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유럽인 니체 니체가 살고 숨쉬고 느낀 유럽을 거닐다
- 원서명
- THE GOOD EUROPEAN
- 저자
- 데이비드 크렐
- 저자2
- 도널드 베이츠
- 역자
- 박우정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4-03-03
- 사양
- 476쪽 | 170*220 | 양장
- ISBN
- 978-89-6735-095-6
- 분야
- 역사, 철학/심리/종교, 교양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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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정가
- 28,000원
-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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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니체의 집필장소를 빠짐없이 쫓아가 찍고 기록한 독특한 전기"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만큼 철학사적 가치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로 오늘날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내밀한 독서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철학자도 흔치 않을 것이다. 사유와 상상력의 깊이, 문체의 변화무쌍함에서 니체는 글쓰는 이들에게 안락한 도피처와 우상이 되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적 니체를 일궈낸 그의 삶, 무엇보다 니체의 그 문제 많은 육신적 삶은 결코 모방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심지어 그 치열함 때문에 동정의 대상도 되기 힘들다. 질병이 니체 생의 마지막 10년을 덮쳐 광인적 착란 속에서 삶을 마치게 했다는 것쯤이야 니체의 독자라면, 아니 니체의 독자가 아니더라도 혹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인 니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었으며, 고통의 정도와 폭도 안타깝지만 너무도 깊고 넓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으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합병증이 나중엔 숨 쉬는 것조차 힘들만큼 니체의 영혼을 쥐어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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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시카고에 있는 드폴 대학의 철학 교수다. 저서로 『전염성 있는 니체Infectious Nietzsche』(1996)와 『소설 니체Nietzsche : A Novel』(19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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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004
서문 008
제1장 시작과 끝 025
*니체가 쓴 글들 1 117
뢰켄 | 나움부르크 | 포블레스 | 슐포르타 | 예나 | 바이마르
제2장 나는 신이 되느니 바젤의 교수가 될 것입니다 135
*니체가 쓴 글들 2 219
바젤 | 마데란 계곡 | 로렌 | 트립셴 | 바이로이트 | 플림스-발트하우스 | 스타이나바트 | 바덴바일러 | 소렌토 | 파에스툼 | 폼페이 | 로젠라우이: 베르너 고지
제3장 높은 산의 고독 241
*니체가 쓴 글들 3 327
리바 델 가르다 | 스트레사 | 레코아로 | 칸노비오 | 아이롤로, 생고타르 고개 | 펜닌 알프스와 레폰틴 알프스 | 알불라 고개와 율리아 고개 | 질스마리아, 고지 엥가딘
제4장 바다와의 친밀한 대화 349
*니체가 쓴 글들 4 421
제노바 | 라팔로 | 포르토피노 | 루타 | 로마 | 베네치아 | 니스 | 이즈 | 토리노
니체의 저술활동과 여행 연보 444
옮긴이의 말 459
찾아보기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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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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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그의 삶은 철학이자 동시에 여행이었다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를 좇는 여정……
니체의 삶을 전기식으로 철저히 파헤치면서
빼어난 사진들과 함께 니체가 유럽에 느꼈던 애정을 만끽하게 한다.
_알랭 드 보통,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니체가 말하는 “좋은 유럽인”이란 무엇인가
저자들은 니체의 글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하고 효과적인 사진들을 곁들여, “니체가 일한 곳들의 모습, 니체가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원고를 준비하거나 교정을 본 지방과 장소의 풍경”을 처음으로 그리고 독특한 시선으로 좇는다. 저자들은 부득이하게도 니체가 그 장소들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때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지금의 모습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현재 바이마르의 괴테-실러 기록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니체가 소장했던 옛 사진들도 실려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1994년 여름과 1994~1995년 봄에 저자들이 직접 찍은 것이다. 저자들은 니체의 인생을 전기식으로 꼼꼼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려면 훨씬 더 많은 지면이 있어야 하고 책의 지향점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니체가 선택하여 일했던 장소의 느낌을 전하는 것이었고, 최고 관심사는 집필 장소가 니체의 저서(사상과 글)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 니체의 모든 글에 대한 번역은 저자들이 이 책을 위해 직접 했다. 데이비드 크렐이 글의 초안을, 도널드 베이츠가 사진의 대부분을 맡긴 했지만, 두 사람은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면에 관여했다. 따라서 『좋은 유럽인 니체』 는 공동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아마도 니체는 ‘좋은 유럽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유럽 대륙을 떠난 적이 없고 좋은 유럽인이라면 자신의 교양에 ‘필수적’이라고 여길 많은 장소도 보지 않았다. 파리나 바르셀로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코펜하겐, 런던이나 브뤼셀, 프라하에도 간 적이 없다. 게다가 니체는 현대 유럽의 언어들에 숙달되지도 않았다. 니체의 이탈리아어는 형편없었고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러시아어는 전혀 못 했다. 영어도 서툴렀다. 스턴이나 트웨인이나 에머슨도 니체로 하여금 영어를 배우게 하지는 못했다. 프랑스어만 웬만큼 할 수 있었는데, 프랑스어 읽기 실력은 훌륭했다.
오늘날의 유럽, 즉 ‘새로운 유럽’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니체가 이러한 개념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문화에 갇혀 있고 유럽적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니체는 그리스 문학과 문헌학을 전공한 고전주의자이고 로마 숭배자였다. 그는 아프리카나 동양에는 관심이 없었다. 니체가 중국에 가장 가까이 간 곳은 베네치아였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 도 독일어 번역본으로 접했다. 하지만 오늘날 좋은 유럽인이 되기 위한 요건과 이해관계가 훨씬 더 높아졌다 해도 니체는 여전히 새로운 유럽과 유럽이 처한 오랜 곤경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예지력이 있었던 듯하다. 니체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옛 유럽의 ‘국가와 조국’이 유럽의 통합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면에서 니체는 왕의 은혜로 목사 자리를 얻게 된 시골 루터교 목사의 아들, 귀족을 공경하고 서민을 경멸하는 아이로 남아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현대의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거의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럽인(특히 독일인), 민족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에 대한 주요 비평가 중 한 명이었다.
니체가 유럽에 대해 품었던 희망은 항상 독일 제국에 대한 깊은 절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아주 일찍부터 니체는 자신이 ‘단지’ 독일인일 뿐 아니라 유럽인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의 소위 범유럽주의적 성향은 스위스 바젤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독일의 ‘도금 시대’, 소위 창업시대Gr?nderjahre(1871년 이후 독일의 경제 호황기)에 대해 불만이 쌓이면서 니체는 유럽의 전망에 대해 점점 더 불안을 느꼈다. 여동생이 독일의 선두적인 제국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 중 한 사람인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한 일은 이런 불만을 품게 된 개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니체는 일류 정치 논객이나 정치사상가가 아니었고 마르크스도, 히폴리트 텐1828~1893, 프랑스의 평론가, 철학자, 역사가도, 부르크하르트도 아니었다. 니체는 글을 쓰기 위해, 그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즉 서구 문화(종교, 과학, 학문, 권력욕)를 종말로 몰아가고 있는 금욕주의의 계보와 그러한 금욕주의를 굴복시킬 수 있길 바라며 발전시킨 사상(‘같은 것의 영원회귀’)을 쓰기 위해 유럽이 필요했다. 니체가 생각하기에 유럽의 운명 자체가 글쓰기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니체는 좋은 유럽인이 되려면 내면에 대한 순종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은 자신이 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를 들은 뒤 그것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로 서둘러 가야 한다. 니체는 건강이 나빠질 징조가 보이면 한 집필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기 위해 짐을 쌌는데, 그가 열망한 것은 오로지 치열한 사고와 저술뿐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사람을 보라: 사람은 어떻게 현재의 자신이 되는가』 에서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니체는 자신이 타고난 좋은 유럽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좋은 유럽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고 있다. “타고났다”고 말한 것은 자신은 부계에서 범유럽적 성향을 물려받았으므로(니체는 부계가 폴란드계이길 바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었다) “좋은 유럽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W14, 472) “힘들다”는 것은 현명해지고 좋은 책을 쓰려 할 때 필요한 모든 것, “가장 친근한 것”들을 전부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식사, 기후, 지역, 교류라는 요소가 각각 제 몫의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한다.
"니체의 집필장소를 빠짐없이 쫓아가 찍고 기록한 독특한 전기"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만큼 철학사적 가치와 상관없이 존재 그 자체로 오늘날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내밀한 독서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철학자도 흔치 않을 것이다. 사유와 상상력의 깊이, 문체의 변화무쌍함에서 니체는 글쓰는 이들에게 안락한 도피처와 우상이 되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적 니체를 일궈낸 그의 삶, 무엇보다 니체의 그 문제 많은 육신적 삶은 결코 모방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심지어 그 치열함 때문에 동정의 대상도 되기 힘들다. 질병이 니체 생의 마지막 10년을 덮쳐 광인적 착란 속에서 삶을 마치게 했다는 것쯤이야 니체의 독자라면, 아니 니체의 독자가 아니더라도 혹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인 니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었으며, 고통의 정도와 폭도 안타깝지만 너무도 깊고 넓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은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혔으며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합병증이 나중엔 숨 쉬는 것조차 힘들만큼 니체의 영혼을 쥐어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