 목표 달성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_「전기차_상실의 내일」
문득 지난 것들을 돌아보면 발전과 유행을 계속해서 좇아야 하는 소모적인 세태에 대한 피로감이 밀려온다. 전진하는 대신 뒤를 돌아 그때의 기억을 더듬고 그때 듣지 못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비록 느리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느리게 작동할 것들의 진득함에 기특함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실패와 좌절을 통해 많은 것을 염세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면 오래전 내린 청춘의 결정은 용기 있고 신속했기 때문에 특별하고 완벽한 형태의 기억으로 소환된다. 한 살이라도 더 어렸던 시절, 무신경하게 수용했던 모든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일반적으로 과거를 달콤하게 추억하는 원리다. _「시계_ 이야기가 담긴 옛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