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신에 관한 열두 가지 입장
- 저자
- 이종성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4-06-30
- 사양
- 376쪽 | 152*217 | 무선
- ISBN
- 978-89-6735-120-5
- 분야
- 철학/심리/종교, 교양
- 정가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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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3000년 역사에서 "믿음"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신"에 대한 철학 유파의 12지 입장 일목요연 제시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아홉 번째 책 출간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믿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의 언어가 거짓 없이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거짓 없는 진실성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중국철학사의 전개에서 제자백가 중 유가는 믿음을 구체적인 도덕적 덕목의 하나로 상정하여 그에 대한 고유한 특성을 부각시켰다. 유가에 의해서 믿음은 어짊과 의로움, 예의, 지혜와 더불어 인간이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오륜과 오상의 하나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믿음의 덕목은 마치 유가에게 전유된 도덕 덕목을 가리키는 것인 양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가 자신의 학파적 입장에서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믿음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다양한 믿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믿음의 양상을 열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의상 12라는 숫자가 동양적 사유를 반영할 수 있는 수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분류 틀을 상정해본 것이다. 그것은 『예기』의 월령 사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고, 1년이 12개월로 구성된다는 역수 사상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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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여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충남대학교 철학과에서 동ㆍ서양철학을 균형 있게 배웠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였다. 효촌 신동호 선생님의 문하에서 장자 철학 관련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부터 현재까지 충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동서철학회, 율곡학회,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의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여기에서 발행되는 학술지를 모두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지로 선정시켰다.
지은 책으로 『도가철학의 문제들』이 있고, 『위진현학』 『21세기의 동양철학』 『노장철학연구의 현주소』 등 20여 권의 공저와 .『노자』 제25장의 존재론적 검토」 「장자의 소대지변에 관한 지식론적 고찰」 등 70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학문적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동아시아 철학사상의 특징과 제 학파의 상호 소통의 접점에 관심을 갖고 씨름하고 있으며, 주로 노장철학, 제자백가, 위진현학, 한국 도가철학의 연구에 주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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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 믿음에게 말을 걸다
1장 풀이하는 글
1. 그 사람을 가졌는가?
2. "신信"의 사전적 정의
3.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믿음의 역설
4. 믿음의 적 또는 의심과 선입견
5. 역사 속 믿음의 해석과 변천
6. 믿음의 현재적 소환
2장 원전과 함께 읽는 "믿음"
01단계 남산의 은유 또는 믿음의 이미지 / 『시경』
02단계 믿음을 통한 정치와 도덕의 결합 / 『서경』
03단계 변화의 원리에 대한 믿음 / 『주역』
04단계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의 조건 / 『춘추좌전』
05단계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 / 『논어』 『맹자』
06단계 예치의 믿음과 천년왕국의 꿈 / 『순자』
07단계 겸애와 정령에 대한 믿음 / 『묵자』
08단계 믿음의 역설, 진정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 『노자』 『장자』
09단계 법치와 현실적 실천에 대한 믿음 / 상앙, 한비
10단계 오행론적 믿음의 발견 / 여불위, 동중서
11단계 성리학적 본성과 믿음의 합일 / 한유, 정이, 주희
12단계 양지론적 마음과 믿음의 소통 / 육구연, 왕수인
3장 원문
더 참고하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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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신信’에 대한 철학 유파의 12지 입장 일목요연 제시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아홉 번째 책 출간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믿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의 언어가 거짓 없이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거짓 없는 진실성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중국철학사의 전개에서 제자백가 중 유가는 믿음을 구체적인 도덕적 덕목의 하나로 상정하여 그에 대한 고유한 특성을 부각시켰다. 유가에 의해서 믿음은 어짊과 의로움, 예의, 지혜와 더불어 인간이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오륜과 오상의 하나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믿음의 덕목은 마치 유가에게 전유된 도덕 덕목을 가리키는 것인 양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가 자신의 학파적 입장에서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믿음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다양한 믿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믿음의 양상을 열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의상 12라는 숫자가 동양적 사유를 반영할 수 있는 수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분류 틀을 상정해본 것이다. 그것은 『예기』의 월령 사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고, 1년이 12개월로 구성된다는 역수 사상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다만, 공자 이전의 시대적 배경을 다룬 『시경』 『서경』 『주역』 등은 독립적인 믿음의 특징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상호 텍스트성 때문에 중복되는 믿음의 용례도 많다.
‘이틀 밤을 묵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제1단계는 『시경』에 나타난 믿음의 양상이다. 『시경』에서는 ‘신’의 의미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녀 간의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틀 밤을 묵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경』에 나타난 믿음의 가장 독특한 의미는 무엇보다 시어를 통한 상징과 은유의 이미지화에 있다. 단 두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시경』은 남산이라는 공간적 이미지를 전면으로 띄워 올린다. 남산은 군자의 상징이며, 군주의 상징이다. 그것은 남성적인 우뚝함이며,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산이라서 높은 존재이며, 더욱이 남산이라서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올라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남산과 같은 군주는 늠름할 뿐 아니라 믿음을 갖춘 존재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시경』의 노래는 남산을 통해 남성다운 지도자의 믿음을 형상화 해낸 특징이 있다. 『시경』에 표현된 ‘인늠름한 젊은이의 듬직함을 일컫던 말인 것처럼, ‘신’ 또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경』은 ‘인’의 관대하고 너그러운 특성이 ‘신’의 미더움을 통해 구체화되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시경』은 믿음을 가로막는 거짓말에 대해 경계한다. 특히 신하들이 군주에게 하는 거짓말은 문제가 많을 뿐만 아니라, 늘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거짓말을 가리켜 ‘참언’이라고 한다. 참언이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정말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는 거짓말의 일종이다. 군주가 이런 참언을 믿고 정치를 수행한다면 나라엔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시경』은 쉬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참언으로 비유하여, 이를 경계하기를 잊지 않는다.
‘정치적 권능’ 및 ‘도덕주의’와 결합하기 시작
제2단계는 믿음의 정치적 권능과 도덕주의적 성향이 결합되기 시작한 『서경』의 경우다. 『서경』에 나타난 믿음의 용례는 주로 군주의 명령어로서 등장한다. 이때의 믿음은 군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며, 불신은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경』은 군주의 권력이 하늘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늘에 대한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하늘에 대한 믿음은 길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하늘에 대한 불신은 흉한 결과를 초래한다. 『서경』에는 정치적 천명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경』의 정치적 천명사상은 점차 도덕적 천명사상으로 전환되는 특징을 띤다. 이러한 천명사상의 변화는 믿음의 범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전의 정치적 복종의 강요와도 같았던 믿음의 의미는 점차 하늘의 도덕적 원리를 밝히고 깨닫는 것으로 전환된다. 외재적 하늘에 대한 믿음을 내면화하여 하늘을 인간의 존재 근거로 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훗날 성리학의 첨예한 논쟁의 근거가 되는 ‘도심’과 ‘인심’의 개념이 『서경』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도덕화를 지향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경』으로부터 믿음의 내면적 도덕화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믿음에 대하여
제3단계는 변화의 원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현실의 난관을 돌파한다는 『주역』의 입장이다. 『주역』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데 대한 믿음을 종용한다. 현상적 존재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주역』의 정신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 없지 않지만, 현상적 존재에 관한 한 변화의 도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면적으로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믿음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주역』은 믿음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가 반드시 정합적으로 일치하진 않는다고 한다. 언어의 한계가 믿음을 배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역』 역시 지도자의 믿음을 강조한다. 지도자의 믿음이 가슴 가득 진실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를 뿐만 아니라 새끼 돼지나 물고기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길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지도자의 믿음이 세상을 소통시키며, 평화롭게 안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춘추’를 통해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 사례 살피다
제4단계는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춘추』의 경우다. 『춘추』는 일반적으로 충신효자를 높이고 난신적자를 비판하는 춘추 시대의 정신에 입각하여 기록된 역사서다. 맹자는 『춘추』를 공자가 산삭했다고 보았고,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춘추』에 나타난 믿음의 용례는 대부분 국가 사이에 관한 것이다. 춘추 시대에는 국가 간의 전쟁이 빈발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례인 피의 혈맹의식이 자주 행해졌다.
이것을 맹약이라고 한다. 맹약은 국가 간 또는 제후들 사이에 서로 믿음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믿음과 예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예는 덕의 한 가지 절목에 해당된다. 만일 덕의 결여나 예를 어긴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맹약이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맹약은 상호 간의 예와 덕이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춘추』는 국가 간의 신뢰를 중시하여, 믿음을 지킨 경우와 믿음을 배반한 경우를 자세히 소개하여 역사의 거울로 삼고 있다. 한편, 국가 간의 맹약을 거행할 때에는 반드시 하늘과 신의 권위에 의지하여 서로 간의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래서 『춘추』에서는 신(상제, 또는 천제)에게 진실한 것을 믿음이라고 했고, 동시에 축사가 올바른 말로 거짓 없이 신에게 고하는 말 또한 믿음이라고 했다. 물론 당대의 축사들이 허위로 신에게 고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신에 대한 믿음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믿음은 여전히 신과 함께하는 중요한 덕목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공맹,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
제5단계는 공자와 맹자에 의한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다. 공자는 마음속의 충성스러움의 덕목과 믿음을 병칭하여 거론하곤 했다. 주희는 공자가 말한 ‘충신’을 규정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성이요, 성실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설명했듯이, 믿음은 내면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행해지는 성실함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공자에 이르면 믿음은 이제 인간의 내면적 덕성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공자 이전의 믿음이 주로 강제적인 힘의 권능과 함께 행사된 측면이 강했다면, 공자에게 와서는 믿음의 내면화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공자는 믿음을 친구들 사이의 사귐에서 제일의 덕목이라고 보기 시작한다. 이전 시대보다 수평적 믿음의 의의가 더 강조된 것이다. 물론 공자에게서도 믿음이 친구관계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군주와 신하, 군주와 백성 사이에도 믿음은 필요하다. 공자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믿음이 없으면 설 수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다름 아닌 믿음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말이 끄는 작은 수레의 멍에막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어짊·의로움·예의·지혜의 네 덕목과 함께 믿음을 오륜의 범주로 규정한 독자적인 특징이 있다. 즉,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고, 군신 간에는 의리가 있으며,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장유 간에는 차례가 있으며, 붕우 간에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믿음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덕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맹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삼은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군신 상하 간의 믿음은 필수적인 전제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천년왕국’의 도구로 믿음을 주목한 순자
제6단계는 예치에 대한 믿음과 천년왕국의 꿈을 믿은 순자의 경우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창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본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라서 인간의 후천적 계도를 받아 선한 것으로 순치되어야 할 대상이다. 순자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만일 악한 본성을 믿고 따른다면 그는 소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 선에 대한 믿음과 예에 대한 믿음을 좇는다면 그는 군자이며 성실한 선비라 할 수 있다. 성실한 선비가 하는 일상의 말들에는 믿음이 있지만, 소인의 말에는 믿음이 없다고 한다. 순자는 당대에 활동한 열두 명의 제자백가를 소인으로 지목하여 비판한다. 이들의 말과 논리에는 의혹만 있을 뿐 믿음이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순자는 믿음의 의미를 규정하여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 의심스러운 것을 의심하는 것 또한 믿음이다”라고 말한다.
순자는 유가적 정명론의 논리 위에서 자기 스스로는 옳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틀린 판단의 종류인 논리적 오류에 대해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순자의 믿음관은 그의 정치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가 현실적인 패도정치를 인정하긴 했지만 최고의 이상으로 삼은 것은 맹자와 같은 왕도정치였다. 왕도의 구현에 앞장서는 위정자는 예의를 높이고 현명한 사람을 받드는 반면, 패도의 구현에 힘쓰는 위정자는 힘의 질서를 믿고 믿음을 소중히 여긴다고 본다. 요컨대, 순자는 힘에 대한 믿음보다는 예의를 더 높게 숭상했다고 볼 수 있다. 순자는 물론 예의에 대한 보편적 믿음에 관심을 갖는다. 예의를 믿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면, 그 나라는 천년 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두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천년왕국설이 순자에 의해 제창된다. 순자는 천년의 믿음을 꿈꾼 것이다.
묵자, 겸애와 정령에 대한 믿음
제7단계는 겸애와 정령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 묵자다. 묵자는 공자의 어짊을 비판하면서 겸애주의를 제창한 철학자다. 이런 그에게서 믿음의 주체는 겸애를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인, 즉 ‘겸사; 그는 차별적인 사랑을 주장하는 ‘별사 근본적으로 다른 지향성을 갖는 주체다. 묵자의 말에 의거할 때, 겸사는 다른 사람의 몸을 마치 내 몸처럼 사랑하는 자이며, 다른 사람의 가문을 내 가문처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는 이다. 겸사는 겸애를 믿고,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굳은 실천력을 소유한 지식인이다. 묵자는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여 정치에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대상은 당연히 겸사일 뿐이다. 그런데 묵자는 당대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게 된 주원인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고 보면서, 그 근원을 하늘에 대한 불신에서 찾는다. 하늘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사라지다보니 사람에 대한 사랑도 사라져버렸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에 묵자는 하늘에 대한 믿음을 복권시켜야 함을 강조하는데, 그 하늘은 정령적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하늘은 일종의 귀신과 같다. 그 정령적 성격을 띤 하늘과 귀신이 인간의 화복을 주관하고, 재앙과 상서로운 응보를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귀신에 대한 존재 증명을 시도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묵자의 귀신 존재 증명은 말도 터무니 없어 보이지만, 묵자는 당시의 경험주의적 인식의 토대 위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묵자가 귀신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통해 귀신의 존재를 믿음의 대상으로 상정하고자 한 이유는 종교적 측면에서의 의의를 확보하려기보다는 겸애를 구현하고자 한 공리주의적 윤리를 완성하는 데 있었다.
일상적 믿음을 부정한 노자와 장자
제8단계는 일상적 믿음을 부정한 노자와 장자의 경우다. 이들은 “진정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라는 역설적 믿음관을 제시한다. 노자는 유가에서 제시한 어짊과 의로움 및 예의 등이 덕과 믿음의 상실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도가 상실되자 덕이 생겨났고, 덕이 상실되자 어짊이 생겨났으며, 어짊이 상실되자 의로움이 생겨났고, 의로움이 상실되자 예의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만일 노자가 맹자가 든 네 가지 덕이라든가 다섯 가지 윤리적 덕목에 관해 알고 있었다면, 그는 어짊, 의로움, 예의, 지혜, 믿음 순으로 전자의 파괴가 후자의 생성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순서는 일단 예의라는 덕목에서 멈추며, 예의의 상실이 지혜를 생겨나게 하고, 지혜의 상실이 믿음을 생겨나게 했다고는 언급하지 않는다. 도리어 노자에게서는 믿음의 덕목이 예의의 덕목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노자의 믿음관은 현실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무위정치, 인의정치, 법제정치, 공포정치라는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즉, 믿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믿음의 정치가 무위의 정치인 반면, 믿음을 동반한 정치가 인의의 도덕정치이며, 믿음이 상실됨으로써 규범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법제정치이고, 믿음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이 가혹한 공포정치다. 노자의 역설적 믿음관을 계승한 장자 역시 일상적 믿음에 대해 부정적이다. 장자의 시대에 이르면 믿음도 하나의 외물로 변질되어 그 진정성이 의심되었다. 인간의 사회생활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여겨졌던 믿음과 같은 도덕덕목들이 오히려 삶을 구속하는 이념적 기제로 변질된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믿음을 부정한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은 믿음에 상응하는 어떠한 저당물도 잡히지 않는다. 만일 장자에게도 믿음의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중심적인 일체의 자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면서도, 자신은 어떠한 믿음도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일상적 믿음의 부정자인 것이다.
‘이목지신’ 설화가 보여주는 법가의 신 이론
제9단계는 법치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현실적 실천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법가의 철학자들이다. 이 책에서는 상앙과 한비를 예로 들었다. 상앙은 저 유명한 ‘이목지신’ 고사를 남긴 인물이다. 나무를 옮겨놓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한 자신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법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는 고사가 바로 ‘이목지신’이다. 여기에는 위정자가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과 함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이것은 ‘사목지신’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상앙은 특히 유가의 도덕주의적 믿음과 법가의 법치주의적 믿음을 비교하면서, 후자를 통해 전자를 비판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바르게 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법치주의자들은 다른 사람까지 반드시 믿게 할 뿐만 아니라 거역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는 믿음보다 법을 우위에 놓았던 법 지상주의자였다. 법가사상의 종결자로 평가받는 한비 역시 법에 대한 믿음을 중시한다. 그런데 한비는 스승 순자의 성악설을 승계하여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의 성품을 불신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모든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고 본다. 그래서 법을 제정하여 현실 정치를 운용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기심을 적절하게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비가 신상필벌의 믿음을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법의 기준이 주관적이거나 또는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면 국가에 큰 혼란이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 한비는 법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법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비롯한 현실성을 고려하게 된다. 한비가 일체의 탁상공론을 부정하고, 생활세계에서의 점술 기복을 부정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믿음은 어떻게 오행론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는가
제10단계는 믿음을 오행론적으로 이해한 여불위와 동중서다. 이들은 우주와 인간의 상호 유기적인 관계에 주목하고, 오행의 우주론을 인간론에 배속시켰다. 여불위는 하늘과 땅과 인간에게는 제각각 고유한 역할과 특징이 있는데, 하늘은 순응을 의미하고, 땅은 고정을 의미하며, 인간은 믿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늘의 원리와 땅의 법칙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에 미더운 질서가 있듯이 인간도 상호 간에 믿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믿음은 사계절의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도리어 모든 곳에 관여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봄을 봄답게 하고 가을을 가을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봄에 믿음이 없으면 봄의 질서는 파괴되고, 가을에 믿음이 없으면 가을의 질서가 파괴된다. 모든 인간관계에도 믿음이 없으면 그 정상적인 관계가 망가진다. 이러한 사고는 동중서에 이르러 좀 더 구체적인 오행의 질서 안에 편입되어 나타난다. 동중서는 우주론적으로 동서남북의 중앙에 정위한 것이 보면서, 인간론에서 거론되는 믿음 역시 중앙의 토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토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믿음이다. 또한 군주가 만백성을 다스리는 근거이기도 하다. 만일 군주가 토의 믿음을 거역하면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이다.
군주가 토의 믿음을 거역하는 행태로는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는 일, 부모 형제를 공경하지 않는 일, 음란함에 빠져 바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일, 호화로운 사치에 빠지는 일 등이 있다. 이러한 행태들을 통찰
력 있게 반성하고 궁실을 검소하게 하며, 꾸며진 문채를 제거하고 효도와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을 등용하여 백성을 구휼한다면 자연의 질서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오행론에서는 믿음의 덕목이 중앙의 토에 배속되어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3000년 역사에서 "믿음"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신"에 대한 철학 유파의 12지 입장 일목요연 제시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아홉 번째 책 출간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믿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의 언어가 거짓 없이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거짓 없는 진실성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중국철학사의 전개에서 제자백가 중 유가는 믿음을 구체적인 도덕적 덕목의 하나로 상정하여 그에 대한 고유한 특성을 부각시켰다. 유가에 의해서 믿음은 어짊과 의로움, 예의, 지혜와 더불어 인간이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오륜과 오상의 하나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믿음의 덕목은 마치 유가에게 전유된 도덕 덕목을 가리키는 것인 양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가 자신의 학파적 입장에서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믿음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다양한 믿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믿음의 양상을 열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의상 12라는 숫자가 동양적 사유를 반영할 수 있는 수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분류 틀을 상정해본 것이다. 그것은 『예기』의 월령 사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고, 1년이 12개월로 구성된다는 역수 사상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