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엄마가 쇠약해져갈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치매’라고 말할 정도로, 치매는 당사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대표적인 노환이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국내 치매 환자가 60만 명에 육박하고, 10년 뒤인 2024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이렇다보니 치매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대중로부터 큰 반응을 얻기도 하는데, 2004년 방송된 배우 고두심 주연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는 노모의 건강을 염려하는 딸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치매는 피하기 힘든, 모두의 문제임에도 정작 별다른 준비 혹은 대비를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넌 누구니?”
“엄마 아들이에요.”
“내 아들이라고?”
엄마는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p.15 <그런데 너는 누구니?>에서
이 책의 저자 다비트 지베킹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한창 일하며 부모님 집에 자주 들르지도 못하던 30대 중반에, 그의 어머니가 낯선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들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눈 감고도 만들던 익숙한 맛의 엄마표 라자냐도 엉망이 된 채 식탁에 나온다. 하필이면 말썽만 부리고, 돈도 못 벌던 막내아들이, 드디어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그때에.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앞에서
되살아나는 가족애
아들은 엄마의 상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악화되는 것을 보며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엄마를 집중적으로 돌보면서 일도 병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다. 바로 엄마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직접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점점 아들과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기억을 상실해가지만, 오히려 자식들과 아버지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엄마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계속 발견해간다.
더이상 아무것도 물어볼 것 없는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떠오른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 -p.250 <계속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에서
서로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도 못했던 가족이 엄마로 인해 한마음이 되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버지가 회심을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독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정원을 가꾸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도 그녀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장면이다. 엄마의 치매라는 높은 파도가 이들을 덮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가족 간의 ‘진심’과 진실은 남은 시간이 짧기에 더욱 빛난다.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살아 있는 메시지
이 책은 생의 마지막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실화를 통해 망라한다. 부모를 어떻게 보내드리는 것이 옳은지, 자식들은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더불어 사전의료지향서, 안락사, 장례 문제에 이르기까지 직접 자신이 부딪히기 전에는 생각해보기 어려운 주제들도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어, 가족과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가족만큼 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치매만큼 가족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질병도 없다” 독일 아마존에 올라온 이 책에 대한 독자 평이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들은 저마다 고통 받고 있지만, 그 어려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간의 사정이나 고통을 알기 어려운 ‘치매’라는 병의 진행을 이 책은 독자들에게 낱낱이 드러낸다. 치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치매를 앓는 가족이 있어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기억이란 인간에게서 몰아낼 수 없는 유일한 낙원이다.” -장 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