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의 김경이 전하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취향의 파노라마’
최근 어느 대학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이상 이념이 아니라 취향의 갈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너와 나를 다르게 혹은 가깝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제는 세대와 기질, 취향, 행동양식의 차이라는 것이다. 평소 ‘취향’이라는 것을 단순히 식당에서 카레를 시키는지, 돈가스를 시키는지 혹은 액션영화를 좋아하는지 로맨스영화를 좋아하는지의 문제라고만 치부해온 사람이라면, 이렇듯 한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취향’이 지목된 것이 놀랍게 다가올 것이다. <하퍼스 바자> 전(前) 에디터이자 프리랜스 작가인 김경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사회가, 저마다 속한 공동체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업의 장사꾼들과 그들이 고용한 광고인들이 한 개인에게 교묘하게 강요하는 어떤 암묵적인 압박이 실로 엄청나게 커서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만의 취향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아닌지 우려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성을 통해 그 사태에 저항한다. ‘소비’가 아닌 ‘저항’으로서의 취향의 발견이라고 할까. 그 소수의 저항이 모이면 세상을 바꾸는 불가항력이 된다고 저자는 믿고 있는 듯하다. 특이한 건 ‘취향의 사회학’이라는 가제 아래 모인 이 에세이가 한 편으로는 연애 소설처럼 읽힌다는 거다. 마치 저자가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작가 존 버거의 책처럼 자본과 소수의 승자가 장악한 이 시대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은 연애담이라고 할까.
사랑, 패션, 라이프스타일, 인물, 사회 등 우리 삶의 깊숙한 면면을 훑어 취향의 넓은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이 책은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면 인생이 무슨 대단한 보물찾기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저자 자신이 자기 영혼을 걸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모든 경험담과 사유를 불러들여 그야말로 살아온 생애로 증명한다. 무엇보다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끌어당기는 놀라운 인력, 세상의 수많은 영혼 중 아무 계산도 없이 즉흥적으로 한 영혼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취향임을 인식한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전한다.
대체 취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취향을 일종의 상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_ 톨스토이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취향이 인간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며, 삶이 그 취향이라는 강력한 자장 안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고, 이끌리게 되는지 저자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성을 총 동원하여 들여다본 책이다. 작가는 책 서문에서 자신이 이러한 책을 쓰게 된 속내를 밝힌다. 취향을 일종의 상표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그저 공동체의 일반적인 취향을 좇아 규범, 유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기만의 취향을 영영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고. 내 것이라고 생각한 취향이나 선호가 돈이나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도 좋은 건지, 취향이란 것을 신분이나 경제력을 드러내는 액세서리쯤으로 여겨도 되는 건지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김경은 불안하고 막막한 청춘의 진로 속으로 진입한, 그래서 아직 자기 취향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삶의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원자 같은 가장 최소 단위에서 인간의 육체를 분석하자면 우리는 사실 책상 다리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타인과 다르게 만드는가. 자아. 나는 자아라는 말이 버겁다. 영혼. 솔직히 그걸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내 몸뚱아리를 보고 나라는 인간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영혼은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맛을 볼 수도 없다. 증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취향이다. 내 영혼의 풍향계가 그 많고 많은 티셔츠 중에서 어느 하나를 고른다. 아무 계산도 없이 즉흥적으로. 그리고 한 인간의 인생이란 그런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톨스토이가 어딘가에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라고 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그냥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_ 서문 <내 영혼의 풍향계가 선택한 것들> p.5
세상의 모든 구별 짓기가 아무 소용없다. 취향 이것 하나면.
너와 나, 나아가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취향의 연금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상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여기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불행하게도 음악에 대해서는 그녀와 취향을 열정을 나눌 수 없던 한 남자(헨릭)가 있다.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 『열정』의 주인공 헨릭이다. 작가 김경에게는 이 책이 이렇게 읽혔다. 적어도 나와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은 콘라드와 크리스티나처럼 취향을 함께 나눌 수 있을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 헨릭의 아내와 친구 콘라드가 쇼팽의 <폴로네즈 환상곡Polonaise Fantasie>을 들으며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헨릭은 오히려 음악을 증오했다. 그래서 결국 친구가 아내와 바람이 나고, 친구가 친구에게 총을 겨누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강조하는 것처럼 문화와 예술에 대한 취향이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논리는 폐기한다 해도, 인간은 취향을 통해 자신을 타인과 구별 지으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이, 수입, 옷, 외모, 배경, 언어, 국적 등 많은 것이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구별 짓기’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순식간에 빠져든다. 타인과 타인이, 서로에게.
“패티 스미스를 듣는 여자는 처음 봐요. 아니 남녀 통틀어 패티 스미스에 대해서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처음이에요.”
“저도요. 고행석의 구영탄을 좋아한다는 남자는 처음 봐요. 보통은 다들 이현세의 까치를 좋아하잖아요.”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상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고.”
“지질이, 가난뱅이, 순딩이, 모지리, 푼수, 말라깽이. 난 맨날 그런 사람들만 좋아했어요.”
“예술가 중에서 제일 영향받은 사람이 있다면 아마 윌리엄 블레이크와 파스칼일 거예요. 위대한 천재들이었는데 참 비참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어요. 일종의 패배자죠.’”
“의기양양한 패배자. 그런 사람들 저도 좋아해요.”
“신기해요. 말이 이렇게 잘 통한다는 게. 전혀 모르고 살던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요. 그럼 우리 결혼할까요.” _ <부자보다 가난뱅이를 좋아하는 여자> 중에서 p.51
작가는 ‘취향’으로 낯선 사람과 순식간에 통일을 체험했던 자신의 경험담도 털어놓으며 취향이 벌이는 ‘관계의 연금술’을 독자에게 전한다. 사랑하는 이와 마음으로 깊이 교감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이란 스타일과 스타일, 취향과 취향, 세계관과 세계관, 가치와 철학이 만나는 행복하고 이상적인 결합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누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하면 덮어놓고 ‘박정희를 좋아하는 부류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하고 그다음에는 ‘시골과 도시 중 어디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자신의 취향으로 알아본 그 남자와 강원도 평창에서 똑같은 리듬 속에서,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다.
이제 멘토가 아니라 다양한 취향의 뮤즈를 찾아 나서길
김경이 17년간 만나고 감동한 인생의 뮤즈들!
세상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_니체
요즘 사회에서는 ‘멘토’라는 말이 유행이다. 자기계발서마다 멘토를 찾아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들들 볶고, TV에서도 멘토링 프로그램 만들기에 열심이다. 그야말로 멘토팔이, 힐링팔이의 전성시대다. 하지만 대중 앞에 얼굴을 비치는 멘토라고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뿐이다. 김경에게 이런 현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그는 어린 시절 오빠를 따라 만화방에 갔다가 ‘구영탄’이라는 영웅을 만난 이후로 누구보다 선량하고 정직하지만 정에 이끌려 일을 그르치고 마는 ‘루저’를 좋아하게 됐다. 꼭 자신 같아서 자석에 끌려가듯 좋아했다. 설사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자기만의 가치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한다. 존 버거, 휘트먼, 러셀, 조지 오웰, 패티 스미스, 타샤 튜더, 피나 바우쉬…… 그는 이러한 수많은 인생의 뮤즈, 선생을 마음속에 거느리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취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취향’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사회와 인간 군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재미, 그리고 영혼과 영혼이 관계 맺는 그 미스터리한 방정식을 푸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직 17년 베테랑 에디터 특유의 날이 서고 앞선 안목으로 고르고 고른 이 취향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며, 이제껏 몰랐던 것이 원통할 정도로 멋지고 자신에게 꼭 맞는 취향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 책 속에서
클라라와 카스텔라의 아내에게 취향은 ‘남과 나를 구별 짓기 위한, 그러니까 내가 남보다 좀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잣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취향은 자기 자신을 틀 안에 가두고 주위 사람들마저 숨 막히게 할 뿐이다.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진짜 취향은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하든 나에게 좋은 것’을 의미한다. _<사랑도 예술도 결국 취향이다> P.23
물론 굉장히 많은 남자들이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야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 안다.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특히나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하면 남자들이 돌연 불쌍해진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벽장을 값비싼 셔츠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 개츠비의 비극을 보고 있으면 연인들을 끌어당기는 상대의 ‘취향’이라는 게 그 사람의 감수성이라든가 미적 방향성이 아니라 ‘폭넓은 상품의 사슬에서 그 물건이 점하는 위치’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_<부자보다 가난뱅이를 좋아하는 여자> P. 49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전 세계를 자본을 위한 단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려는 그 압도적인 힘에 맞서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렇게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여겨진 연애 이야기가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_<잘 들어봐요, 내가 한입 깨물 거예요> P.62
난리 법석을 떨며 호들갑스럽게 칭송하던 천만 원짜리 발망Balmain 재킷이 ‘6개월이 지나면 더이상 견디기 어려운 일종의 역겨움’으로 뒤바뀌는 것이 유행이라면, 소박함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해서 이젠 거대한 쓰레기통 수준에 이른 우리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항구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런 결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난 남들에게 흉잡히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서커스에 동참하고픈 생각이 없다!” _<망할 놈의 로고에서 헤어나는 법> P.69
예전에 영화 〈원 나잇 스탠드One Night Stand〉에서 “걱정 마. 인생은 오렌지니까”라는 대사를 듣고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 왜 오렌지라는 거지. 바나나나 토마토, 혹은 복숭아는 안 되나.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오렌지일 수 있고 또 바나나일 수 있고, 혹은 개떡이나 똥파리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저마다 각자의 의미로 인생을 사는 거다. _<인생은 오렌지다> P.76
그날 밤 KBS 뉴스에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에게 교복이나 다름없이 소비되고 있는,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아무튼 어깨 부근에 로고가 박혀 있는 한 스포츠브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로고는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암묵적인 교칙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 슬프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교활한 장사꾼들이 만드는 값비싼 로고가 앞날이 창창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셨나요. _<물은 물이요, 간지는 간지로다> P.90
웹툰 〈패션왕〉을 보면 알 거다. 패션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패션은 일종의 부조리한 충동이고 퇴행성 마약이다. 니체가 말하는 위대한 도취나 열락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들은 어떤 ‘룩’ ‘핏’ ‘간지’ ‘에지’에 취한다. 그 취기가 기분을 업시키고 자기 내면의 불안감마저 지워준다. _<저 오만하게 삐딱한 프라다 드레스를 보라> P. 95
그런데 ‘선망’도 아닌 것을 ‘선망’하도록 만드는 일이 바로 에디터가 할 일이다. 욕망을 생산 가공하고 호들갑스럽게 부추기는 일.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는 알 수 없는 께름칙함. 그러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나 또한 그랬다. 매달 마감 때가 되면 거의 신경쇠약 직전의 상태가 되어 애타게 기도한다. “신이시여, 비나오니 이놈의 사무실을 어마어마한 따귀로 세차게 갈기시어 납작 뭉개소서. 제발 바쁘시더라도 몸소 왕림하시어 모든 걸 마감토록 하옵소서.” _<보그와 공황장애> P.123
정말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진 건 별로 없지 싶다. 다만 아프다 아프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긴 한다. 경제대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의 병폐를 이제는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면 뭐하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과 불안감이라니…… 변화와 쇄신이야말로 지배자들 이 늘 써먹는 비장의 ‘한 수’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래서, 다시 시가 읽히나보다. _<다시 시를 읽는 즐거움> P.154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경쟁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누구한테든 복수를 해주고 싶을 만큼 병들게 만든다. 그 쓸데없는 경쟁심이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온통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거나 위험 요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전무한 나약한 아이들뿐이다. 자신의 진짜 느낌과 본능적 욕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특히 자식의 입신양명을 바라는 부모)의 바람에 따라 자아를 형성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세상을 자신의 주관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곳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질서에 순응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인생을 대부분 무의미하고 하찮게 느낀다는 거다. _<혼자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는 법> P.161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거다. 우린 모두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삶이라는 걸. 그게 낯가림과 수줍음이 심한 내성적인 성격의 피나 바우쉬가 무대 위에서는 어떤 창작자보다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작품을 선사할 수 있었던 진짜 비밀이 아니었을까. _<피나 바우쉬, 나를 울게 한 최초의 무용가> P.211
과연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과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애리조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천식을 앓던 아이 수전 손택에게 그것은 ‘운명과 불운의 감옥을 탈출하여 더 큰 세계로 가는 여권’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는 누구보다 투쟁적으로 읽었고 세상 만 가지 아름답고 흥미로운 것에 대하여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몰두했다. _<수전 손택, 그 열정의 파편들> P.219
장 그르니에가 『섬』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그 일생이 동터오는 여명기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고. 좀 시시한 예일 수 있으나 내 경우는 어린 시절 구영탄이라는 캐릭터에게 흠뻑 빠져 있던 ‘결정적 순간’이 있었던 거다. 그 순간들에 의해 지금의 나라는 인간의 기본 정서라든가 취향 같은 게 만들어진 거고. 결코 억지가 아니다. _<구영탄과 그의 후예들> P.250
특히나 이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문제로 치환하여 ‘저항’이 필요한 시점에 ‘아부’를 가르치는 스타강사 따위는 필요 없다. (김미경이라는 분이 그랬다. 비굴하면 좀 어떠냐고. 자기 남편처럼 여자들도 상사에게 아부할 필요가 있다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멘토라니,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_<나, 그리고 당신의 멘토를 찾아서> P.271
"현재 우리의 문화는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이 가진 물질적인 것들, 가장 최신의 휴대폰, 가장 최신의 맥mac, 가장 최신의 헤어스타일, 그리고 자신의 생김새로 정의하게끔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음모 같은 거죠. 그들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이렇게 생겨야지만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길 원해요. 하지만 이건 다 헛소리bullshit에 지나지 않아요. 기업의 거짓말이죠." _<나, 그리고 당신의 멘토를 찾아서> P.274
일단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아직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도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일에 밤낮없이 파묻혀 지내며 회사와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 됐다는 거다. _<숨쉬러 나가다, 확실히> P.281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기호 88번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 적어도 그런 꿈을 꾸며 젊은이들이 얼마 되지 않은 대기업 취직자리를 놓고 피 터지게 경쟁하기 보다 다 함께 연대하는 세상, 멋지지 아니한가. 국가경제가 쪽박을 차게 된 다음에야 시민과 청년들의 투쟁으로 진정한 의미의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 게 된 아이슬란드의 경우처럼 감히 이룰 수도 없는 꿈은 실은 아닐 터이다. 여하튼 세상은 돈키호테처럼 불온한 꿈을 꾸는 몽상가들에 의해 한 뼘 씩 진보했음을 잊지 말 것. _<88만원 세대의 뜨거운 가난>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