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도 곳곳에 잠복해 있는 통과제의를 체계적으로 분석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의 이름 아래 도외시되어온 인간의 원시적 심성과 신화의 메시지를 다시 재발굴하고 그 참다운 가치를 밝혀주는 신화상징총서 시리즈! 문학동네가 야심적으로 기획, 추진하고 있는 신화상징총서 제3권 "통과제의와 문학』이 마침내 출간되었다.
원시시대가 아닌 현대에도 아직도 생활현장 곳곳에서 잠복해서 되풀이되고 있는 통과제의! 통과제의의 목적은 무엇이었고, 옛날에는 제의를 통해서 충족되던 인간의 어떤 욕구가 왜 차츰 문학을 통해서 표출될 수밖에 없었을까? 프랑스 그르노블 학파의 주요 일원인 시몬느 비에른느 교수는 "통과제의와 문학』에서 현대생활과 문학작품, 그리고 영화, 만화에 통과제의가 어떻게 변형돼 숨어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하고 있다.
저자 시몬느 비에른느(simone Vierne)는 세계적으로 상상력 연구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그르노블 학파의 일원으로 그르노블 제3대학 교수와 C.R.I.(centre de Redcherche sur IImaginaire : 상상계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66년 질베르 뒤랑을 중심으로 결성된 C.R.I.는 신화비평에 대해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했고, 비에른느는 초대 소장인 뒤랑의 뒤를 이어 C.R.I.를 이끌면서 통과제의 비평방법을 제시한다. 비에른느는 문학 텍스트 및 영화, 만화 등 예술 분야에 변형되어 존속하고 있는 통과제의적 이미지와 원형을 분석함으로써, 신화의 원형적 역할을 연구하는 신화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정립했다. 저서로는 "쥘 베른과 통과제의적 소설』 "쥘 베른의 신비한 섬』, 그리고 조르주 상드에 관한 연구서 등이 있다.
역자 이재실 교수는 이화여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앙리보스코의 작품에 나타난 시간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불어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역서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종교사 개론』이 있다.
모든 통과제의에는 공통적인 구조적 연대성이 존재
이 책은 성인식이나 고대 비의, 엘레우시스와 미트라 제의, 연금술, 샤머니즘,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에 신참자를 입문시키는 여러 형대의 통과제의에서,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볼 때 매우 거리가 있는 각종 통과제의에서 추출한 다양한 모델을 통해서 근본적인 유사성을 찾아낸 다음, 그것을 비종교적 분야인 문학작품과 대면시키는 2차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비에른느 교수는 통과제의를 존재론적 위치의 변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는 것으로 정의한다. 요컨대 통과제의는 인간 영혼의 보편적 성향인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양상을 보이는 통과제의의 시나리오에는 그 구조에 있어 동일·불변한, 모든 통과제의를 서로 접근시켜주는 구조적 연대성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각종 통과제의의 표면적 다양성 밑에는 신참자에 의한 성(聖)의 점진적 소유를 나타내는 통과제의의 세 단계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통과제의적 죽음, 준비 단계, 새로운 탄생이라는 세 단계를 의미한다. 모든 통과제의의 공통적인 시나리오를 추출하고, 거기서 의례가 이루어지는 일반법칙을 연구하며, 나아가 모든 통과제의의 목적, 즉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의 본질적인 내용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의 1차적인 작업이다.
통과제의적 글읽기를 통해 현대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명
그러나 정작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은 현대생활, 문학과 영화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통과제의의 의미를 다룬 두 번째 장이다. 종교적 행동과 믿음이 사라지고, 제의가 더 이상 존재의 근본적 문제에 대답할 수 없는 시대에 인간 조건이라는 본질적 문제는 무의식의 심층으로부터 떠올라 문학작품을 통해서 통과제의적 욕구로 은폐되어 표현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문학에서 어떻게 통과제의를 읽어내느냐, 어떻게 통과제의라는 원초적 역동성의 구조를 더듬어가느냐에 잇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통과제의적 글읽기가 필요하다. 주의 깊은 독서를 통해서, 현실의 미메시스(Mimesis)인 소설의 밑에서 통과제의적 시나리오의 구조와 그 상징적 테마들의 구조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질베르 뒤랑을 중심으로 한 신화비평적 시각을 따르며 신화나 제의에 의해서 문학작품을 해명하려는 시도를 "통과제의와 문학』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소설 가운데 최초의 통과제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는 아풀레이우스의 "변신』, 그리고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시들, 조이스의 "율리시스』, 엘리어트의 「황무지」 등 여러 텍스트들이 분석대상이 되고 잇다. 통과제의적 글읽기는 수많은 현대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명할 수 있게 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현대문학을 여는 또하나의 열쇠!
비에른느의 통과제의 연구는 통과제의 모티프를 문학적 주제와 접합시킨 엘리아데의 독창적 시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비에른느의 독창성은 관혼상제에 따른 문화적 질서로서의 통과의례를 넘어서서, 원시종교와 고대제의, 각종 비밀결사에 나타난 통과제의 시나리오를 정교하고 명확한 이론적 지반위에서 세부적으로 해명했다는 데 있다. 나아가 다양한 통과제의에서 추출한 근본적 유사성을 비종교적 분야인 문학과 대면시키고, 통과제의의 역동적인 구조를 발견해냄으로써 현대문학을 여는 열쇠를 제공한 점은 이 책의 귀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