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복권 당첨, 가출, 상경, 살인사건……
이것 모두 한 달 사이, 그녀의 ‘신상’에 일어난 일입니다.
작은 지방도시의 서점에서 일하는 미치루는 한 달에 한 번 출장을 오는 도쿄의 출판사 영업사원과 연인 사이. 어느 여름날, 여느 때처럼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충동적으로 함께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만다. 손에 든 것이라고는 지갑이 든 작은 손가방 하나와, 근무중 외출하는 그녀에게 직장 동료들이 사다달라고 부탁한 마흔세 장의 복권뿐. 곧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남자의 예상과 달리 미치루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옛 친구의 집에 머무르며 아예 그곳에 정착해 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날부터 거듭되는 우연과 실수, 작은 악의, 이기심으로 인해, 몇십 년 동안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다.
국내 독자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인 사토 쇼고는 1983년에 데뷔한 이래 재미와 작품성을 겸비한 소설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탄탄한 독자층을 만들어온 중견 작가이다. 『신상 이야기』는 데뷔 25년을 맞은 작가의 원숙미와 특유의 치밀한 구성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다카포> 2010년 최고의 책 1위에 오르고 NHK 주간 북리뷰 ‘사회자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1’에 선정되는 등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사토 쇼고에게 또다른 전성기를 가져다주었다. 2012년 여름 문학동네 블랙펜 클럽을 통해 국내에 선보이는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의 독특한 구성, 담담하고 객관적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섬뜩함이 배가되는 문체,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 등으로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가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미스터리라 할 만하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개
반전을 거듭하는 신상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미치루에 관해 얘기할 때 나는 늘 이 격언을 유난히 강조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유년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예외 없이 미치루의 신상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격언이기 때문입니다. 미치루의 행복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_본문에서
『신상 이야기』는 해변에 위치한 평온한 지방도시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 ‘미치루’가 짓궂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는 과정을, 그녀를 아내로 지칭하는 누군가가 또다른 제3자에게 설명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진짜 정체는 소설 종반에 다다르기까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의 트릭 해석과 범인 찾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본격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구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은 계기로 시작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주위 상황과 인물관계의 변화가 구어체 문장 속에서 스릴 있게 전개되어, 일단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출 수 없을 만큼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미치루가 안고 있는 첫번째 비밀은 그녀가 고향의 애인을 두고 직장 거래처인 도쿄의 출판사 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그 남자와 함께 충동적으로 고향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그날 마침 동료의 부탁으로 산 복권이 계속 그녀의 손에 남게 되고, 이중 한 장이 1등에 당첨되면서 그녀의 또다른 비밀이 된다. 그리고 남자를 따라간 도쿄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나름대로 정착해서 살 결심을 하고 난 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앞선 두 가지에 비할 수 없는 커다란 비밀을 껴안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악운, 운명의 장난 같은 우연의 일치에 어느새 휩쓸리고 만 미치루. 중간에 몇 번이나 스스로 끊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조금 방심하거나 낙관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크고 작은 비밀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버리고 만다. 수수께끼의 화자는 우유부단한 성격에 얼마간 세속적이며 주위 상황에 곧잘 휘둘리는 미치루의 언동을 때로는 냉담하고 객관적으로, 때로는 동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대신 풀어놓는다.
과거의 사건과 완전히 분리되어 흘러가는 현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역시 아직 깨지 않은 꿈이라고 해야 할 테고, 언젠가는 현실이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깨우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미치루와 처음 만난 날 밤 내가 그렇게 그녀의 눈을 뜨게 해준 것처럼, 기습적으로.
_본문에서
평온한 일상에 닥친 비일상적인 사건들, 그것이 누군가의 계략이나 불운의 파도, 혹은 천재지변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실은 모두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아이로니컬한 진실이 이 작품을 꿰뚫는 큰 주제 중 하나다. 눈앞의 이익과 양심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어두운 비밀, 행운이 순식간에 불행으로 변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신상 이야기』가 담고 있는 비극과 회생의 이야기는 미치루처럼 이 도시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누군가의 ‘신상’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 아마존 독자평
각설하고 재미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릴 각오를 하고 책장을 펼쳐야 할 것이다.
주인공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소설은 처음이다.
귀신의 집에서 출구를 찾기 전까지 긴장을 풀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듯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굉장히 대단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일인칭 화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그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전반부를 내달렸다.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주인공의 인생에서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내 이웃에게도 남몰래 이런 불행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