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대서양을 건넌 한 통의 편지에서
시인과 뮤지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다
2007년 8월 24일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한 통의 편지가 대서양을 건넜다. ‘선생님은 아마도 저를 모르시겠지요’라며 머뭇머뭇 인사를 건네던 스위스 로잔발 편지는, 곧 미국 플로리다의 한 시인에게 닿는다. 그리고 시인은 일주일 뒤, 만나본 적 없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던 이 편지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시 「첫날밤」을 적어 화답했다. ‘그랬었다, 내가 처음 외국에 도착했던/ 삼십 년 전 밤에도 비가 왔었다./ 사정없는 외국의 폭우가 무서워/ 젊은 서글픔들이 오금도 펴보지 못하고/ 어두운 진창 속에 던져 버려졌었다.’ 50년 가까이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살아야 했던 시인 마종기가, 역시 낯선 땅에서 생명공학과 음악 사이를 오가며 홀로 분투하던 뮤지션 루시드폴에게 보낸 첫 편지였다.
그후 2년간 두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대화가 흘렀다. 때로 서로에게만 들리는 독백으로, 처절한 흐느낌으로, 때로 서로를 향한 끝 모를 지지와 응원의 손짓으로 읽히는 대화는 54통의 편지로 남았고,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이후에도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지난 봄부터 1년간 다시 집중적으로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흐르기 시작한 대화의 물길은 여전히 맑고 세찼으며 시간의 더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은 내가 무척 그리워하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사람들
그간의 근황을 풀어놓으며 마종기 시인은 루시드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루시드폴은 무척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그리워하던 스타일의 사람이었다고. 어릴 때부터 시를 써온 의사 시인에게, 대부분의 친구는 한쪽의 사람이었다. 시를 쓰는 사람이거나 의사이거나. 그것이 섞여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같이 드물기만 했다. 그러다 공학, 과학 공부를 한 이가 예술에 대한 주장이 있는, 간단히 얘기하면 르네상스맨 같은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루시드폴 역시 오랜 시간 홀로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지었다. 음악을 이야기하고, 함께할 누군가를 원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주변에는 음악적으로 이방인들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섬처럼 이국의 자기 방에서 매일 밤 그리움과 고독을 기타줄에 옮겼다. 심적으로 극한에 내몰릴 때마다 그를 구원한 것은, 마종기 시인의 시집이었다. 그는 시인의 시를 읽고 노래 가사를 지었고, 그의 시집을 붙들고 혼자라는 ‘고립’의 시간을 넘어섰다. 홀로 묵묵히 만든 노래들로 루시드폴은 점차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시인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들의 편지가 평범한 대화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
서로 다른 대륙의 이쪽과 저쪽에서, 자주 혼자였고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세상의 수많은 관계를 떠올려보게 한다. 그 관계들에는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다. 친구, 선후배, 지인 혹은 연인……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부르는 이름이 어떠하든 마음을 깊숙한 곳까지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또 그와 오랜 시간 함께 가는 것은 그 두 사람 모두 온맘을 기울이는 진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편지를 주고받으며 루시드폴은 시인의 방대한 숲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갔고, 마종기 시인은 뮤지션의 낯선 바다로 힘껏 노를 저어갔다. 처음 상대의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딘 이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고독과 그리움’이라는 공통분모였지만, 둘의 만남을 깊고 오래 지속시킨 힘은 쉬지 않고 노를 저었던, 내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이들의 ‘진심’에 있을 것이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두 사람이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흔치 않은 편지로 읽히는 이유이다.
서로를 진심으로 부르고 화답하는,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메아리 소리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루시드폴의 노래 <걸어가자>) 루시드폴이 공학도의 삶을 내려놓고 음악인의 길을 걷는 동안, 시인은 여전히 아름다운 시를 짓고 새 시집을 발표하는 것 외에도, 의학과 문학, 과학과 예술 사이에 가교를 만들고, 통섭이란 개념을 세우는 데에 힘쓰고 있었다.
온몸으로 삶을 밀어나가는 젊은 뮤지션에게 노시인은, 거센 풍랑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뮤지션은 타국의 시인에게 고국의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로, 또 경계에서 살아온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우정과 존경으로 답한다. 이 두 사람이 나눈 편지의 숱한 행간에는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메아리 소리가 있다. 마음의 문턱을 낮추고, 배려하고 양보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부르고 화답하는 관계의 메아리다. 삶이 계속되는 한, 끊이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메아리가 이렇게 다시 40통의 편지로 모였다. 이 편지들은 삶의 갈림길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마냥 혼자인 듯 생각이 들 때, ‘거기 누구 없냐’고 목소리를 힘껏 내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세상 그 어딘가에는 분명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할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당신의 마종기, 당신의 루시드폴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