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배고픈 사람이 음식에 달려들 듯 열심히, 시끌벅적하게 사는 것!”
식탁에서 펼쳐진 맛있는 삶, 유쾌한 요리 이야기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집 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험적인 음식 세계를 선보이는 아버지와 정확한 계량만이 요리의 기본이라 믿는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피를 물려받아 삶의 중심에는 음식이 있다고 믿는 딸 몰리 와이젠버그. 이들에게 음식이란 가족을 연결하는 끈이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 그리고 가족의 역사다. 『런던타임스』선정 최고의 음식 블로그로 꼽힌 ‘오랑제트’의 운영자 몰리 와이젠버그가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 출간한 『홈메이드 라이프』는 몰리 가족의 음식과 삶에 얽힌 잔잔하고도 맛있는 에세이다. 단순히 음식을 맛보고 즐긴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음식과 함께한 삶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책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거 아냐, 식당에서 먹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집에서 먹는 우리가 더 잘 먹는다는 거.”
매일 저녁, 부엌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가족을 보며 자랑스러운 듯 집 밥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아버지 버그는 부엌이야말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 몰리의 첫 번째 요리 선생님이었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레시피를 써보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궁리해보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한 끼를 위해 기꺼이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은 몰리의 요리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영원히 자신과 함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병원에 입원했고, 그 길로 두 번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며 그날 하루를 열망했던, 자신이 가진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것을 사랑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몰리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인간생물학과 인류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인생의 진로를 바꿔 음식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다. 음식과 개인적인 소사를 담은 이 블로그는 단순한 블로그를 떠나 한 가족의 역사이자, 1980~90년대를 관통하는 문화 지도가 된다. 오랑제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블로그, 그녀의 삶을 바꾸다
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로 찾은 것은 바로 블로그였다. “음식과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블로그를 해보라”고 조언한 친구의 한마디로 구체화되었다. 웹상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레시피를 전하며 이웃들과 교류를 시작한 것이다. 전문 분야의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작한 블로그는 그녀를 또 다른 삶으로 안내했고, 블로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녀는 흔히 하는 말로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블로그를 시작했고 지금의 오랑제트를 키워냈다. 오랑제트는 단순히 레시피를 전하는 음식 블로그가 아니다. 몰리라는 여성이 가진 추억과 용기, 꿈과 희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앨범인 셈이다. 그리고 지구 반 바퀴 너머에 있는 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겪었던, 우리가 겪고 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몰리에게 있어 오랑제트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음식의 레시피를 정리하며 그녀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그 만남은 꼬리를 물 듯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어나갔다. 그리고 영화처럼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짜릿하고 연애소설보다 달콤한!
어느 날 몰리 앞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오랑제트는 정말 훌륭한 블로그라는 찬사를 담아. 몰리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그에게 답신을 보내고 그렇게 브랜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브랜던 역시 음식에 대한 남다른 취향과 자부심을 가진 이였고, 두 사람은 천생의 배필이 그러하듯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호감을 쌓아간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 몰리와 뉴욕에 살고 있는 브랜던은 여권 없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에서 연애를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음식이라면 ‘모두 환영’인 몰리와 달리 브랜던은 채식주의자였던 것! 『홈메이드 라이프』의 전반부가 몰리와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후반부는 브랜던과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때로는 달콤한 케이크처럼 때로는 쌉싸래한 샐러드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두 사람은 새로운 것이 만나 이루어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이루어내며 영화 같은 연애를 이어간다. 몰리는 브랜던을 통해 원리원칙주의를 고수하던 자신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게 되고 이는 곧 레시피에도 반영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레시피를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가던 두 사람은, 잊고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려준 브랜던의 특별한 청혼으로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음식이라는 화두로 곱씹어보는 인생의 참맛
“음식은 다른 무언가에,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었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에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이다.”
몰리의 음식예찬론은 『홈메이드 라이프』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단순히 ‘음식’ 예찬으로 끝났다면 그저 그런 음식 에세이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몰리가 이야기하는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몰리가 요리하는 음식은 아버지와의 추억이고, 어머니와 떠난 프랑스 여행이기도 하며,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에, 사랑의 시작이자 행복한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몰리의 블로그가 『런던타임스』 선정 최고의 음식 블로그로 꼽혔다고 해서 그녀의 레시피가 거창하다거나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만을 소개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첫 시작을 여는 음식은 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평범한 감자 샐러드 한 그릇이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미국 가정에서 평범하게 먹는 케이크나 머핀 종류의 생활 음식들이다. 여름 피크닉 때마다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엄마의 파운드케이크을 통해 오클라호마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암과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에게 달걀 요리로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했던 가슴 짠한 순간을 되새기고, 채식주의자 연인과 펼쳐내는 샐러드 퍼레이드나 직접 구운 결혼식 케이크로 피로연을 장식하는 몰리의 레시피에는 따뜻한 삶의 모습이 스며 있다. 무지방과 저지방을 혐오하는 그녀의 식습관이 반영되어 가끔은 칼로리 대폭발을 불러올 때도 있지만, 그녀의 요리는 언제나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그녀의 레시피를 곱씹다 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인생의 조각들이 각각의 맛을 내며 어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