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단의 이단아이자 청년 문화의 아이콘, 한한
그가 바라본 바로 오늘의 중국, 중국인
재기발랄한 문장 속에 숨은 날 선 비판의 칼날
중국 청년 문화의 아이콘이자, 청춘 문학을 이끄는 베스트셀러 작가, 한한(韓寒). 거침없는 비판과 조롱의 직설로 온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그의 촌철살인의 문장들을 담아낸 책,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17세 나이에 내놓은 데뷔작 『삼중문三重門』으로 일찍이 밀리언셀러 소설가 반열에 올랐던 한한은, 젊은 세대에 드리운 중국 사회의 그늘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들로 지난 십수년간 당대 중국 청년 세대의 분노와 비애를 대변해왔다. 2000년대 말부터는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날카롭게 표출하며 수억 명에 달하는 중국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최고의 청년 작가가 문학과는 다른 문장, 다른 호흡으로 써내려간 사회비평은 과연 어떤 걸까? 활어처럼 팔딱거리는 재기발랄한 그의 문장들은 일단 폭소 또는 실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 문장들 속에 도사린 서슬 퍼런 비판의 칼날은 이내 읽는 이의 심중을 후벼판다. 중국 사회를 ‘찜쪄먹는’ 불한당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고, 부당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중국인에 대한 애잔함이 샘솟는다. 단합이란 명분으로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정부, 오만함에 찌들어 인민 대중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사회지도층, 권위주의와 허위의식에 물든 권력집단, 비뚤어진 중화주의의 망상에 젖어 외부세계와 자꾸만 충돌하는 중국인 등, 중국 사회에 만연한 온갖 병폐와 부조리를 가감 없이 비판한다.
중국의 88만 원 세대, ‘바링허우’의 고통을 대변하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일어난 중국 폭스콘(Foxconn)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사건을 기억하는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청춘 남녀 노동자 18명이 홀연히 공장 기숙사 등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폰 생산기지에서 일어난 기이한 연쇄 자살 사건’ 정도로 인식된 채 금세 잊혀갔다. 하지만 중국 청년 세대에게 폭스콘이란, 그들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대변하는 이름이었다. 중국의 기성세대가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세대’ ‘고민 없는 세대’로 취급하던 이들 앞에, 사실은 처절한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국 청년 세대의 다른 이름은 ‘바링허우(80後)’다. 1980년대에 태어나 현재 20~30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짊어지고 나아갈 중추적인 세대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들이 당면한 현실은 ‘중추’에게 주어져야 할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 이 책의 지은이이자 바링허우의 대변인인 한한은 이들의 현실을 이렇게 정리한다. “기계적인 노동, 희망 없는 미래, 형편없는 보수.” 일단 직장 구하기부터 녹록지 않고, 구하더라도 충분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며, 돈이 없으니 결혼은 엄두도 내기 힘든 현실.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88만 원 세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 호칭의 배경과 사뭇 닮았다. 반도는 물론 대륙의 젊은이들까지 집어삼킨 이 정체 모를 공포의 기운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한한은 첫 글 「청춘」에서 중국 젊은 세대에 닥친 엄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온 중국 사회를 종횡무진하는 비판의 포문을 연다.
우리 정부가 세계의 정치 무대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치적 협상에서 수완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바로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저렴한 노동력, 바로 당신들이 중국이 가진 승부수이자 GDP의 인질이다. 이것이 중국식 사회주의이건, 아니면 봉건적 자본주의이건 간에, 향후 10년 동안 이들 젊은이들에게는 앞날이 없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본래 심장 속을 흘러야 할 뜨거운 피가 땅 위로 흘러나오게 된 것은. (「청춘」에서)
인민 위에 군림하는 정부, 비뚤어진 민족주의
책의 1부는 한한이 젊은 세대로서 중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목격한 여러 부조리를, 재치 있는 조롱과 풍자의 형식을 빌려 고발하는 글들을 담고 있다. 먼저, 권위주의에 빠져 인민 위에 군림하는 중국 정부에 대해 큰 목소리로 비판한다. 정협 위원으로 임명되어 정부와 유사한 논조로 발언한 청룽(成龍)을 조롱하는 글에서는 중국 정부가 인민에 대해 시행하는 ‘관리’의 부당함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한편 경찰 당국이 호화로운 시설에서 은밀한 향락을 즐기는 사회지도층은 못 본 체하고 1000여 명의 성매매 여성들과 성 매수자들을 잡아가두는 활극을 벌인 데 대해서는 해학 넘치는 조롱으로 정부의 낯뜨거운 전시행정을 비난한다.
어떤 국가, 어떤 행성의 사람들이건 간에 모두 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것은 사상도, 제도도, 문화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상급 기관도 아닌 합리적인 법률과 최대한의 공정함이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지 관리를 당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관리를 당하는 것이지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다. (「청룽을 본받아 지도자의 의중을 깊이 헤아리자」에서)
창녀와 음란 사이트의 사회적 해악은 너무나도 크다! 횡령이나 살인보다 훨씬 나쁜 죄다. 사회적 해악이 가장 작은 것은 부패다. 부패하면 돈을 쓰게 되고, 곧 크게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니, 그 공이 과보다 크다 하겠다. 그러나 창녀와 음란 사이트는 백성(百姓)의 생활에 큰 악영향을 끼쳐 그들을 백성(百性)으로 변하게 할 뿐 아니라, 정경유착, 아니 협조로 이루어진 호화스러운 유흥업소의 장사를 망쳐놓음으로써 소비를 억제하고 GDP를 끌어내린다. (「선전의 경찰」에서)
한한은 한때 중국에서 일었던 반한 감정에 대한 입장도 밝히고 있다. 한국이 중국의 고대 문화유산은 물론 역사까지도 약탈하여 자기네 것으로 삼으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날조이자 허황된 민족적 자만심에서 기인한 정신적 자위에 불과한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또 이런 현상이 생긴 데에는 정부의 배타주의와 그에 부응한 군중의 광기와 선동이 한몫했음을 지적하며,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 일부의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과 행동에 대한 자조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단오절이 한국의 단오제와 명칭상 충돌이 있었던 것 이외에, 한국인들이 우리 문화유산을 약탈하려 한다는 일과 관계된 사건들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날조하거나 과장한 것이다. 이를 입 밖에 내어 말하면 대단히 듣기 거북하겠지만, 사실이 이러하다. 나는 네가 싫으니, 네가 우리집에 와서 물건을 훔쳐간다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거기다 훔치지도 못하고 우리집 개에게 물어뜯기는 결말을 상상하며 정신적으로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너를 증오한다」에서)
엄숙주의와 중화주의가 중국 예술을 망친다
2부에서는 한한이 작가이자 전방위 문화인으로서 바라본 중국 문화계의 문제들이 중점적으로 언급된다. 기성 문단과는 다른 문체와 접근법으로 자신의 문학관을 구축한 한한은, 먼저 중국 문단을 둘러싼 엄숙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평소 모든 권위적인 것들에 경계심을 드러내온 만큼,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한한은 시(詩)라는 장르의 형식성에 대한 근원적 의구심과 회의를 거듭 드러내며 시인들과 마찰을 빚다가 결국 사과 아닌 사과까지 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문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이른바 ‘대가’들에 대한 숭앙 일색인 평단과 언론에 대해서도 할말을 다한다.
인신공격이 아닌 다음에야, 대중이 정한 대가건 정부 공산당이 정한 대가건 상관없이 아무리 위대한 대가라 해도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를 이야기할 수 없고, 관료를 이야기할 수 없고, 제도를 이야기할 수 없고, 부패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제는 심지어 책 쓰는 사람들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대가님들께 무조건 복종하겠습니다!」에서)
최근 영화감독 데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한 한한은, 중국 영화계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특히 중국 고대사 속 화려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삼는 영화 제작 풍토에 반감을 드러낸다. 이런 풍토가 생긴 까닭은 “고대를 소재로 한 영화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흥행이 가능하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언급을 짧게 소개해본다.
영화란 마땅히 상상력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인류의 이상을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영화는 정부의 이상을 대표하는 것 같다 (중략) 자꾸 고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중국 영화 최대의 고질병이다. 서양의 오락 영화들이 갈수록 인문적 정취를 갖추어가는 마당에, 아직도 무덤이나 뒤지고 있는 우리 영화가 어떻게 그들과 겨룰 수 있겠는가. 미래에 대한 감각을 품고, 인문적 정취를 갖춘 우수한 국산 문예 영화로 미래의 수입 대작에 맞서는 것만이 중국 영화의 진정한 출로이다. (「당신에게 감사한다, 공자여」에서)
국민의 희생에 눈감는 정부, 팍팍한 중국인의 삶
3부에서는 최근 중국이 세계적 규모의 행사들을 치르며 보인 비이성적인 모습들을 중심으로,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면모들을 지적한다. 먼저 상하이엑스포 개막을 앞두고 발생한 유치원 칼부림 사건을 언급하며, 대형 국가 행사를 즈음해 언론 통제를 더욱 강화한 정부의 처사를 고발한다. 한한은 국가적 대사를 치르는 데 ‘흥을 깨는 존재’가 되어버린 죄 없는 아이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동시에, 이런 희생을 막지 못한 중국 정부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하지만 우리 불쌍한 아이들아, 분유의 독성에 해를 입는 것도 너희요, 예방접종을 잘못 맞아 고생하는 것도 너희요, 지진이 나서 깔려 죽는 것도 너희요, 불에 타 죽는 것도 너희로구나. 어른들의 규칙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어른들의 칼에 보복을 당하는 것은 역시 너희로구나. 나는 정말 타이저우 정부의 발표처럼 너희가 다만 부상만 입고 한 명의 사망자도 없기를 바란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책임을 저버렸지만, 너희는 자라서 너희의 아이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거라. (「얘들아, 너희가 어르신의 흥을 깨는구나」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해외 성화 봉송 기간에 벌어진 ‘까르푸 불매 운동’을 바라보며, 한한은 자국민의 비뚤어진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직설한다. 성화가 프랑스 파리를 지나던 시기, 티베트 독립 지지 세력이 성화를 끄려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중국인들이 대대적인 시위와 함께 까르푸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비뚤어진 민족주의의 발현으로 빚어진 이 해프닝에, 한한은 다음과 같이 입바른 소리를 한다.
나는 지금 상황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까르푸는 바람을 채운 성인용 형과 같아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이 풍선을 끌어안고 정욕을 해소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사람들은 평소에 지나치게 억압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해소 대상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정욕을 해소하면서 이 성인용 인형과 인형 제조업자에게, 나 대단하지? 나 대단하지? 하고 묻는다. 그리고 인형이랑 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는 오히려 발기부전이라고 비난한다. (「어느 민족주의적인 장보기」에서)
한편 이 책 마지막인 4부에서는 중국의 시사주간지 『난두저우칸南都週刊』과의 인터뷰 내용이 소개된다. 한한은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멈추지 않아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또 당대 중국의 청년 문화를 이끄는 ‘바링허우의 기수’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토로한다.
한국 사회는 중국 사회의 미래일까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에서 펼쳐 보인 한한의 중국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중국인이 아닌 우리에게도 왠지 모를 서글픔이 치민다. 권위주의적 면모를 떨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 당국, 국가적 시스템의 부재로 국민이 수시로 감수해야 하는 불의의 희생,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로 나날이 심각해지는 계층 간 갈등, 앞날이 막막하기만 한 청년들의 삶,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사회를 경직되게 만드는 엄숙주의와 배타주의…… 한한이 날카로운 메스를 대어 예리하게 도려낸 중국의 저 많은 환부는, 곧 우리 사회의 환부이기도 한 것이다. 중국의 아픔들은 권위주의 시절 한국이 거쳐온 아픔과 아주 유사하고, 심지어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너무도 날카로운 중국 사회 비판을 담고 있기에 애초에 중국 본토에서는 출간되기 힘들었을 책,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 2000년대 중후반에 한한이 온라인을 통해 거침없이 쏟아낸 ‘불온하고 불량한’ 사회적 발언들은, 이를 눈여겨본 타이완의 한 출판사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냄으로써 비로소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당국의 검열로 삭제되어 중국인들에게서 잊힐 뻔한 소중한 글들이, 다행스럽게도 소실의 운명을 피해 하나의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소설가’ 한한이 아닌 ‘사회비평가’ 한한을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국 최고의 카레이서, 중국 문화계 최고의 셀러브리티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잠시 잊어두고, 중국인의 서글픈 일상을 함께하는 날카로운 비판적 지성의 소유자, ‘저널리스트’ 한한을 만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