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시대’로 명명된 무절제와 부도덕의 세계,
20세기 초 미국 거대도시 뉴욕의
압도적인 다성성(多聲性)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잃어버린 세대’가 미국문단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1920년대, 그 한가운데인 1925년에 출간된 『맨해튼 트랜스퍼』는 이 세대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과 그들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맨해튼 트랜스퍼’는 1910년부터 1937년까지 뉴욕과 저지시티 사이에 실존했던 펜실베이니아 철도의 환승역이다. 이 환승역을 거치지 않고는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 섬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역은 ‘아메리칸 드림’에 부푼 이민자들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처음으로 발을 딛는 곳이었으며, 미합중국의 숱한 개개인들이 그들의 삶과 시간을 갈아타는 곳이기도 했다.
형식적인 면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이 환승역의 모습 같은, 이야기의 다양성이다. 끊임없이 장면이 전환되고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일견 이 사건들은 뉴욕, 맨해튼이라는 공간적인 인접성을 제외하면 독립된 것처럼 보인다. 1900년대부터 1920년대에 걸쳐 수십 명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갈등과 복잡한 관계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이루는 여러 계층의 삶을 단편적으로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모자이크처럼 묶이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결국 잃어버린 세대의 실체, 거대도시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평론가 앨프리드 카진은 ‘잃어버린 세대’의 다른 작가들과 달리 더스패서스의 문학은 변별성을 지니고 있는데,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등장하는 개인적이면서 “비극적인 나”가 더스패서스의 작품에서는 현대사회라는 “비극적이고 포괄적인 우리”로 대체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볼 때 『맨해튼 트랜스퍼』의 진정한 주인공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이 아니라, 환승역 맨해튼 트랜스퍼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도시 뉴욕 그 자체다. 작품의 주인공은 공간이자 사회 그 자체이며, 등장인물들은 이 공간을 위한 조연의 역할을 맡을 뿐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이나 찰스 디킨스의 런던,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처럼 특정 도시가 한 작가에게 중요한 창작의 모티브가 된 경우는 종종 있지만, 『맨해튼 트랜스퍼』의 뉴욕처럼 한 도시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파노라마, 카메라의 눈, 의식의 흐름……
모더니즘의 실험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진정한 뉴욕
더스패서스는 『맨해튼 트랜스퍼』에서 영화적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소위 ‘카메라의 눈’ 기법을 통해 보이는 장면들은 전통적인 내러티브에서의 연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카메라는 매개체 앞을 지나가는 ‘삶의 조각’을 아무런 선별이나 조정 없이 그저 전달할 뿐이다. 거기에 비친 인물들은 누구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맨해튼 트랜스퍼라는 뉴욕 지하철의 환승역을 지나가는 뉴욕의 주민에 불과하다. 이름 없이 그 혹은 그녀로 불리다, 카메라의 눈이 닿는 순간에만 익명성을 탈피하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장면 또한 빠르게 전환되고, 새로운 장면이 이어지면 앞선 장면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공간적 배경을 제외하면 사건과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요소도 거의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이야기의 진행과는 상관없이 등장인물의 내면이 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실제 사건을 다룬 신문기사, 광고문구, 대중음악의 가사가 삽입되기도 한다. 중심인물과 플롯이 명확한 기존의 소설들에 비하면 낯선 형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들을 통해 더스패서스는 작품 안에서 뉴욕의 진정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낸다. 싱클레어 루이스가 존 더스패서스는 당대의 많은 작가들이 실패했던 일, 즉 뉴욕의 파노라마, 본질, 냄새, 소리, 영혼을 재현해내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극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였다. 전쟁이라는 대사건을 계기로 재편되는 미국 사회의 모습, 즉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메커니즘과 아메리칸 드림,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극명해지는 빈부격차, 새로운 대중문화의 출현 등 현재의 미국을 만든 단초가 되는 지점을 객관적인 묘사와 실제 자료를 통해 마치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맨해튼 트랜스퍼』는 이처럼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거대도시의 압도적인 다성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뉴욕이라는 공간을 문학적 실재(實在)로 되살림으로써 모더니즘 소설과 도시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서울과도 꼭 닮아 있는 20세기 초의 메트로폴리스, 기회의 땅이면서 내부의 그늘 또한 깊은 거대도시 뉴욕, 그리고 환승역 ‘맨해튼 트랜스퍼’. 그 안에서 우리들은 길을 잃거나 혹은 길을 빼앗긴 채 헤매고 있는 또 다른 우리 자신,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