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저자에게도 아버지는 멀고도 미운 존재였다. 남들 앞에서는 호탕하게 굴면서도 정작 가족에게는 구두쇠에 고집쟁이에 독재자 같았던 아버지. 아내와 자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간 절약, 돈 절약을 핑계로 뻔뻔스러운 얌체 짓도 서슴지 않았던 속물 같은 아버지. 그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죽음과 이길 수 없는 경주를 시작한다. 아버지와 되도록 멀찌감치 떨어져 살려고 애썼던 사십대의 아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와 착잡한 심정으로 병상을 지킨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는 정말 나쁜 아버지였을까?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독불장군에 아내를 외롭게 만들고 툭하면 남들 앞에서 자식들을 창피하게 만들던 주책없는 아버지였을 뿐일까? 그는 과연 어떤 아버지였을까?
어린 자식에게 아버지는 슈퍼맨이다. 패배하지도, 실패하지도,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은 무적용사 같다. 그러나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환상은 깨진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를 견뎌내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이런 부모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증오심까지 품는다. 소설 속 아버지 아서와 아들 블레이크는 딱 이런 부자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 아서는 술과 장난을 좋아하는 명랑한 사람이지만, 종종 사소한 거짓말과 속임수로 이익을 취하려 들어 아내와 자식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소심한 성격의 문학소년 블레이크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하고 밉고 위선자 같다. 자신을 이해해주지도 않고, 소리만 질러대고, 뭘 하든 변변찮다고 꾸중하고,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는 아버지 때문에 불만이 쌓여간다. 그런 아버지가 마을의 어느 아줌마와 불륜이 의심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어린 블레이크는 큰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고,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감정적 소통을 끊어버린다. 묵묵히 침묵으로 견디는 어머니를 보면서는 더욱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다.
“벽은 사라지고, 나는 홀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 아들의 눈앞에는 과거의 활력 넘치던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른, 소변줄을 꽂고 침대에 늘어진 힘없는 병자가 있을 뿐이다. 아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과거라면 절대로 놓쳤을 리 없을 “추잡한 농담을 날리는 기회”를 맥없이 놓쳐버리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패배하지도, 실패하지도,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 초라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가. 왜 벌떡 일어나 지금이라도 “이 바보 멍청이야! 제대로 좀 해”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묻어두고 지워버렸던 지난날을 돌아보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밤하늘을 보며 드넓은 우주를 이야기하던 소년 같던 아버지(“환상적이지. 신선한 공기. 하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어.”), 고작 열두 살짜리에게 술을 주며 킬킬거리던 장난꾸러기 아버지(“가끔씩 나는 네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깜빡할 때가 있어.”), 아들의 진로를 걱정하며 은근슬쩍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갖길 바라던 아버지, 자식이 곤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온갖 꾀를 짜내 문제를 해결해주던 아버지. 개나 고양이가 죽었을 때도 울고, 자식을 기숙학교로 보내면서도 펑펑 울던 마음 약한 아버지. “현찰로 하면 얼마요?”와 “내 말이 옳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절대 틀릴 리는 없다”를 평생 입에 달고 산 구두쇠에 옹고집이었지만, 그는 그저 검소하고 감정 표현에 서툰 세상의 수없이 많은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아들은 이미 차가운 주검으로 변한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직접 짓고 가꾸었던 집 앞마당에서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인가?
정직한 탓에 판사 앞에서 이제 막 아버지에 비밀을 누설하려는 소년의 모습을 그린 빅토리아시대의 화가 W. F. 예임스의 〈그리고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에서 제목을 빌려온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가?”라는 마음을 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 소설에서 아들 블레이크가 기억하는 아버지 아서의 마지막 모습은 죽기 직전이나 직후가 아니었다. 아들의 새집 거실에서 얻어 온 샹들리에를 달아주던 모습이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집안일에 서툰 아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으며 (“끝 쪽을 잡아야지, 이 바보 멍청이야.” “빌어먹을, 아버지, 나도 이제 마흔한 살이라고요.”) 직접 나서서 달고는 시험 삼아 스위치를 켜고 “빛이 있으라!” 하며 활짝 웃은 뒤, 전기세가 아깝다는 듯이 곧바로 꺼버린다. 평소처럼 아들에게 면박을 주면서 혼자 잘났다는 듯이 즐겁게 으스대던 “꼭 아버지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빛이 있으라!” 아버지는 아마도 평생 아들에게 그렇게 속으로 끊임없이 축복을 내렸을 것이다. 아들은 그가 가고서야 비로소 그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 추천사
슬프고 재밌고 놀랍고 감동적이고 훌륭한 책.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_닉 혼비(작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이 빛나는 찬사는 나를 웃게 하더니 결국 코끝이 따가워질 때까지 울게 만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다. _발 헤네시(작가)
한 편의 시다. 삶을 바로 코앞으로 가져와 그것을 냄새 맡고 만져보게까지 한다. _스펙터
시처럼 부드럽고 솔직하고 때로는 화나게도 하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이 놀라운 책은 자신감 넘치던 아버지의 삶과 병, 죽음을 독립성 강한 아들의 시점에서 균형 있게 그려내었다. _타임스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죽음뿐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_타임아웃
훌륭한 가족문학이다. 작가는 죽음과 임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삶과 생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전해준다. 가슴 찡하고, 익살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지 못할 정도로 인간적이다. _시드니 모닝헤럴드