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찬장이 궁금한데요, 잠깐 봐도 될까요?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는 그릇을 찾기 위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찾아 헤맨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우리 집 찬장을 채우다 보면 남의 집 찬장 안엔 어떤 그릇이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찬장 안의 그릇은 옷이나 가방처럼 입거나 들고 다니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야말로 내밀한 취향을 숨겨놓은 곳이, 살림하는 여자, 요리하는 남자의 찬장이 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대부분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찬장 깊숙한 곳에 소중히 간직해온 그릇을 아낌없이 꺼내 식탁을 차리게 마련이다. 그런 자리는 가족이나 지인이 아니고서야 함께하기 어렵다.
‘남의 집 찬장’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남의 집 찬장 구경이 그토록 흥미롭고 즐거운 이유는.
『남의 집 찬장 구경』의 두 지은이, 잡지 에디터 장민과 도예가 주윤경도 늘 남의 집 찬장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눈길이 가거나 탐나는 그릇을 볼 때마다 그 주인에게 찬장을 통째로 보여 달라고 부탁하며, 신나게 남의 집 찬장 구경을 다녔다. 책에는 그렇게 만난 열 명의 찬장이 소개돼 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겹치는 그릇도 취향도 없을 정도로 제각기 개성이 넘친다.
만난 사람들의 면면도 가지각색이다. 유치원 교사를 하던 전업주부부터 집밥을 맛보고 배울 수 있는 ‘호호당’을 운영하는 요리사, 요리가 취미인 사업가, 영화 미술감독, 공간 데코레이터, 다루기 까다로운 백자로 차제구를 만드는 도예가, 사용할 그릇을 직접 빚고 굽는 카페 주인, 빈티지를 사랑하는 작가, 결혼 몇 년 만에 작업실에 첫 살림을 낸 사진가, 레스토랑 오너 셰프 등등.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사실 이들의 찬장은 그저 살림하고, 요리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수나 종류가 보통 가정집과는 다르지 않겠냐는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수집가가 아니어도 이미 대다수의 주부들은 수집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당장 내 어머니의 찬장만 떠올려봐도, 언제 이렇게 많이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릇이 넘쳐나지 않던가. 그중 애지중지 아끼는 그릇을 드디어 장만하던 순간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려보면, 따끈하고 말간 국 한 사발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온기가 퍼져나갈 것이다. 그 따뜻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지은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찬장’ 하면 떠오르는 우리의 엄마들, 김부자, 이승일 두 분께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사를 보낸다. ‘꽃가라’ 도자기와 레이스 일색인 김부자의 찬장이 없었다면, 도무지 짝 맞는 그릇을 찾을 수 없어 억지로 믹스매치를 해야 하는 이승일의 부엌이 없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보다 훨씬 심심하고 밋밋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찬장을 정돈하고 그 안에 반짝반짝한 이야기들을 채워 넣는 한국의 살림꾼 엄마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_서문 중에서
그릇 이야기, 테이블 세팅, 쇼핑 팁까지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도자기가 황금만큼 귀하던 시절에는 할머니의 찬장에서 엄마의 부엌으로, 딸의 드레서로 그릇이 흘러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유럽에서는 요즘도 특별한 날에 그릇을 선물하곤 한다. 뜨거운 불을 견뎌야 완성되는 자기처럼, 받는 이를 위한 ‘염원’을 그릇에 담아 선사하는 것이다.
책에는 그처럼 소중하지만, 깨지기 쉬운 그릇들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이어진다. 찬장 구경을 하는 사이사이 이왕이면 보기 좋게 수납하는 법, 마트에서 그릇 구입할 때 참고하면 좋은 팁(기본 식기는 넉넉하게, 유리 제품과 아이들을 위한 식기는 다양하게 디자인이 독특한 단품은 세일 기간에 구매 등), 한국도자기 아울렛, 남대문 그릇도매상가 등 여러 숍을 소개하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일일 도예 체험 프로그램 등 실용적인 정보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가 하면 백자를 프리즘 삼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까지 도자기가 걸어온 스펙터클한 모험담을 일별하게 해주기도 한다.
도예가가 참여한 책답게 그릇을 구입할 때 꼭 살펴봐야 하는 디테일한 정보도 빼놓지 않았다. 예를 들어, 찻잔을 구입할 때에는 몇 가지 꼭 살펴봐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유명 브랜드의 제품 중 완성도가 떨어지는 비품에는 바닥 로고에 흠집을 낸다는 것을 알아두자. 정품치고 가격이 너무 싸다면 바닥의 로고가 온전한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또 찻잔이나 주전자는 몸통에 손잡이나 주둥이를 붙여 만들기 때문에 구입할 때 이음새를 잘 확인하고, 사용할 때에도 늘 주의해 다뤄야 한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오너 셰프 김세환의 레스토랑 테이블 세팅을 세심하게 관찰해 저자들이 알려주는 팁들도 재미있다.
“이누팬의 스타일링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집 식탁 꾸미기에 당장 활용해보고 싶은 팁들이 종종 보인다. 우선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그릇을 사용하지만, 물컵과 커트러리는 같은 것을 사용한다. 테이블마다 컵 디자인이 다를지언정, 하나의 테이블에는 한 종류의 컵과 커트러리를 놓아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식탁을 정돈해주는 것이다. 메인 디시를 하얀 그릇에 서브할 때는 각자 덜어먹는 작은 접시를 알록달록한 것으로 골라 식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밑반찬이 많이 딸린 강된장 비빔밥이나 치킨 데리야키 덮밥 등은 반찬 그릇의 높낮이를 다르게 해 리듬감을 준다.”
_본문 중에서
마지막으로, 믹스 앤드 매치, 흑과 백, 커피와 차, 아이를 위한 식탁놀이, 빈티지 등 다채로운 테마로 꾸며놓은 테이블 스타일링 화보도 마련했다. 잘 꾸며진 이들 화보를 보면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우리 집 찬장 속 보물들을 꺼내 ‘나만의 식탁’을 차리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