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괄소개와 저술의도】
조효원, 『부서진 이름(들)―발터 벤야민의 글상자』
문학동네의 스투디움 총서 두번째 책 『부서진 이름(들)―발터 벤야민의 글상자』가 출간되었다. 1990년대 이후 벤야민의 글을 번역한 책들은 적잖게 나왔지만 벤야민 학술연구서는 일천한 상태였다.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소장 학자 조효원은 그동안 벤야민 연구에 주력하면서 그 연구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타우베스와 아감벤을 번역해 소개했고, 또한 대중강연을 통해 이를 독자와 함께 나누었다. 이 모두가 벤야민 깊이 읽기의 시도였던 셈이다. 이 책은 그런 경험과 노력의 첫 결실이다. 이 저서에서 저자는 벤야민 사유의 핵심을 밝히는 작업에 몰두한다. 기존의 도시-공간-매체 등을 테마로 한 사회학적, 미학적 벤야민 읽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점을 파고든다. 즉 그간의 오랜 숙고와 더불어 그의 초기 언어철학과 정치신학이 만나는 곳에서 벤야민을 새롭게 다시 불러내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인식론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철저했던 이론가였음에도, 독창적이고 난해한 언어로 인해 다양한 해석의 갈등 속에서 종종 오해되어 왔다. 저자는 벤야민 사상의 뿌리를 찾아내려가면서 이와 연관된 사유의 지질과 토대들을 하나씩 좌표로 기록해나간다. 특히, 그는 다양하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벤야민 해석의 공간 속에서 의미 생성의 맥락을 성서적 언어철학으로 제한하여, 이 사유의 근원이 언어철학과 정치신학의 내밀하고 본질적인 결합에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해명해나간다. 그는 이러한 독해 방법을 무수히 호명되어 부서진 이름을 ‘단 한 번 영원히’ 부르는 일이라고 쓴다. 따라서 그 이름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누구나 각자의 이해 지평 안에서 각자의 그림을 그린다. 이것이 인간 삶의 근본 양태이고, 삶으로서 읽기이며, 읽기의 근본 조건이자 본질이다. 즉, 인간으로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부서진 이름의 파편들을 독해한다는 뜻이다. 이 불가능성을 깨우쳐준 이가 나의 부서진 벤야민, 벤야민들이었다.”(12쪽)
저자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 철학과 유대신학적 요소가 뒤얽힌 벤야민의 초기 언어철학 사유를, 벤야민과 사도 바울을 겹쳐놓았던 야콥 타우베스, 조르조 아감벤 등을 따라가며 읽는다. 이들에 이어 프란츠 로렌츠바이크, 헤르만 코엔, 플로렌스 크리스티안 랑, 프란츠 카프카, 카를 크라우스, 로베르트 발저 등의 이름이 호명된다. 벤야민이라는 성좌가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정신적 흐름과 긴밀히 접촉하는 동시에 그 흐름에 맞서는 방식으로서 성립된바, 이들과 벤야민이 나눈 긴밀한 정신적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적 사유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벤야민에 관한 복수의 해석을 존중하면서도 고유한 의미로서의 벤야민, 이 보편적인 이름을 보존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그의 벤야민 읽기는, 벤야민이라는 먼 이름을 지금 우리 곁으로 끌어오고자 하는 현재적이고도 실천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부 내용】
‘불안’의 세 대가와 청년 벤야민의 사유 넘나들기
제1장은 시대를 사유하는 방법으로서 벤야민이라는 길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먼저 이 시대의 정념을 ‘불안’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이것과 대결했던 세 명의 사상가를 불러들인다. 피하지 않고 불안에 맞서 싸운 게오르크 루카치, 결단을 방해하는 적을 단호히 처단하여 불안을 떨쳐버리고자 했던 카를 슈미트, 그리고 불안을 사랑으로 껴안고 살아갔던 발터 벤야민이다. 초월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절망하며 시대 상황을 맞아들이고 버티고자 했던 벤야민을 따라나선 저자는, 그의 사유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제2장에서 저자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파시즘이 득세하는 시대에 벤야민이 몰두했던 가치관을 되짚어올라간다. 저자는 그 세계관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말한다. 신의 세계를 세계 그 자체로 여기거나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고유의 영역으로 사유하는 신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증법적 신학의 영향을 준 사상에 대해, 한편으로는 바울과 마르키온의 신학을, 다른 한편으로는 플라톤 철학을 짚어낸다. 그는 벤야민의 신학적 가치관을 설명하며 다음 장부터 이어질 벤야민의 언어철학 해석을 예비한다.
벤야민의 비평, 신학, 철학에서의 언어철학적 구상과 문헌학적 탐색
제3장부터 제5장까지에서 저자는 벤야민 초기 사유에서 신학적 토대가 얼마나 단단한 것이었는지를 본격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이때 참조하는 벤야민의 텍스트는 비평 「횔덜린의 시 두 편」,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논문 「미래 철학의 프로그램에 대하여」,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번역자의 과제」, 『독일 비애극의 원천』 등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벤야민의 종교적 사유가 시대 진단, 즉 전쟁이라는 파국의 경험을 분석하는 사유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해석한다. 전쟁을 통해 경험은 풍부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곤해졌고, 이 경험의 파괴는 언어의 타락이라는 테제와 나란히 벤야민의 종교적 사유의 전개과정을 관통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벤야민의 초기 비평과 논문을 통해, 기존 미학의 형식과 내용의 분리라는 한계를 넘어 도출해내고자 한 정신적 원리, 파괴된 경험 또는 무력한 경험 개념에 대한 철학적인 응답, 그리고 인식의 언어적 본질에 대하여 성찰함으로써 철학적 구조물의 토대를 파고들며, 성서적 사유 및 종교적 태도가 벤야민의 철학적 기획과 맞물리는 근원 지점으로서의 언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이고 본격적인 고찰을 해나간다. 이러한 기획은 물론 정치신학적인 목적, 즉 도구적 언어와 부르주아 언어관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극을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6장에서는 벤야민의 정치신학과 언어철학의 영향 아래 사유하는 이름들을 나열해 하나의 성좌를 만들어나간다. 그중 언어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로서 이름 이르기를 수행했던 작가인 말라르메, 푸시킨, 카프카 등을 벤야민과 겹쳐놓는다. 저자가 보기에 이름을 이르는 행위가 정향하는 것은 문헌학인데, 문헌학은 이미 쓴 것을 다시 쓰는 행위, 역사를 “연대기와 기계적 과정으로부터”(아감벤) 구출해내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카프카, 카를 크라우스, 로베르트 발저를 중심으로
제7장과 제8장은 벤야민의 카프카 비평에 할애되어 있다. 저자는 벤야민의 눈을 통해 본 카프카의 세계를 ‘관방’, ‘늪’, ‘극장’, ‘술책’, ‘완전범죄로서의 글쓰기’라는 열쇳말로 읽어내면서 벤야민이 카프카에게서 느끼는 멀미의 정체를 요연하게 설명한다. 저자가 벤야민의 실천적 비평 중 카프카 읽기를 유독 주목하는 것은, 실패하는 자인 카프카의 모습에서 불안을 절망으로 껴안은 벤야민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보는 카프카는 사물을 제스처라는 형식을 통해서 이해하며, 카프카의 작품은 제스처의 흔들리는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불안을 견디면서 자발적으로 흔들리는 벤야민의 카프카, 이것이 바로 좌절한 자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이다.
제9장에서는 벤야민이 카프카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카를 크라우스와 로베르트 발저 해석에 공을 들인다. 벤야민의 비평을 통해 국내에 알려져 있는 카를 크라우스는 타락한 언어, 타락한 수단, 타락한 정의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악랄할 정도로 집요하게 수다를 인용함으로써 저널 문헌학을 수행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저자는 벤야민을 거쳐 단지 연구되기만 하고 더이상 실행되지 않는 법, 즉 정의로 나아가는 문인 공부, 그러니까 지우는 글쓰기를 통해 크라우스로 변신한다. 다시 말해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에 나오는 ‘크라우스’와 크라우스의 합창을 목도한다.
벤야민의 남아 있는 암호들
제10장에서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 나타난 벤야민의 암호를 몰래 뒤바꿔서 해석한 슈미트의 이름과 그 사태를 고발했던 아감벤의 이름을 부르면서 벤야민 해석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지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햄릿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벤야민과 슈미트의 상반된 해석인데, 카를 슈미트가 햄릿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되어 몰락해가는 유럽의 운명을 상징하는 신화적 형상으로 본 반면, 벤야민은 바로크 비애극 중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고대적 조명과 중세적 조명의 분열상에 부합하며 기독교적인 섭리 안에서 어떤 복된 존재로 반전된 인물로 본다. 더불어 벤야민을 둘러싼 이름의 암호들, 즉 플로렌스 크리스티안 랑,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등과 벤야민이 나눈 관계의 밀도를 짚어낸다. 그리하여 여전히 남아 있는, 흩어져 있고, 부서져 있는 벤야민 암호들의 가능성을 진단해내며, 다시 부르고 다시 듣기로서의 부서진 이름(들)의 현존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