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다시 묻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가장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목에서 끝나는 이야기들, 『계속 열리는 믿음』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정영효의 첫 시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로 상상력을 끌어와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정영효는 51편의 시에서 현실의 공간을 자신만의 구조로 다시 직조하며 이설의 이야기들을 불러온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김나영 문학평론가가 “들려주는 말보다 들려주지 못한 말을 더 많이 남기는 이야기”라고 한 것처럼 정영효의 시들은 다 말해지지 못한 나머지의 것들을 가리킨다. 정영효의 시를 통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대상의 한쪽을 선택해 완결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제목 바깥에 존재하는 가능태의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려는 시인의 태도이다.
확신할수록 멀어지는 게 있었다 과거에 대한 일인지 내가 아닌 것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 생각이라도 하자며 걷는 동안 그런 궁금증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적당히 어울리는 말을 찾으려고 했다 그냥 기분이라 해버려도 될 걸, 매끄럽게 닳은 테처럼 더 근사한 것을 얻기 위해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비가 올 듯이
가만히 있으면 방해가 될 것 같은 불빛에 섞여 가로수가 흔들리고 입간판이 흔들리고 외투가 흔들렸다
―「우상들」 부분
정영효 시의 화자들은 현실의 한 공간에 시선을 던진다. 시선이 가닿은 현실은 고정된 배경으로 멈추지만, 화자는 그것에 대해 쉽게 확신하는 말을 붙이기를 주저한다. 화자가 “적당히 어울리는 말”을 붙일 때 대상은 주체의 방식으로 재단되고 실재와 “점점 멀어지”며 간격을 벌리기 때문이다. 이는 대상과 화자 사이의 간격일 뿐만이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읽는 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격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선택에 포함되지 않은 대상의 다른 고유한 것들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그의 제목은 어떤 표지로 기능하기보다는 미처 하지 못한 말, 일종의 보유 지점으로서 시의 본문과 동등한 위치에 놓인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완결된 형식을 취할 수 있는가를 되묻는 암호에 가깝다. (……) 그의 시가 경계하는 겻 중에 하나는 성급하게 내리는 결론이고, 그 경계심은 시를 구성하는 일에 철저하게 쓰인다.
―김나영 해설, 「나를 벗어나는 차원의 이야기」부분
그러나 시인은 완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단순히 결핍이나 불가능으로 답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결론짓는 것조차 “정해진 문답”(「이름들」)처럼 그 나머지를 제외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는 독자는 잡히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에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김나영 해설가의 말을 빌리면 정영효에게 있어 “제목”은 완결에 대한 질문 그 자체이므로, 그 미끄러짐은 당연한 지점이다.
방안에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복잡했다 사라져서 남은 곳이면서 생기자마자 사라진 곳이었다
수많은 이야기를 계획하며 주변을 세워봤지만 무엇도 분명해지지 않는 구조로부터
유일하게 만들어진 구조는 방을 바라보는 나뿐이었고 유일하게 일어나는 사건은 나를 뺀 공간뿐이었다
상대가 나타났으면 좋을 법한 장면에서도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했다
―「우연의 방」부분
계속되는 의구 끝에 화자가 도달한 곳은 현실의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자신의 내면의 공간이다. 정영효는 대상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한 축, “상대”라는 타자성에 자신의 다른 얼굴들을 놓는다. 여기서 나의 “방을 바라보는 나”라는 관객의 자리가 마련되고, 주체는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으로 바뀐다. 화자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대상에 “적당히 어울리는 말”뿐이 아니라 그 말을 내뱉고 싶어하는 자신이기도 하다.
남았으나 모자란 것들이 늘어나서 불에 태우기로 작심했다 단지 그것들을 제목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불속에 모든 기대들을 먼저 밀어넣었고, 알게 된 것과 마지막으로 이해한 게 달라져도 비슷한 윤곽이 겹쳐질 때마다 던져버렸다
(……)
흔했던 불길이 차츰 흔적으로 돌아왔을 때 거짓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는 내가 있었다 남았으나 모자란 것들이 많아서 보여주고 싶은 게 채워지지 않았다
―「제목에서 끝나는」부분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내면의 공간은 그 자체로 “남았으나 모자란 것들”이며 “흔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주체에게 “제목에서 끝나는” 형식의 질문들은 시가 본래 닿아야 하는 자리로 남는다.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평범해지고 비슷해졌던 나의 타자성을 짐작하는 자리, 채워지지 않는 수많은 믿음의 자리, 시의 자리.
이렇게 정영효의 시들은 현실에서 내면의 공간으로, 완결된 이야기에서 나머지의 이야기로 부단히 움직인다. 그리하여 “제목에서 끝나는” 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제목 속에 내재된 잠정태들의 야기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끝에서 다른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예외 없이 주저하다 예외 없는 암묵에 동의했다 여기서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반대로 다시 묻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가장 가까워지고 있었다
―「같은 질문들」부분
“여기서 꼭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라는 물음은 대상에서 하나의 요소만을 강조함으로써 나머지의 것들을 배제시키는 척도에 대한 질문이다. 정영효의 시들은 제목과 본문 사이의 경계 지점에서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제외된 이야기들이라는 “다른 쪽”을 가지게 된다. 다른 쪽을 가지려는 이 부단한 태도에서 채워지지 않던 대상과의 거리감은 “열림”이라는 정영효만의 도착지로 안내할 것이다.
● 책 속에서
이름들
내가 받은 첫번째 친절은
열두 마리 짐승 중 한 놈과 생일을 엮어 만든 계획
작명은 태내의 이후를 찾아 출생에 보태는 것이지만
간혹 내 이름을 불러보면
먼 소식이 풀리지 않는 사주를 차려놓는다
그렇게 하고, 해야 한다는 식의 믿음
또는 다짐이 나와 다르게 흐르고
문틈에 낀 밤의 외막 같은
몰래 다가오던 적요가 출입을 들킨다
이름이 가진 줄거리는 계속되는 이설
그걸 채우고 죽은 사람은 자신의 명(命)을 탐독했을까
남의 이름을 외울 때 뇌압에 귀가 멍하곤 하다
글자에 묻은 음색의 취향과 얼굴을 함께 떠올리면
인연을 데려온 이력이 궁금하고
낯선 공명이 관계를 꺼낸 채 탁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알아야 해서 곧 숨겨버리는 망각
이름이 처음 만나 베푸는 예의라면
기억하기 힘든 이들은
전래가 어긋난 속계(俗界)를 지닌 걸까
정해진 문답으로 인사하는 순간마다
내 육성을 의구하므로
이름은 나를 훔치기 위한 혐의인지
자주, 잊힌 이름들의 주기가 돌아온다
우연의 방
방안에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복잡했다 사라져서 남은 곳이면서 생기자마자 사라진 곳이었다
수많은 이야기를 계획하며 주변을 세워봤지만 무엇도 분명해지지 않는 구조로부터
유일하게 만들어진 구조는 방을 바라보는 나뿐이었고 유일하게 일어나는 사건은 나를 뺀 공간뿐이었다
상대가 나타났으면 좋을 법한 장면에서도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했다
밖에서는 구름이 흐르고 날씨가 변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구름과 날씨만 그곳으로 옮겨졌다 오랫동안 고민을 쥔 사람처럼
생각이 조금 늦게 떠올랐다 과거를 눌러쓴 그림자가 지나는 듯 실상은 없으나 소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가 마주한 구조를 향해
쉽게 말을 꺼내면 거짓으로 흐트러질까봐 익숙해지는 것을 자꾸 멈추었다
방안에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구조는 혼자 있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벽들이 그 사실을 이어주고 있었다
● 시인의 말
우연히 얻게 된 자루를 함부로 다뤘다.
뭐든지 빨아들이는 그 속을 채울 줄 알았으나
의심이 두려워 자루를 묶어버렸다.
다시 고민은 시작되었다.
2014년 겨울
정영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