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 ‘지금 버스를 기다리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까?’ ‘이 사람과 계속 사귀어도 될까’ 같은 일상적인 판단부터 ‘어떤 종목에 주식 투자를 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기업에 지원하면 승산이 있을까’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대에 올라야 할까’ 같은 한 개인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판단, 나아가 ‘군사 대응을 하는 것이 옳은가’ 같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판단까지 우리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결정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지식이나 주변의 조언 등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지만 그것이 늘 좋은 결과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딜런 에번스는 『RQ 위험인지능력』에서 위험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특별한 지능, 즉 위험지능을 소개한다. IQ와 상관없고 기상예보관, 전문 도박사, 헤지펀드 매니저 등 서로 다른 집단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그동안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위험지능에 대해 알아채지 못했다. 이에 딜런 에번스는 이 책에서 기후 변화 문제부터 테러와의 전쟁까지 다양한 사안을 통해 우리가 왜 그동안 확률을 정확히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는지 밝히고, 우리가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RQ’ 즉 위험지능이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 살핀 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를 어떻게 갈고닦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나는 위험지능을 ‘확률을 예측하는 능력’이라고 간략히 정의했다. 확률을 예측하는 능력이라니 보통 사람들과 별 상관이 없는 능력 같을 수 있지만, 앞서 봤듯이 우리는 매일 위험지능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조금만 돌아보면 확률을 예측해야 했던 경험이 여럿 떠오를 것이다. 이를테면 입사 지원을 한 회사에 합격할 확률이나 네스 호 괴물 이야기가 진짜일 확률처럼 말이다. 우리는 경험을 토대로 가능한 정확히 확률을 예측함으로써 그 문제에 얼마나 자신 있는지를 표현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별로 없고 100퍼센트 자신하는 경우와 100퍼센트 불확신하는 경우의 사이, 즉 회색 지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률은 당신이 얼마나 자신하는지를 비교적 정확한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확률을 예측하는 능력이 위험지능의 핵심이다. _본문에서(43~44쪽)
왜 위험지능이 중요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꼼꼼히 따져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거나 어려운 판단은 컴퓨터 분석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나 컴퓨터 분석을 통한 예측이 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직관적인 판단력마저 상실되었다. 저자는, 전문가나 컴퓨터 분석에 따른다 해도 그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몫이므로, 각 개인의 위험지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위험지능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자기 지식의 한계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즉 지식과 정보가 적을 때는 신중을 기하고, 반대로 정보가 풍부하다고 판단될 때 자신감을 갖는 것이 위험지능이라고 본다. 쉬운 문제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기를 불편해한다. 게다가 여러 가지 방해 요소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린다. 『RQ 위험인지능력』에서는 이런 방해 요소를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나눈다. 우선 심리적 요인이다. 애매모호함을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태도, 모 아니면 도라는 태도, 과거 유사 사건을 토대로 예측하는 가용성 휴리스틱,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지나치게 확신하는 편향,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착각 등이 그것이다. 우리 내면에 잠재한 위험 요소뿐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도 위험지능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우리 사회는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람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높게 평가하는데 이는 위험지능과는 거리가 멀다. 이외에도 동일한 표현을 저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집단 의견에 휘둘리는 등 다양한 사회적 압력과 집단의 영향으로 우리의 위험지능은 약해진다.
이 책은 위험지능이라는 이 특별한 지능을 알리고,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를 어떻게 갈고닦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례를 들어 왜 그리고 언제 우리가 잘못하는지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은행이 도산하고, 의사가 오진하고, 존재한다고 믿었던 대량 살상 무기가 사실 없었다고 밝혀져도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에 우리가 확률을 예측하는 데 왜 실패하는지를 밝히고, 예측 기술을 연마하는 방법을 제시해보려 한다. 위험지능이 높은 사람은 경마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브리지 게임 애호가와 기상예보관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예측이 능숙하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을 살펴보고, 위험을 예측할 때 무엇이 우리의 뇌를 엇나가게 하는지 살펴봄으로 자신의 위험지능을 향상시킬 방법을 찾는다면 모든 면에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_본문에서(38~39쪽)
위험지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때론 공포에 짓눌려 오판을 내리지만, 다행스럽게도 위험지능은 고정적이고 선천적 지능이 아니다. 생물학과 문화의 합작품인 위험지능은 몇 가지 훈련을 통해 계발 가능하며 그럼으로 얼마든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딜런 에번스는 우리 뇌가 확률을 잘 평가할 수 있는 기본능력은 갖췄다고 전제한 후 위험지능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숫자의 활용이다. 확률을 “~할 가능성이 있다”처럼 모호하게 표현하기보다 “성공 가능성이 20퍼센트다”처럼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하고, 전산 모델이나 통계 등을 활용해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전적으로 이런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방법으로 데이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수 확률이 65퍼센트 이상일 때만 우산을 챙기는 식으로 한계점을 정하거나 0퍼센트나 100퍼센트 외에 중간 범위의 확률차도 충분히 고려하며, 전체 확률의 퍼센티지가 100퍼센트라는 사실을 염두하며,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 이를 토대로 확신을 조율하는 등 숫자를 토대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숫자에 정통하지 않아도, 따로 확률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기대 효용 이론을 행복, 건강, 고통 같은 추상적인 가치를 대입해 비금전적 손실 및 이익이 따르는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심장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수술이 성공해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지만 수술을 받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못 보고 병원에서 죽을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큰 수술을 감행하느니 집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보낼 것이다. 이렇듯 효용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각이므로 각자의 느낌과 가치, 선호를 감안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위험지능을 향상시키는 마지막 방법은 우리의 지식의 한계, 즉 자신의 맹점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고 식견을 넓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카고에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이나 있느냐’라는 질문에 시카고 인구수, 피아노를 소유한 사람의 비율, 피아노를 소유한 학교와 공연장 수의 추산 등 얼핏 관련 없어 보이는 하위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처음 질문의 답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위험지능의 특징과 이를 계발하기 위한 방안을 전반적으로 살핀 뒤, 저자는 제아무리 완벽한 위험지능도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위험지능을 과신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위험지능은 절대적인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더욱 잘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현명하게 헤쳐갈 수 있게 도와줄 나침반인 셈이다.
위험지능은 난폭한 강물 속에서 길을 찾을 가능성을 높여줄 뿐 위험을 아예 없애주지는 않는다. 인간은 본디 통제 착각에 빠지기 쉬운 존재다. 과학이 발전해도 통제 착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옷을 바꿔 입을 뿐이다. 고대 로마의 성직자들이 제물로 바친 새의 간을 살펴 앞날을 예측했듯 오늘날 통계학자들은 확률 모델로 가능성을 예측한다. 통계사를 다룬 『우연을 길들이다The Taming of Chance』에서 철학자 이언 해킹은 확률 이론이 발달한 덕분에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이해하는 감각이 생겨서 변덕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운명론적 세계관이 쇠퇴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커졌다. (중략) 삶이 더 안전해져도 위험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불운에 대한 염려는 한쪽을 누르면 한쪽은 납작해지고 다른 한쪽은 빵빵해지는 ‘물침대 원리’와 같다. _본문에서(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